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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Nov 10. 2021

운전, 일단 시작하니 하더라고.

시동을 막 걸었을 때 계기판이 눈에 들어왔다. ‘총 주행거리 50000km’. 새 차를 사고 일 년쯤 지나 5000km 조금 모자라게 탄 것을 확인했을 때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조카는 들은풍월에 근거하여 은근슬쩍 야심을 드러냈었다.

“일 년에 오천이면 십 년에 오만, 차는 말짱할 텐데 이모는 지겨워서 차를 바꾸지 않을까? 그때 나는 대학생, 이 차는 내 것이 되겠군!”

‘50000’이란 숫자에 그 기억이 떠올라 따져보니 꽉 채우기에 몇 개월 남았지만 정말 곧 만 십 년을 탄다. 조카는 대학생이 되었고 예측대로 차는 말짱하다. 다만 나는 아직 이 차가 안 지겨운데 조카를 실망시키게 되는 걸까?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는데 내 마음과 상관없이 조카의 야심이 사라졌다. 운전을 배우는 동안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혹시라도 운전대를 맡길까 걱정이 되어 면허를 따고서도 한참을 제 부모에게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단 차는 뺏기지 않았는데, 끔찍이 운전을 꺼린다고 하니......


십 년 조금 모자란 어느 날


십 년에 오만이란 기록이 말해주듯 운전량은 굉장히 적은 편이다. 왕복 두 시간 거리를 매일 자차로 출퇴근하기에는 기름값도 만만찮고 체력 소모도 크다. 무엇보다 바로 집 앞에서 통근버스를 이용할 수 있으니 평일에 차를 끌고 나올 일은 거의 없다. 운전대를 잡는 때는 주말, 교통 체증과 주차를 고려하면 시내를 나설 때도 BMW(버스, 지하철, 걷기)가 우선이나 사는 곳이 서울 변방이다 보니 생활권 내에서는 차를 가지고 움직인다. 그러나 그보다 가장 주된 주행은 주말 출퇴근이다. 한 달에 두세 번은 근무를 서는데 평일과 달리 통근버스가 축소 운영되기 때문에 직접 운전을 한다. 남들 쉴 때 일하러 가는 건 무척이나 괴로울 일이지만 이때의 드라이브를 나는 꽤 즐긴다. 외곽순환과 경부를 타는 고속도로 코스로 시내처럼 가다 서다를 하지 않고 거침없이 달릴 수 있다. 물론 막히기 시작하면 더없이 답답하겠지만 다행히 가장 심한 시간대는 아니다. 아는 길이라 내비도 켜지 않고 보통 라디오를 틀거나 디제이의 말도 거슬린다 싶으면 노래만 연속 재생한다.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달리면 눈은 탁 트인 앞만, 귀는 음악에만 집중이 되면서 잡념은 끼어들 수가 없다. 일주일간 뒤죽박죽 무작위로 채웠던 머리가 비워지는 느낌이 든다. 한 시간 정도의 운전은 피로를 느낄 만큼 길지는 않고 머리에 충분한 휴식을 주기에는 아주 짧지도 않아서 딱 적당하다. 그래서 일 때문에 가는 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쉼’의 시간이 된다.


운전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주의 집중을 요하는 활동임에도 상당히 편안하게 느낄 만큼 익숙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갓 면허를 쥔 조카가 겁을 내는 건 너무나 이해가 된다. 나도 처음부터 자신 있게 운전석에 앉은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박사과정 마지막 해였다. 갑작스럽게 기숙사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구한 집이 학교에서 꽤 멀었다. 당시 대전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 편이 아니었는 데다 논문을 쓴다고 퇴근은 평균 새벽 한두 시를 찍었다. 당장 차가 필요했다. 언니도 중고로 사서 몰던, 이미 연식이 꽤 된 마티즈를 단 몇 십만 원에 넘겨받기로 했다. 문제는 차가 아니었다. 장롱면허만 십 년인데 운전이라니! 일주일 연수를 받고 팔을 덜덜 떨어가며 운전대를 잡은 지 6일 만에 사고를 내고 말았다. 학교 주차장에 들어서는데 실험실 가스 납품하는 대형 트럭이 길을 막고 있었다. 지금의 나라면, 게다가 작기도 작은 마티즈였으므로, 충분히 지나가거나 다시 돌려 나가거나 할 수 있을 공간이었으나 그때 나는 ‘당황’부터 했다. 트럭 운전사는 앞으로든 뒤로든 내 차가 빠지기만 기다리고 있었고 마음이 급해진 나는 안절부절못하던 끝에 후진기어에서 실수로 액셀을 세게 밟고 주차되어 있던 차를 제대로 박았다. 인명 사고가 아니었으므로 뒤처리는 깔끔하였으나 후유증은 제대로 왔다. 운전을 시작하자마자 사고를 낸 스스로가 한심한 것도 한심한 건데 뭣보다 운전석에 다시 앉기가 너무 무서웠다. 차 수리가 다 되었다는 연락이 전혀 반갑지가 않았으니 정말 다시는 운전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싶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상황이 그렇지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차를 끌고 다니는데 항상 초긴장 상태였다. 핸들에 바짝 붙어 겨우겨우 집에 오면 얼마나 힘을 줬던지 팔이 다 저릴 정도였다. 그런데 근육이 뭉치는 만큼 담력도 붙는 것일까. 조금씩 핸들로부터 몸이 떨어져 갔고 시야도 점차 넓어져 차선을 바꿀 타이밍도 능숙하게 잡기 시작했다. 혹 초행길에 길을 잘못 들어서도 시간이 걸릴 뿐 길은 다 통하게 되어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 삼 년쯤 더 타니 마티즈가 제 명을 다해 폐차를 하는데 전처럼 차가 필수인 건 아니어서 바로 새 차를 사지 않았었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불편’했다. 억지로 하던 운전이었고 그래서 늘 차보다 튼튼한 두 다리를 믿었던 터라 스스로 짐짓 놀랐다. 운전석이 도무지 편하지 않았던 내가 도리어 차가 없어서 불편하다니! 결국 일 년을 못 참고 마련한 차로 십 년 째다.


그때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다면 과연 운전을 할 수 있었을까. 울며 겨자 먹기로 하였지만 지금 부담 없이 핸들을 잡고 더욱 즐기기까지 한다. 돌아보니 ‘일단 시작’이 컸단 얘기다. 그렇지만 선뜻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음은 누구보다 잘 안다. 도로는 늘 위험하고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사고는 언제든 날 수 있다. 또 나만 조심하면 되는 것도 아니어서 무조건 운전을 권할 수도 없다. 게다가 곧 자율주행 시대가 된다고 하니 운전을 꼭 할 줄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닐 것 같다. 다만 절대 못할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운전은 단연코 하면 는다. 그리고, ‘혼자 드라이브’의 맛은 꽤 괜찮다. 경험자로서 말하건대 이건 진짜다. 조카님,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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