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복잡했다. 식구도 많았고 자연히 일도 많았다. 어느 정도 많았느냐 하면 자그마치 약 15명 이었다. 우리 형제들만 해도 7명이었으니까 부모님 2, 조부모님 2, 고모들 2, 삼촌 1, 농사일 돕는 일꾼 2, 부엌일 돕는 이모까지 엄청난 숫자가 함께 살았다.
이 대가족의 실무 책임자는 우리 어머니였다. 아이들도 키워야 하고 그 많은 농사도 지어야 하고 시부모 시할머니까지 모시는 어머니 입장에서는 정신없이 지나가는 나날들이었을 거라 짐작이 된다. 그러니 어머니는 어떻게든 이 식구를 줄이고 싶은 생각이 많았으리라.
엄마가 식구를 줄이려는 대상(?)의 처음은 시할머니였다. 연세가 90이 넘으셨고 뒷방에 늘 누워계셨다. 중학교 1학년 이던 나는 아침 마다 등교하기 전에 끓인 누룽지를 들고 누워계시는 증조 할머니 입에 한 숟갈씩 흘려 넣어드리고 학교에 갔다. 물론 연세가 많으셔서 2년 후에 돌아가셨다. 아무리 연세가 높으시다 해도 아들되는 할아버지는 닭똥같은 눈물을 뚝둑 흘리시며 통곡하셨다. 장례식은 집안의 큰일이였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장례를 치렀다. 어린 내 눈에는 친척들까지 셈하면 수 백명은 족히 되는 것 같았다. 참 정신없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집이다. 좀 조용한데 가서 살고 싶을 정도였다.
어머니의 두번째 식구줄이기 희망 대상은 딸들이었다. 아들 찾는 집에서 딸을 내리 5명이나 낳았으니 어머니는 시집살이를 좀 했다.
"또 딸이냐? 참 어지간하다."
시어머니의 핀잔을 받으며 그렇게 매운 시집살이를 하다가 시집 온지 20년이 다 되어서야 어머니는 아들을 낳았다. 18세에 시집을 와 30대 후반에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아들을 낳았다. 그때의 엄마의 함박웃음이란! 갑자기 집안에 온기가 돌고 온 식구들이 막내를 보는 눈빛은 환희 그 자체였다!
경사는 경사고 어머니는 어서 이것들을 치워야 하는데 하는 눈빛으로 딸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첫째인 내 나이 18세, 고등학교 2학년의 꽃다운 나이였다. 당신이 시집온 나이였으니 빨리 가야 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기가 막혔다.
"아니, 아직 고등학생이잖아?"
할아버지는 한 술 더 뜨셨다.
"가시나 5명을 트럭에 태우고 아무나 달라는 놈 있으면 주는 거야!"
아, 여자로 태어나면 이런 설움을 받는 구나! 아무나 라니, 그럴 수는 없지!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그 말씀에 100번 동의하는 듯이 말했다.
"다 제 팔자대로 가는 거야, 얼른 치워야지!"
나는 너무나 억울했다.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엉뚱한 놈이랑 결혼했다가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떡하라고요? "
"아니, 왜 넌 아직 오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그랬다. 그때 난 그게 두려웠다. 성화에 못이겨 중매쟁이가 추천한 웬 이상한 총각과 급작스레 뱆어지는 결혼을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랬다가 평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한 이상적인 내 사랑을 만나면 큰일이지 않는가? 이미 결혼했는데 진짜 내 사랑인 그 사람이 딱! 나타나면 난 어쩌란 말인가!
"그 사람이 나타나면 어떡해요?"
"원 별소릴 다 듣겠네. "
그후 오랫동안 정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기 전에는 다른 남자를 만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게 가능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