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Zhu Aug 10. 2021

누군가의 성장은 알고 봐도 좋다.

드라마 [라켓소년단] 리뷰

올림픽이 막 끝난 이때 굳이 진부하자면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스포츠 드라마는 각본이 있어 더 의미 있기도 하다. ‘배드민턴계의 아이돌을 꿈꾸는 라켓소년단의 소년체전 도전기이자, 땅끝마을 농촌에서 펼쳐지는 열여섯 소년소녀들의 레알 성장드라마’, 드라마 [라켓소년단]의 공식 소개 문구다. 대강 예상이 된다. 처음엔 실력도 부족하고 종종 불협화음도 내던 아이들이 몇몇 에피소드들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끝내 목표를 이룰 것이다. 실제 [라켓소년단]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별로냐고? 아니, 뻔한 각본이라도 누군가의 성장을 보는 건 흐뭇하다. 좋은 건 보고 또 봐도 좋다.


생활체육 강사로 근근이 사는 윤현종(김상경)은 안정된 벌이를 위해 땅끝 해남으로 온다. 와이파이도 안 되고 화장실도 집 밖에 있는 시골이라니, 현종의 아들 해강(탕준상)은 짜증만 난다. 뭣보다 서울 중학교에서 나름 실력도 인정받고 있는 투수인데 좋아하는 야구를 할 수 없다니. 한편 현종이 맡게 된 해남서중 배드민턴부는 단체전 출전을 위한 최소 인원을 채우기 위해 한 명의 부원이 간절하고 결국 해강이 들어가게 된다. 합류한 이유는 단지 와이파이일 뿐, 해강은 야구를 다시 할 생각이다. 그러나 어디 그럴 리가, 야구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라켓소년단 친구들과 배드민턴을 하는 게 더 좋아진다.


해강은 사실 초등학교 시절 천재 소리를 듣던 배드민턴 선수였다. 배드민턴을 그만두고 야구를 시작한 이유가 단지 인기를 쫓은 것처럼 나오지만 해강의 마음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고 지도자로도 인정받는 엄마, 라영자(오나라)는 제 일에 바빠 가정에 소홀했다. 해남제일여중 코치로 이미 해남에 있다 현종이 내려온 후 합치는 설정인데, 이렇다 보니 드라마 시작점에 해강과 해인(안세빈)은 마치 엄마에게 버려진 모양새를 띤다. 이러한 묘사와 영자가 남매에게 내내 미안한 마음을 갖는 듯한 뉘앙스, 영자가 올림픽을 포기한 이유로 모성을 앞세우는 것, 등이 요즘 시대 여성 캐릭터로 적합한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딱 초등학생 해강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상처일 것이다. 반면 그저 그런 선수에 머문 아빠는 항상 가까이에서 자식을 돌보지만 생활은 늘 쪼들린다. 선수 출신의 부모가 각각 이렇다면 아무리 배드민턴이 좋아도 계속 하기는 싫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라켓소년단에서 함께 훈련을 받고 우정을 쌓으면서 해강은 좋아하는 배드민턴을 ‘계속하는’ 방법을 배운다. “져도 괜찮고 서로 응원해 줄 수 있는 팀에서 뛰고 싶거든요”라고 말하는 해강은 비록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패한 후 눈물을 터뜨리고 말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해 또 신나게 배드민턴을 칠 수 있게 됐다.


작품은 해강의 서사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해강의 비중이 크지만 주인공은 라켓소년단 모두이다. 윤담(손상연)이 주장, 에이스라는 부담을 덜어내는 과정과 용태(김강훈)가 이용대 따라 하기가 아닌 자신의 기술로 이기는 장면은 유의미하다. 더욱 우찬(최현욱)이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에피소드는 눈물샘까지 건드린다. 세윤(이재인)과 해강이 달달하기만 하지 않고 채근하고 격려하며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어깨를 내어 주는 관계라서 좋고, 한솔(이지원)과 윤담 역시 선수 대 선수로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라서 예쁘다. 그리고 “중요한 국가대항전이고 스포츠잖아요. 민턴은 그냥 민턴이잖아요”라는 1등 다운 세윤과 그런 세윤을 라이벌로 경계하기보다 함께 뛰는 한솔의 우정이 러브라인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진 게 또 고맙다.


작품의 포커스는 당연히 이 소년소녀들이다. 그런데 내가 작품에 진짜 반한 지점은 아이들보다 오히려 어른들의 성장이다. 사람은 좋지만 어딘가 헐렁한 구석이 있는 현종이 배 감독(신정근)과 아이들을 통해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능력자 코치로 성장하는 모습도 그렇지만, 소위 꼰대들의 생각이 바뀌는 순간들이 명장면이었다. 다리를 다친 해강이 파이널을 뛰겠다고 할 때 현종은 의심스럽게 묻는다. “파이널까진 어떻게 끌고 갈 건데?” “아, 뭔 걱정이야. 빵(윤담)이랑 애들 믿어야지.” 비슷한 장면은 또 나온다. “나도 그렇고 꼰대들이 자주 하는 실수가 뭔 지 알아?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거. 시합 뭐 우리가 뛰나, 우린 방법만 제시하고 애들 믿고 맡기는 거지, 지들 인생인데.” 소년체전 남중부 결승전 본부석에서 영자의 대사다. 사실 영자는 앞서 여중부 결승에서 세윤이 빠진 자신의 팀을 믿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면서도 미리 결과를 단정 지었던 그녀는 이제 달라졌고, 영자의 말을 듣고 전남의 우승을 목격한 팽 감독(안내상)도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라켓소년단]은 스포츠 드라마면서 청소년 드라마다. 그리고 또 한 축이 해남을 배경으로 한 농촌 드라마라는 것이다. 라켓소년단 이야기와 더불어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도 분량이 상당하다. 필자는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도시에서 살았고 친척 중에도 시골에 사는 이가 없다. 농촌을 매체로만 접한 사람은 아마도 그곳에서의 힐링을 막연히 동경하거나 전혀 판타지가 없거나, 둘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은데 필자는 안타깝게도? 후자다. 그래서인지 [라켓소년단]의 이러한 구성이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느껴졌다. 마치 한 가족 같은 마을 주민들로부터 분명히 온기가 전해지는 효과가 있겠지만 오히려 극을 산만하게 하기도 했다. 정보훈 작가의 전작이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니 그 의도가 짐작되나 ‘감옥을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 드라마’를 표방하는 전작과 달리 작품이 내세운 것이 ‘열여섯 소년소녀들의 성장담’이라면 중심 얼개에 좀 더 집중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만 이 점은 아주 개인적인 작은 아쉬움으로 결코 정보훈 작가의 필력을 나무라는 게 아니다. 되려 결말에서 예상을 살짝 뒤틀어줘서 놀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해강과 박찬(윤현수)을 파이널 단식이 아닌 복식에서 맞붙게 함으로써 해강 개인의 실력보다 ‘함께 한 시간과 서로에 대한 확신’이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기회가 왔을 때 준비되어 있었던 우찬의 서사까지 완성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라켓소년단]은 어렵지 않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청소년 성장드라마의 전형을 따르고 주제를 드러내기도 매우 친절해서 대사로 직접 설명되는 부분이 많다. 숨기기도 한둘이 아니고 꼬기도 한두 번이 아니어서 매회 양파 껍질 까듯 반전이 계속돼야만 재미가 있을까? [라켓소년단]은 시청률 5%를 넘기며 좋은 결과를 얻었는데, 코로나로 피로한 지금 시청자들은 그저 ‘바람대로 잘 자라 주는’ 아이들을 보고 싶은 게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의 눈빛을 잊을 수 있을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