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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Jun 02. 2021

오래 연락을 않을 땐 그럴 만한 거다?

오래 연락을 않더라도 마음에 달렸다.

“MinZhu야 잘 지내?”

“아직 OOO에 사니?”

“오늘 J한테 연락 와서 같이 한번 보자고 톡 했어”

OOO에서 이사 나온 지 만 8년이 지났으니 ‘최소 8년보다 더 오래’ 만에 도착한 메시지였다. 이 관계가 다시 이어지리라고 기대하기엔 이미 제법 긴 시간이었으므로 S의 저 메시지는 좀 뜬금없다고 느껴졌다. 

.......

“허......”

결국 당황한 기색이 숨겨지지 않고 그대로 전송됐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건 내 반응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S의 추진력이었다. 바로 단톡 방이 열렸고 언제 어디서 만날지 빠르게 톡이 오갔다. 약속이 확정되니 J와 S는 ‘너무 반갑겠다’며 설레는 마음을 온갖 이모티콘으로 아낌없이 쐈다. 그 화면이 나는 또 좀 낯설어 머뭇거렸다. 반가울 것이다. 잊지 않고 다시 연락을 해 준 게 고맙기도 진심이다. 그런데 약속을 앞두고 설렘과 함께 미심쩍은 걱정이 함께 왔다. 정말 그저 좋기만 할까?


‘오래 연락을 않을 땐 그럴 만한 거다’가 평소 내 생각이다. 도무지 수소문이 되지 않거나 물리적 거리와 같은 실제적 이유가 없어도 그렇다. 만나지 않을 이유는 딱히 없지만 만날 구실을 굳이 찾지 않는 사이, 현대인들은 ‘각자 살기 바빠서’란 아주 좋은 핑계를 대지만 아마도 진짜는 얼굴을 마주하고 있을 때 즐겁기보다 불편한 것일 게다. 그간 우리들 관계가 소원해질 피치 못할 사정은 따로 없었다. 서로 어떤 껄끄러운 사건이 있지도 않았다. 다만 그녀들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게 될지가 그려지지 않았다. 예전에 만났을 때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스치는 건 조금 건조하다시피 앉아 있는 나, 틈틈이 미소를 지었던가? 아마 겉돌고 있었지 싶다.




우린 고등학교 때 친구다. J와 1학년 한 반에서 만나 가까워졌고 J를 통해 알게 된 애들까지 대여섯이 함께 어울렸다. 3년 내내 찰떡처럼 붙어 다닌 건 아니다. 나는 혼자 이과로 진학했고 우등생은 아니어도 모범생 과였던 반면 그들은 일진은 아니지만 소위 노는 쪽이었다. 독서실을 같이 다니긴 했는데 독서실이란 곳이 사실 공부보다 일탈에 더 적합해서 그녀들에겐 단지 베이스캠프였을 뿐이었고 나는 그녀들이 놀러 다니는 데를 모두 쫓아다닐 수는 없어서 주로 캠프를 지키는 쪽이었다. 고3으로 올라가서는 내가 학교와 집으로 동선을 최소화하면서 그마저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함께 뭘 많이 한 건 아니었다. 그냥 봐서는 1학년 때 우정이 쭉 이어지기 쉽지 않았던 모양새였는데 나에게 고교 시절 친구를 꼽으라면 신기하게도 2년을 꼬박 함께 보낸 이과 반 아이들보다 그녀들이 언제나 앞선다.


우리는 닮은 구석이 많아서 늘 함께 하는, 흔히 ‘절친’이란 단어에 연상되는 모습은 확실히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의 세계가 명확히 나뉘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어느 때인가 매일 비슷한 시간에 그들이 조용히 독서실을 빠져나갔다가 한 시간쯤 지나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아무 말도 없이 나만 빼고 우르르 사라지면 궁금할 법도 한데 나는 또 어디 놀러 가나보다 하고 말았다. 열흘쯤 지나서야 전에 없던 향수 향을 눈치채고 물었을 것이다. “담배 하니?” 담배를 한다는 사실보다 그녀들이 했던 대답에 더 놀랐었다. “네가 괜히 우리 걱정하느라 공부에 집중 못할까 봐 얘기를 못했어” ‘내 공부 때문이라고?’ 이후 나는 말리지도, 동참하지도 않았고 그녀들의 염려와 달리 별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녀들이 내 공부를 신경 쓰고 내가 그들이 뭘 하든 왈가왈부하지 않은 건 서로를 존중했기 때문이었다. 밖으로 보이기는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사이 같았겠지만 억지로 같이 하자고 조르지 않고 함께 하지 못함이 섭섭하지 않은 건 도리어 진짜 친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여전히 친밀하다는 믿음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함께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하면 적당하지 않겠냐고 했던 우리 만남은 예상과 달리 반주를 곁들인 늦은 저녁으로까지 이어졌다. 만나자고 했을 때 그리 내키지 않았고 그래서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까지 내내 주뼛거렸던 내가 거진 여덟 시간을 피곤한 줄 모르고 웃고 떠들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그래서 더도 말고 일 년, 그것도 힘들겠으면 이 년에 한 번씩은 이렇게 만나자는 다짐을 마지막으로 헤어져 돌아오는 길, 지난날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관계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었기에 ‘절친’이란 타이틀을 붙이고 졸업한 그때, 그리고 시간을 잊고 어울릴 수 있었던 오늘 사이, 그 중간쯤에는 왜 나는 그녀들과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했을까.


벽은 내가 세웠다는 걸 깨달았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초, 어쩌다 길어진 학업을 마무리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때였다. 반면 그녀들은 서른을 넘기지 않고 연이어 가정을 꾸렸다. 그래서 그 시절 주로 결혼식장과 돌잔치에서 그녀들을 만났었다. 이렇듯 우리는 좀 다른 환경에 놓여 있었고 그만큼 겹치는 지점이 없었다. 그들의 결혼, 출산, 육아에 도통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녀들을 만났을 때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매일 출퇴근을 반복하는 피고용인 신분의 나와는 달리 J는 자영업을 하는 사장님이고 S는 전업주부다. 또 나는 싱글이나 그녀들은 아이 둘씩을 둔 엄마들이다. 서로의 이야기를 할 때 나와 그녀들의 접점은 여전히 별로 없었다. 그러나 전과 달리 대화는 잘 섞였고 끊김 없이 즐겁게 이어졌다. 차이는 나의 듣는 태도였다. 그녀들이 사는 방식, 생각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내가 좋아했던, 좋아하는 친구들의 사는 이야기로 들었다. 그러니 모든 얘기들이 재미있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반면 십여 년 전 그때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동기들은 이미 사오 년 경력을 채운 데 비해 늦었다는 조바심에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업무에 적응하고, 그래서 안정적인 내 자리를 찾는 것에 온 신경이 가 있었다. 누구를 만나든 내 고민과의 연결고리를 찾아 걸러 들었다. 그러니 그녀들과 공감대가 없다는 탓을 하며 대화에 끼지 않고 나 혼자 딴생각을 했던 것이다.


8,9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내가 여전히 싱글일 것에 S는 한 치의 의심도 않았다. 만약 결혼을 했다면 청첩을 보냈을 거라 했다. 우리가 평소 안부를 챙기지 않았어도 경조사는 고민 없이 알릴, 그만큼은 돈독한, 사이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리 오랜만에 톡을 보낼지언정 주저함도 없었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얼굴이 빨개졌을까? 마음만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건 어릴 때나 되는 거라고 지레 선을 긋고 벽을 세운 게 창피하고 미안했다. 이렇게 한 번 즐거운 날을 보냈다고 갑자기 하루가 멀다 하고 톡을 보내는 사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뜬금없이 연락이 오면 이젠 나도 반가워만 할 것이다. 아니 어느 날 내가 뜬금없이 ‘절친’ 모임을 추진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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