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Zhu Mar 01. 2024

덕질, 두 배로 즐겁습니다.

덕메를 만드세요.

음악부터 틀어야지, 턴테이블 어딨어?”

나 포스터 챙겨 왔어, 좀 잘 놔 봐.”

적잖이 하이톤의 말들이 아무렇게나 튀었다. ‘공간을 빌려서 함께 LP를 듣자’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부릉거리더니 텐션이 드디어 정점이었다. 음악을 재생하고 파티룸 곳곳을 요령껏 그의 사진으로 꾸몄다. 시즌그리팅은 각 잡고 언박싱 촬영을 시작했지만 아이템이 나올 때마다 세 사람 반응이 여과 없이 터지면서 초점이 흔들렸다. 사람에게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기침과 가난과 사랑이라고 했던가, 덕후는 최애를 향한 탄성을 숨길 수 없는 법이다. 우리가 부딪치는 건배사는 그를 향한 축사였고 공연영상을 보면서는 누가 먼저랄 거 없이 함께 따라 불렀다.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을 덕질한 지 3년이 넘어간다. 입덕 때 마음은 조금도 시들지 않았다. 전혀 질리지 않게 한 공이야 물론 이승윤의 몫이다. 다만 덕질의 나날들이 더 즐겁게 기억되는 건 E와 J, 덕메이트들 덕분이다. 손바닥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주접도 같이 떨어야 신명이 난다.


혼자 무엇을 하는 것에 대한 시선이 요즘처럼 누그러지기 훨씬 이전부터 단연코 혼자 잘했다. 학창 시절 반드시 짝이 필요하지 않은 일에 굳이 짝을 찾는 행위가 비효율이라는 되바라진 생각을 했었고 그때부터 습관이 배었다. 취미라고 내세우는 공연은 특히 으레 혼자다. 취향을 많이 타기도 하고 그 비용이 적지 않은데 내가 부담하지 않는 한 함께 보자고 할 수 없어 그렇다. 그러니 공연이 적어도 7 할인 이승윤 덕질도 혼자 못할 것은 아니었을 게다. 플레이리스트를 그의 음악으로 채우고 그에 관한 콘텐츠를 찾아보고 공연을 쫓아다니고…… 혼자였어도 덜하진 않았겠지. 다만 ‘더’ 재밌더란 말이다, 손을 마주치는 친구들이 있어서.


우리는 이승윤 때문에 처음 만난 건 아닌데 이승윤 때문에 친한 건 맞다. 공연을 다녀온 후 SNS에 올렸는데 “E도 거기 갔었더라”로 각각과 친분을 이어온 친구가 E와 나를 이십여 년 만에 다시 연결해 줬다. J는 본디 오랜 친구이긴 하다. 하지만 속마음이 어떠했든 겉보기에 한동안 소원했는데 이승윤의 등장으로 연락이 잦아졌다. 돌이켜보면 이게 자연스럽길 J와 처음이 가수 이승환이다. 찰떡인 음악 취향이 어디 안 가고 또 같은 놈에게 빠진 거다. TV에 이승윤이 나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핸드폰이 불이 났다. E와 J, 양쪽 톡을 오가다 한쪽에 했던 말을 또 뱉거나 이쪽에 쓸 말을 다른 쪽에 맥락 안 맞게 보내는 실수가 몇 번 있었고, 결국 전격 합방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덕메이트가 되었다.


솔직히는 걱정이 조금 있었다. E와 J는 서로 일면식도 없었고 따지고 들면 셋이 은근히 다르다. J는 감성 끝판왕인 반면 나는 요즘말로 확신의 T다. 각기 얼빠, 음빠, 말빠라고 덕후 정체성을 달리 정의할 만큼 최애에게 꽂힌 지점도 갈린다. 그러나 아무 문제가 되지 않고 톡방은 언제나 활기차다. 얼빠든 아니든 그의 사진을 보면서 같이 침을 흘리고 되지도 않는 주접에는 나이가 몇이냐는 핀잔이 아니라 오히려 한술 더 뜬 주접이 돌아온다. 정말 거리낌이 없는데 이승윤의 노랫말을 빌리자면 우리 사이에서는 허튼소리가 사랑의 다른 말이 된다. 덕질에 이만큼 따뜻한 곳이 없다. 입덕 계기가 혹 달라도 내가 발견한 보물을 그녀들도 알아보았고 최애를 향해 같은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나만큼이나 덕메이트들도 최애에게 기꺼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하니 함께면 그의 무대는 200% 즐겁고 복받치는 감동은 아끼지 않고 나눌 수 있다. 그러는 중에 수백 번 곱씹은 가사가 또 새로운 의미로 읽히기도 하고 놓쳤던 사운드가 선명한 떨림이 되기도 한다. 덕질포인트가 끊임없이 샘솟아 좋고 우리 우정이 다져지는 건 더 좋다.




이승윤 스케줄 아닌 이승윤 스케줄 : 우리끼리 음감회


이승윤 스케줄은 아닌데 이승윤 스케줄이에요”, J의 먼 걸음을 궁금해하는 이에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사는 곳이 죄다 멀어서 공연 때나 얼굴을 봤는데-전국투어부터 연말공연까지 횟수가 적진 않다- 우리끼리 이벤트를 만든 건 처음이었다. ‘이승윤’이라는 키워드로 이렇게 흥겨울 수 있다니! 6시간이면 넉넉할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보던 영상은 결국 끝까지 다 못 봤다. 아쉬움은 다음 음감회 기약으로 달랬다. 종종 ‘이승윤 스케줄 아닌 이승윤 스케줄’이 생기겠다. 덕메이트를 만드니 최애 없는 덕질까지 가능하다. 게다가 그 덕질이 그렇게 즐겁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