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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Jul 08. 2021

익숙해지지 않는, 익숙해지면 안 될 것 같은.

또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백 번을 경험해도 적응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치과의 기계음이나 한약의 쓴맛 같은. 그리고 하나가 추가됐다, 다름 아닌 ‘코로나 검사’. 검체를 채취하기 위해 기다란 면봉을 콧속 깊은 데까지 밀어, 아니 ‘쑤셔’ 넣어 휘저을 때 오는 아릿함은 벌써 세 번째라고 해서 견딜 만하지 않았다. 아니, 멋모르고 당한 처음보다 그 고통이 미리 짐작되어 오히려 더 아팠다. 그럴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여러 번 경험한대도 끝끝내 익숙해지지 않을 종류의 통증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픈 건 그렇다 치고 진짜 적응이 안 되는 건 이게 ‘전염성이 있는’ 바이러스 검사라는 것이다.




지난겨울 어느 날, 일하는 중에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토요일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서 사무실이 좀 추웠나 보다. 처음엔 훌쩍이는 정도이다 그 간격이 점점 짧아지더니 주체 없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책상 한쪽은 휴지가 쌓여 산이 됐다. 열은 오르지 않고 기침도 없었다. 보통 감기가 오면 편도선이 먼저 붓는데 그날은 목도 아프지 않았다. ‘콧물만’도 코로나 증상이었던가? 바로 업무를 접고 일어섰다. 선별 검사소에 도착하니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근래 본 중 가장 거리두기가 안 지켜지고 있어서 되려 감염될 확률이 더 높아 보였다. 그래도 의심되는 증상이 있으니 차례를 기다리는데 이미 접수된 인원만도 검사를 마치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며 열댓 명 앞에서 마감을 해버렸다. 결국 검사는 다음날 아침 일찍 받았다. ‘아, 이거 엄청 아프네.’


그런데 그 아픈 감각은 잠깐일 뿐, 진짜 괴로움은 토요일 콧물이 나기 시작한 때부터 음성이란 결과를 받은 일요일 저녁까지 하루하고 반나절 꼬박 나를 지배한 어떤 ‘불안’이었다. 혹시라도 ‘양성’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 말이다. 오로지 콧물만 났으므로 이전 같았으면 하던 일을 마저 했을 것이다. 아프다고 하기엔 조용한 사무실에서 팽 소리를 내며 코를 푸는 민망함만 스스로 모른 체하면 될 급이었다. 그렇지만 덜컥 겁이 났고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나 말고 사무실에 누가 또 있는지 살폈다. 머릿속에선 벌써 시계를 거꾸로 돌려 행적을 더듬기 시작했다.

‘오늘은 혼자 운전해서 출근했고, 어제는 통근버스로 퇴근했는데 사원증 체킹을 하니 동승자 확인은 될 테지, 버스에서 내려 따로 들른 곳은 없이 집으로 갔고...... 어제 오프라인 회의를 한 게 있었나?...... ......’

검사를 허탕 치고 돌아갈 때 콧물감기약을 살까 했는데 문득 검사 전에는 내 몸에 어떤 변경점도 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진일 경우 혹시라도 역학 조사와 치료에 노이즈가 될까 싶어 말이다. 결국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자는 것만 할 수 있었다. 다음날 일어났을 때 확실히 증상이 약했던지 잘 잔 것만으로 콧물도 멈췄다. 그 시점의 몸상태는 사실 거의 정상이었으므로 굳이 검사가 필요할지 아주 잠깐 고민도 됐다. 그래도 ‘혹시’라는 생각에 검사소에 가려고 집을 나설 때는 버릴 쓰레기를 꾸역꾸역 다 챙겼다. 불현듯 이 외출이 마지막일 수도, 장기간 집을 비우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일요일이었고 그래서 다행히 검사 후 자택 대기로 인해 조율해야 할 스케줄은 따로 없었다. 다만 결과가 나오는 시간에 따라 월요일 출근은 변수가 생길 수 있어 상사에게 보고를 했다. 이 역시 한 사람의 근태에 그치지 않는, 전혀 가볍지 않은 보고가 됐다. 아마도 내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곳이 회사, 우리 부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보고를 받은 상사도 그때부터 불안이 시작됐을 것이다. 죄송했다. 왜 ‘죄송할까’, 불안의 상당 부분은 이 ‘죄송한 마음’이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하루 확진되는 숫자가 적지 않으며 도무지 경로를 추정하지 못하는 케이스도 다반사인 상황에서 확진자에게 잘못을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 확진의 여파는 너무 커서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미미한 감기 증상을 보일 때 코로나일 확률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른다. 그런데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내가 느끼는 확률은 ‘음성 아니면 양성’의 50%였다. 그 50%가 ‘음성’이란 두 글자로 0이 되기 전까지는 혹시 모를 그 가능성만으로 죄스러웠다. 그러니 내내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각각 확진자의 통근버스 동승자로, 같은 건물 같은 층 근무자로 전수검사 대상이었다. 증상은 전혀 없었고 밀접 접촉자는 아니었지만 검사 지시를 받은 그 시로 불안이 시작되었다. 통근버스에서는 모두 마스크를 잘 쓰고 있으니 별일 있겠나 하면서도 내 바로 옆자리였던 건 아니었을까라고 안 해도 될 상상을 굳이 했고, 사무실 확진자의 자리는 나와 멀다고 들었지만 혹 엘리베이터에서 수없이 마주치지 않았을까, 동선이 겹칠 만한 곳을 애써 찾았다. 만약 양성이라면 ‘OOO로부터의 감염’으로 기록될 테다. 실제 바이러스가 그로부터 왔는지 그와는 상관없는 데서 옮겼는지 알 수 없지만, 검사를 받게 된 경위에 따라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번의 그 죄책감은 덜어내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진실은 내가 그에게 전염시킨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와 나 사이 화살표 방향은 어차피 중요하지 않다. 누가 먼저든 양성이면 난 이미 위험한 존재였고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코로나 검사는 두 번째라서 처음보다는 의연할 수 있거나 세 번째 정도 되니 요령이 생길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역시 불안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코로나가 시작된 지 벌써 일 년 반,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들 한다. 상대적으로 재택을 하지 않는 1인 가구 직장인은 달라질 게 많지 않아서 나는 큰 변화는 없는 쪽이다. 그래서 좀 무심하다 이렇게 검사를 받게 되어 전전긍긍하고 나면 ‘전염성’이라는 것이 새삼 무서워 정신이 든다. 백신 접종이 시작됐을 때 집단 면역이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적어도 확진자가 급증하는 현상은 이제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엊그제 ‘천’이라는 숫자가 뜨면서 4차 유행이란 말이 들린다. 개개인이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있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무뎌져 긴장이 풀려서는 안 될 것 같다. 결국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조금 더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바로 오늘, 아침 미팅을 막 마쳤을 때 전화를 받았다. 확진자와 통근버스 동승자로 검사가 필요하다고. 또 종일 불안 속에 애태우다 지금 막 ‘음성’ 결과를 받았다. 휴 다행이다. 그리고 네 번째도 역시 아프기도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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