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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Nov 22. 2021

마지막까지 완벽한 [톡이나 할까?]

오래전 개인 홈페이지에서 [You?!]라는 게시판을 운영한 적이 있다. 고정 방문자들과 온라인 메신저로 일대일 인터뷰를 한 후 그 내용을 올렸다. 온라인으로 만난 사람들이라 메신저를 이용했던 것인데 ‘문자로 하는 인터뷰’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말과 달리 억양, 세기 등이 없는 글이므로 간혹 오해가 생겼다. 또 대화가 끊긴 채 한참 화면이 멈추기라도 하면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이 됐다. 혹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해서 상대의 마음이 상했나 하는 걱정 같은 거였다. 대부분 답을 고르는 시간이 조금 길어졌던 경우였고 다행히 큰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는데,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되도록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좀 더 신중히 문장을 다듬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얼핏 한계만 가득해 보이지만 ‘쓰고 지우고 고쳐 쓰고 결국 사라지지 않고 남아 다시 보는 말’이라는 게 문자 인터뷰의 진짜 묘미였다. 사소한 오해보다 깊은 이해가 아마 더 많았을 것이다.


카카오TV [톡이나 할까?]가 지난 11월 16일 마지막회를 공개하면서 종방했다. 방송 취향이 확연히 예능보다 드라마 쪽임에도 총 63회 중 적어도 50편은 봤을 만큼 팬이었다. 앞서 말한 경험으로 ‘오직 카톡으로만 대화하는 카톡 토크쇼’라는 소개부터 마음이 끌렸었는데 기대한 바는 물론 그 이상의 재미가 있었다.


그 이상의 재미, 첫 번째는 ‘훔쳐보기’이다. 사람마다 말투가 있듯이 전화보다 카톡이 익숙한 이 시대에는 사람마다 ‘톡투’가 있다. 꼬박 완성형 문장을 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늘 말줄임표를 붙여 여운을 남기는 사람도 있다. ‘ㅋㅋ’나 ‘ㅠㅠ’처럼 문자로 울고 웃는 사람도 있지만 이모티콘을 다양하게 잘 쓰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스타일은 카톡을 주고받는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아는 영역인데, [톡이나 할까?]는 그 형식 때문에 인터뷰이들의 톡 습관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핸드폰에서 재생하면 내 카톡인지 방송인지 헷갈릴 만큼 익숙한 화면에서 유명 셀럽이 내 친구 누구처럼 톡을 하고 있다. 이처럼 친근한 사생활 훔쳐보기라니!


두 번째는 카톡으로만 대화하지만 ‘대면 토크쇼’라는 점이다. 상대의 표정을 볼 수 없어서 막연히 마음을 졸이던 나와 달리 [톡이나 할까?]는 서로를 볼 수 있었다. 짓궂은 질문을 던졌는데 답을 타이핑하는 상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면 농담이 통했다. 각자 핸드폰만 보던 두 사람이 어느 순간 현실웃음이 터져 함께 자지러지기도 한다. 상대가 마땅한 답을 찾아 고민하는 표정이라면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릴 수 있다. ‘문자로만’이 가지는 한계를 줄이고 미묘한 표정 변화를 관찰하는 재미를 더했다.


마지막은 호스트 ‘김이나’이다. 앞의 두 가지가 형식이 주는 재미였다면 콘텐츠를 풍성하게 한 공은 그녀에게 상당히 돌려야 하지 싶다. 물론 얼개가 되는 대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화라는 건 어디로 어떻게 흐를지 모르기 때문에 인터뷰어의 역량이 정말 크다. 김이나는 일단 센스가 뛰어나다. 조카와 놀아주는 영상에 ‘워낙 동안이셔서 셀카인 줄 알았다 <배우 박보영>’고 바로 개그를 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러나 웃기겠다고 선을 넘지는 않는다. 또 노래 가사를 쓰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단어 선택도, 부연 설명을 위해 가져오는 예시도 남달랐다. 뭣보다 그날의 인터뷰이마다 적절한 톤을 찾아서 대화를 이어가는 기술이 탁월했다. 인터뷰이 중에는 그녀와 이미 친분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는데 -<죽음의 실무자>나 <무업 청년 커뮤니티>처럼 유명인이 아닌 사람들도 있었다-, 방송이라고 해서 친분을 애써 감추지 않으면서도 시청자가 소외되는 느낌이 들지 않게 했고, 첫 만남에 카톡 대화가 어색한 인터뷰이들에게는 충분히 기다려 주며 배려했다.


기대 이상의 재미를 준 요소를 따져 봤다면 기대한 바는 ‘문장이 담는 깊이’였는데 사실 이도 기대 이상이었다. 가수가 앨범을 새로 내거나 배우의 새 작품이 공개되면 홍보를 목적으로 예능에 출연하는 경우가 있다. [톡이나 할까?]에도 당연히 그런 경우들이 있었는데 홍보만이었던 대화는 없었다. 오히려 작품에 대한 아티스트로서의 자부심이나 고민들로 채워졌었다. 활동과 무관하게 나왔던 게스트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자기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연예인을 구경하기보다 사람 대 사람으로 공감한 기억이 더 많다.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들은......, ‘이동진’, ‘김영하’, ‘문소리’, ‘문가영’...... 아, 너무 많아 꼽을 수가 없다. 캡처각이었던 어록은 호스트 김이나의 것을 포함해 뭐, 차고 넘친다.



그래도 굳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꼽는다면 <나와의 채팅>, ‘김이나’ 편이다. 이렇게 멋있는 마지막회가 이전에 있었던가. 그동안 [톡이나 할까?]에서 김이나가 했던 말들을 골라와서 김이나, 본인과 대화를 나눴다. 자연스럽게 구성이 된 건 그 자체로 놀라움이었는데, 오간 내용이 또 진국이었다. ‘훌륭하다기보단 잘 듣는 사람같긴 하더라고’라고 [톡이나 할까?]의 자신을 평가한 데 이어 ‘작사가 김이나는 마감이지’라고 했는데, 이 둘은 같은 맥락으로 들렸다. “가사를 어떻게 쓰세요?”라는 질문에 “앉아서 써요”라는 답처럼 다른 곳에서도 그녀의 직업의식은 종종 접한 적이 있는데, ‘잘 듣는’도 인터뷰 프로그램의 호스트가 갖는 프로 정신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점이 정말 좋은 콘텐츠라는 결과가 되었다.


웬만해서 눈물은 안 흘릴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회 끄트머리에서 김이나가 울컥했다. 그간의 인터뷰이들이 과거의 자신에게 보내는 톡에 이어 시청자들이 과거로 보낸 메시지들이 화면을 채웠고 마침내 그 화면이 열리더니 데이브레이크의 -그녀가 데이브레이크 덕후인 건 유명하다- 환송 무대가 꾸며졌다. 웬만하지가 않았던 거지. [톡이나 할까?] 제작진은 그간의 인터뷰이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인터뷰이 ‘김이나’에게 진심으로 애정을 표현해 주었다. 좋아했던 프로그램이 끝난다니 너무 아쉬웠는데 정말 완벽한 마무리여서 미련 없이 박수를 쳐 주기로 했다. 웬만해도 잘만 우는 내 얼굴은 이미 눈물 줄줄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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