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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Mar 29. 2024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오래전 같은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남녀 역할이 정형화되어 있었던지 ‘아내’의 의미는 짐작하는 그게 맞을 거다. 당시 그 대사를 남자가 아닌 여주인공이 한다는 게 강조됐었는데 앞뒤 상황은 거의 잊었고 전도연 특유의 샐쭉한 표정만 기억난다. 전혀 안 비슷하겠지만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만능 이모님을 들일까 고민은 아니다. 항상 윤기 나게는 아니지만 청소, 빨래는 밀리지 않고 따뜻이 지은 밥상을 대접받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러니 대단한 살림꾼은 아닌, 단지 생필품 구매 대행 서비스가 간절하다. 일 년 전 이사할 때 가구들을 들이면서 그 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당시엔 가구에 한정하여 쓴 글이다. 한두 번 쓰고 말 것도 아니고 덩치도 큰 데다 고가이기도 하니까 쉬울 수가 없지. 그런데 평소 스스로를 관찰하니 무언가를 사는 행위, 쇼핑 자체를 버거워한다는 결론이다. 어느 날 무심결에 뱉기를......“돈, 벌기도 힘들지만 쓰기도 너무 귀찮아!”


이십 대에는 그래도 예뻐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는지 옷 사러 가는 걸 즐겼다. 별다른 스케줄이 없을 때 구경이나 한다며 나서기도 했고 다른 볼일로 오가는 동선에 쇼핑몰이 있으면 괜히 들러 한 바퀴 돌기도 했다. 물론 요즘도 아예 안 가진 않는다. 다만 누가 함께 가자고 할 때 따르는 경우가 많고 내 의지로는 ‘간절기 코트가 필요해’처럼 명확한 목표 아이템이 있어야 겨우 실행에 옮긴다. 작년에 이사 온 아파트는 길만 건너면 백화점인데 지하 식당가는 여러 번 갔어도 일 년 동안 여성복 코너는 단 한 번을 안 갔다. 직접 걸음을 하는 오프라인 쇼핑이 줄은 건 아무렴 시간과 체력 때문이다. 고로 나 말고도 공감하는 또래들이 꽤 있다.


그래서 핸드폰 쇼핑앱을 열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더라. 그런데 온라인이 더 어려운 사람이 바로 나다. 우선 불안하다. 뭘 걸쳐도 태가 나는 몸이 아니니 여전히 입어 봐야 안심하는 쪽이다. 사 버릇하면 고르는 눈이 생긴다는 말은 동의한다. 맨투맨 같은 기본 스타일은 몇 번 시도해서 성공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선뜻 구매 아이콘을 누르지 못하는 건 품질, 가격, 등에 대해 너무 모른다. 브랜드에 대한 지식이 좀 있으면 선택이 쉬우려나, 그런데 몰라도 참 모르는 게 그 방면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십 대 여성이면 하나쯤은 있다는 명품백도 가격도 넘사벽이겠지만 몰라서도 살 수가 없다. 옷, 가방처럼 바로 사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이 없으면 안 사면 그만이다. ‘반드시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말자’고 이사하면서 했던 다짐은 의지보다 이렇듯 구매력이 떨어져서 무난히 지켜지는 편이다. 집들이 때 친구가 “집에 뭐가 없네” 했는데 지금도 뭐가 없다.


문제는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서두에 언급한 생활에 필수적인 소모품들 말이다. 조카 방 형광등이 나갔다. 방이 어두우니 곧장 사서 교체를 해야 했는데 마침, 이 경우에 ‘마침’이란 부사를 쓰는 게 과연 맞나?, 방학이 시작되어 조카가 제 집으로 가면서 방을 비웠다. 그렇게 두 달을 미루다 개학이 닥쳐서야 모델을 확인하고 검색을 시작했다. 아니, 기껏 형광등이 이렇게 상표가 다양하고 종류가 많다고? 몇 가지 사양을 확인하고 결정했는데 같은 제품도 사이트마다 가격 차이가 난다. 쿠폰 혜택이나 배송 조건, 등이 너무 제각각이다. 고작 몇 백 원, 많아야 몇 천 원이다. 그런데 섣불리 비싸게 사면 괜히 억울할 것 같다. 모르면 말 것을, 따져 본다고 또 머뭇거린다. 간신히 주문을 마치고 구매가 필요한 목록에서 ‘형광등’을 지웠다. 목록에는 아직도 사야 할 게 많다. 그러나 그날의 기력은 이미 다했다. 엄청난 일이 아닐 텐데 그 과정이 나에게는 정녕 큰 용기와 에너지를 요한다.


그래서 남은 목록을 보니 진실로 갑갑하다. 생필품 구매 대행 서비스가 절실할 수밖에. 세제든 두루마리 휴지든 부엌, 화장실, 등 때마다 파악해서 떨어지지 않게 쟁여 놔 주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전도연이 샐쭉한 표정을 지은 건 그런 아내는 생길 리 없어서였던가? 결국 내 몫이다. 목록에서 당장 사야만 하는 것들을 우선 훑는다. 몇 가지는 동네 슈퍼에서 가격 보지 말고 집어 오자고 장바구니를 챙겨 둔다. 그리고 마침내 검색을 시작한다. ‘아, 또 이렇게 많다고?’ ......벌써 힘들다.


좋은 물건 빠르게 찾는 요령, 아시는 분 혹시 계실까요?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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