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Zhu Dec 30. 2021

눈뜨고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찾아서

[오징어 게임]을 보지 않았다. [지옥]도 아직이다. ‘아직’이라고 했지만 아마 끝내 안 보지 싶다. 아니 ‘못’, 눈뜨고 볼 수가 없어서다. 언젠가부터 소위 장르물이 꺼려지기 시작했다.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에 머리가 지끈한 것도 이유지만 그보다는 피칠갑을 못 견디겠다. 자극적 묘사를 모두 폄하하는 건 아니다. 소재가 좀 세다 뿐 분명한 메시지를 담은 명작들도 많은 줄 안다. 그러나 [D.P.]를 가까스로 보고 깨달았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놓칠 수도 있겠으나, 그러나...... 더는 못 보겠다.


그래서 흔치 않은 중에 찾아 ‘눈 훤히 뜨고’ 보았던, 보고 있는 드라마들이다.


[연모] (KBS2 2021.10.11 ~ 2021.12.14)

죽은 쌍둥이 오라비를 대신해 세자가 된 여인, 이휘(박은빈)와 시강원 사서, 정지운(로운) 간의 비밀 로맨스다. 남장여자는 이제 진부하지만 그게 ‘세자’라서 차별점이 있었다. 모두가 주시하는 위치, 그래서 비밀을 들키는 순간 본인은 물론 주변인들까지 위험한 자리라는 점이 긴장도를 높였다. 또 마땅히 축복받을 관계건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자를 향한 중전(정채연)의 마음이 닿을 수 없는 것이라 애절한 설정은 신선했다. 설사 뻔한 로맨스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 해도 [연모]에는 확실한 장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박은빈’이다. 26년 차 경력인데 게다가 필모그래피 상당수가 사극이라는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남자로 보이기에는 무척 작은 체구임에도 위엄이 단 한 톨도 떨어지지 않는 세자 연기는 물론, 여인으로서 정사서를 향해 흔들리는 눈빛에 남자 여럿 쓰러지지 않았을까.


[커피 한잔 할까요?] (KakaoTV 2021.10.24 ~)

허영만 화백의 만화 <커피 한잔 할까요?>가 원작이고 꽤 재밌게 읽었기에 일단 반가웠던 작품이다. 시즌제를 계획하고 있는지 전 8권 중 1,2권에서만 에피소드를 뽑아 12회로 우선 마무리가 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원작보다 좋았던 점은, 부산스럽지 않고 따뜻한 분위기가 잘 살았다. 아주 살짝 건드렸으나 훨씬 극적이었던 각색도 종종 있었다. 뭣보다 주인공 고비가 ‘옹성우’다. 모두가 인정하는 박석(박호산)의 커피가 아니어도 알바가 ‘옹성우’면 그 카페는 최소 중박은 하겠지. 반면 드라마를 보면서도 원작 생각이 나게 한 건 다름 아닌 ‘커피’였다. 원작은 커피알못에게는 친절한 소개가, 커피잘알에게는 흡족한 끄덕임이 되는 나름 커피 전문서였다. 그러나 한 회 2~30분의 길지 않은 분량은 커피 지식까지 충분히 담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했나 보다.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SBS 2021.11.12 ~)

시작한 까닭은 ‘송혜교’의 멜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위적 우연과 전형적인 갈등, 그걸로도 모자라 얹은 신파까지, 정작 기대했던 멜로는 없었다. 그럼에도 중반까지 계속 본 이유는 송혜교가 너무 예뻐서. 남자도 아니면서 예쁜 여자한테 왜 이리도 약한지, 그런데 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맥락 없이 위에 나열한 온갖 올드한 장면의 무한반복에 결국 중도하차했다. 예쁜 송혜교는 스틸 컷으로 따로 보련다.


[그 해 우리는] (SBS 2021.12.06 ~)

싱그러웠다. 그래서 두 주인공의 청량미만 흐뭇하게 감상하겠다는 아주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 예쁜 영상미에만 기대는 그냥 그런 드라마가 아닌 듯하다. 과거의 연인이 다시 만나는 이야기에 ‘예상 밖’은 별로 없다. 헤어진 이유로 엄청난 사건을 두어 반전을 노리곤 하지만 시청자는 이전의 유사작품보다 ‘조금 더’ 엄청날 거라고 오히려 미리 짐작할 만큼 익숙하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허가 찔렸다. 연수(김다미)가 웅(최우식)과 헤어진 이유, “내가 버릴 수 있는 거, 너 밖에 없어.” 숱한 연인들이 그저 먹고살려고 이별을 한다. 과몰입을 부르는 현실감이었다. 대부분의 상황과 대사가 너무 평범해서 너무나 알겠는 감정들이 촘촘히 담겨 있다. 그리고 이를 연기하는 ‘김다미’와 ‘최우식’, ‘얘들, 진짜 사귀다 헤어졌던 거 아냐?’, 그 눈빛에 매회 감탄 중이다.

 

미치겠다, 얘네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의 성장은 알고 봐도 좋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