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이다. 동료가 어떤 시료의 정보를 물어 왔다. ‘어떤’이라는 관형사가 붙었다는 건 대상을 명확히 가리키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날 아침부터 종일 어떻게 공정을 진행할지 함께 다루던 게 있어서 으레 그거라고 생각해 답했더니 아니었다. 서로 되묻기를 서너 번 하고 나서야 이틀 전 진행했던 시료인 줄 알고 원하던 정보를 알려줬다. 대화가 잘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자리로 돌아간 동료가 바로 개인 메신저를 보내왔다.
“제가 질문을 어렵게 한 건 아니죠? 엉뚱한 답을 하길래요.”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어렵게 했을까요?’도 아니고 ‘......한 건 아니죠?’라니. 처음부터 정확히 설명했으면 바로 답했을 것인데, 오히려 본인은 제대로 질문했는데 내가 동문서답을 했다는 뉘앙스였다. 황당하여 어이가 없었다. 퇴근까지 계속 거슬렸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 줄곧 궁시렁댔다. ‘엉뚱한 답이라니!’, ‘말귀가 모자라다는 거야?’. 어쩌면 사무실을 떠나 집까지도 붙잡고 갔을지 모른다.
따지고 들면 그날은 더한 것들이 많았다. 사실 그날뿐 아니라 요즘 내내 쉽지가 않다. 타 사업부의 신규 프로젝트 셋업을 위해 파견 근무 중인데 여건이 좋지 못하다. 중간에 투입되어 초창기 누가 어떻게 방향을 잡고 그림을 그렸는지 잘 알지 못한다. 알았어도 가장 밑바닥에서 구르는 기술 엔지니어가 토 달 수는 없고 윗선에서 나름의 이유로 결정한 사항들일 테다. 그러니 왈가왈부할 수 없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정말 시시때때로 문제들이 생기지만 어떻게든 진행하고 있다. 그렇게 꾸역꾸역 감당하는 낱낱에 비하면 그가 질문을 잘못한 건지 내가 답을 잘못한 건지는 아주 사소하다. 잠시 분이 올라올 수 있지만 내내 씩씩거릴 일은 아닐 것이다. 더욱 녹록지 않은 중에도 고군분투하려는 의지를 속절없이 허물어뜨리기에는 너무 별 일이 아니지 않은가.
주일 예배 설교에서 들은 이야기다. 목사님께서 주례를 맡은 한 결혼식, 시간이 다 되었는데 분위기가 시끌시끌했다. 듣자 하니 입장할 채비를 하는데 신부 부케가 없단다. 누군가가 깜박하고 안 가져온 것이다. 다른 예식에서 빌릴 여건도 되지 않아 결국 예식장을 꾸민 조화에서 보랏빛 수국 몇 송이를 뽑아 신부 손에 들려 줬다. 그날 하루를 위해 오죽 공을 들였을까, 신부가 얼마나 당황하고 속상했을지 누구라도 짐작할 것이다. 보기에 구색은 갖췄다지만 조화를 가슴에 꽂고-신랑만 준비한 대로 할 수는 없어 마찬가지로 대체했다고 한다- 손에 들고 나란히 선 신랑신부를 보니 목사님 마음이 참 안타까웠다. 그래서 준비한 주례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권면하셨다고 한다.
“오늘 정말 감사하고 복된 날인데 기쁨을 빼앗기지 마세요.”
평생 한 번인 결혼식을 어쩌다 발생한 에피소드로 망쳐서는 안 되는 것과 얼마 지나면 기억도 가물거릴 어느 날의 기분을 비교하기는 혹 억지일까. 그러나 불씨 하나가 산불을 일으키듯 작은 하나에 종일 마음이 잠식당할 수 있음은 그게 결혼식이든 보통의 날이든 다르지 않다. 그렇게 잠식당한 마음은 감정에 그치지 않고 태도가 되어 결국 하루 전반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쩌면 하찮을 말썽 따위에 감정이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루 24시간뿐 아니다.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정말 대수로운 경우도 있다. 큰돈을 잃었거나 아프거나처럼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왜 나에게 생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고 삶을 버텨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드라마 밖에서도 곧잘 들린다. 빠뜨린 부케 하나 때문에 결혼의 기쁨을 빼앗길 수 없듯 어려운 상황이 있고 괴로움이 있지만 인생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잘 산다는 건 결국 오만 상황이 펼쳐지는 중에도 일상을 지키는 게 아닐는지.
그러나 나는 동료의 한마디로 반나절을 고스란히 반납할 만큼 연약하다. 이렇게나 무른 마음이라면 반대로 좋은 느낌에 사로잡히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날은 설비에 자꾸 문제가 생겨 계측 부서에 시료 인계가 제 때 안 됐었다. 혹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지 않은 시료 때문에 담당 엔지니어의 시간이 어그러졌을지도 모른다. 팹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상황이라 해도 그녀에게서 그날의 ‘기쁨’을 뺏은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출근길에 커피 한잔과 비스킷을 사서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설비가 에러를 뱉고 회의 중 마찰이 생길 때마다 커피 한잔을 생각했다. 머쓱함을 이기고 고마움을 직접 표한 용기라는 좋은 느낌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녀에게도 조금 더 영향력이 큰 좋은 쪽의 별일이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