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전에 소설까지 찾아 읽던 수년 전의 너”
책장을 정리하면서 S에게 줬던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의 소설 중 하나가 읽기에 좀 버거웠다며 다른 하나는 시도할 만 한지 물어오면서 S가 덧붙인 말이었다. S의 기억은 틀리지 않아서 오래전 터키(튀르키예: 당시엔 터키라고 불렀다.) 여행을 앞두고 배경인 소설을 몇 편 읽었었다. 그중 하나는 완독을 했음에도 굳이 캐리어에 넣기까지 했다. <순수 박물관>, 책 속에 ‘순수 박물관(Museum of Innocence, Turkish: Masumiyet Müzesi)’ 입장권이 인쇄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작품은 가난한 사촌 퓌순과 사랑에 빠진 부유한 이스탄불 남자 케말의 이야기인데, ‘순수 박물관’은 그들의 사랑에 관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작가 오르한 파묵이 “나는 허구의 이야기 속 실제 사물을 박물관에 수집하여 전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듯 작품을 발표하기 전부터 계획하여 소설의 결말을 실제로 구현했다. 박물관에 대해 알고 소설을 읽은 것은 전혀 아니었고 당시에는 읽은 후에도 박물관에 대한 정보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끝내 ‘허구’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스탄불에,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다, 도착하기까지 의심은 옅고 기대는 짙기만 했다. 근거 없는 믿음 무엇? 싶은 게, 베벡(Bebek)에서 처음 만난 J에게 베벡은 ‘여기 세계 3대 스타벅스’ 이전에 ‘퓌순이 일했던 명품샵이 있던 구역’이라며 소설 내용을 떠들었다는 거다. 다음 행선지였던 ‘순수 박물관’이 있다는 탁심(Taksim)으로 향할 때 J는 호기심 가득하여 우리의 동행을 자처했다. 우리는 그렇다 치고 모르는 사람을 따라나선 J의 믿음은 더욱 무엇? 아무튼 책 속 지도 한 장만 붙잡고 찾아간 ‘순수 박물관’은 과연 그곳에 있었을까? 결말은 ‘있었는데, 없었는데, 있었다.’
인적도 드문 좁은 골목 모퉁이에 자리한 빨간 목조 주택이었다. 존재를 발견한 기쁨은 잠깐, 문 앞에 붙은 ‘UNDER CONSTRUCTION’, “아......” 셋이 동시에 탄식을 뱉었지, 아마. 설명하자면 우리가 방문한 때는 2011년, 박물관의 정식 개관은 2012년, 인터넷에 정보가 풀리지 않을 만했다, 참고로 소설이 발표된 때는 2008년이다. 혼자였으면 그저 실망을 안고 뒤돌았지 싶다. 그런데 때로 여럿이면 없던 객기가 난다. 우리는 막무가내로 문을 두드렸고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리나니, 하나님 말씀은 진리다, 열렸다! 마치 ‘순수 박물관’만 그 여행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듯 간절함을 과장한 말과 몸짓, 표정에 사진을 찍지 않는 조건-모든 소지품을 입구에 두었다-으로 입장이 허락되었다. 사진뿐 아니라 이곳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이 완전히 비밀에 부쳐져야 할 것처럼 살금살금 2층으로 오르다...... 숨이 멎고 발을 멈추고 동행의 팔을 힘주어 잡았던 것 같다. ‘퓌순의 귀걸이’가 거기 있었다. 십여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순간이다.
그날의 인증은 관람 후 ‘UNDER CONSTRUCTION’ 앞에서 했다. 배경과 딴판으로, 당연히 우리 표정은 좋아 죽는다. 돌아가는 중에는 ‘Robinson Crusoe 389’라는 고풍스러운 서점에 들러 영문판 <The Museum of Innocence>-안타깝게도 터키어판은 찾지 못했다-을 샀다. 완벽한 ‘순수 박물관의 날’이었다.
외교부 사이트에 들어가 튀르키예의 여행경보단계를 조회해 봤다. 단톡방에서 친구들의 여행 사진을 봐서일 수도, 겉핥기였지만 L의 여행 소회를 들어서일 수도 있다. 작정해서 간 마지막 해외여행이 코로나 이전이니 욕구가 슬며시 고개를 내밀 때가 되기도 됐다. 좋다는 데야 많지만 그간을 보면 어디를 갈지는 결국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정했다. 잊히지 않는 그 순간이 ‘다시 이스탄불은 어때?’라고 묻고 있단 얘기다. S에게 오르한 파묵의 다른 하나는 감히 강추를 하였는데 거기 있는 입장권 가지고 함께 가는 걸 제안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