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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을 비추던 카메라는 줌 아웃하여 한 여자를 담는다. 그 여인들에게 감희(김민희)가 찾아오며, 그들은 어떤 대화를 주고받는다. 몇 개의 컷을 거쳐 영화는 다시 원경을 비추고 감독이 직접 작곡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원경의 카메라는 다시 다른 여자를 담는 카메라로 이어진다. 감희는 다시 그를 찾는다. 홍상수의 신작 <도망친 여자>는 구조적으로 동일한 대화가 세 차례 반복된다. 반복은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이다. 우진(김새벽)은 감희에게 자신의 남편이 TV에 나와 강연을 하고, 북 콘서트를 하며 똑같은 주제를 반복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소름 끼친다고 한다. 기억에 의존하여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진심일 수 있겠냐는 이유이다. 심지어 그것은 매번 진심인 것처럼 보이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거짓된 연기를 더해야 한다.
영화의 대화는 종종 감정이 배제된 공허한 순간들을 포착한다. 예를 들어 영순(서영화)이 건네는 대사들. 영순은 이웃이 얼굴이 부은 것 같다고 하자 그렇다고 한다. 얼굴이 부은 여성이 다시 오늘 예정되어 있는 면접이 걱정된다고 하자, 영순은 얼굴이 붓지 않았다고 한다. 영순의 그러한 대화는 감희를 처음 만났을 때도 반복된다. 머리를 짧게 자른 감희를 본 영순은 정신 나간 고등학생 같다고 하지만, 감희가 되묻자 그것을 부정하며 귀엽다고 말한다.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첫 번째 말과, 이내 그것을 수습하는 말들. 그 반복에서 진심을 찾을 수 있을까. <도망친 여자>는 반복에서 진심을 찾으려는 것만 같다.
<도망친 여자>에서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도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들뢰즈를 도출하는 비평은 이미 존재하였고, 그의 24번째 영화인 <도망친 여자>에서 들뢰즈를 이야기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다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최근 홍상수의 영화의 경향성이다. 최근이라 함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이후를, 김민희라는 배우를 만나고 난 이후를 말한다. 5년 전 <지금은> 이후(5년은 <도망친 여자>에서 감희가 남편과 떨어지지 않고 같이 살았다고 한 시간과 동일하다), 홍상수 영화가 흔히 낳는 논쟁들은 때론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 논쟁은 대부분 작가의 도덕성과 작품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귀결되는데, 작가의 도덕성과 작품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마저도 영화 앞에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감상함에 있어 영화 밖의 정보가 영화 안에 겹쳐 보이는 경우에도 그것을 분리하려 노력하였는데, <도망친 여자>에 이르러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영역이었음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도망친 여자’는 논쟁 그 자체로부터 벗어난 어느 협소한 공간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도망친 여자>를 구성하는 세 개의 서로 다른 막은 각각 하나의 독립체로서의 성격을 지니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연관을 주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러한 연관은 시공간이나 어떠한 물리법칙, 또는 인과론적인 관계에서 벗어난 순전히 관념적인 것이다. 따라서 반복을 통해 <도망친 여자>가 찾으려 했던 것, 또는 영화를 통해 느꼈던 것을 설명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영화의 시간 법칙을 초월하는 것을 요구한다. 심지어 그것은 영화 밖의 이야기와 영화 안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이동할 것도 포함한다. 예술가 개인의 삶과 예술을 분리해야 한다는 말은 홍상수 최근의 영화에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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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그렇게 보는 것이 맞느냐고 묻는다면 <도망친 여자>의 카메라는 때때로 사적으로 기능한다는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감희와 영순은 육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살육당하는 송아지가 불쌍하다고 하며, 감희는 태어나지 얼마 되지 않은 송아지의 눈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 감희와 영순의 옆모습을 담던 카메라는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듯 김민희의 눈으로 줌인한다. 아니면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담배를 피우는 김민희를 담는 카메라. 이때의 카메라를 영화 밖의 정보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는 없다.
최근 홍상수의 영화에서 김민희 배우는 어딘가에서 도망쳤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는 독일과 강릉으로, <클레어의 카메라>에서는 칸으로, <그 후>에서는 출판사를 그만둠으로써 도망쳤다. 김민희는 때로는 영화의 발화자로(<지금은>, <밤의 해변>, <클레어의 카메라>), 때로는 관찰자로(<풀잎들>)로 등장했다. 그런 점에서 <도망친 여자>는 조금 다른 인상을 준다. 세 명의 지인을 찾아가는 감희는 그들의 삶을 관찰하지만, 카메라는 세 여인에게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쓸쓸해 보이는 감희의 얼굴을 줌인할 뿐이다. 영화는 세 지인을 관찰하는 감희의 모습을 관찰한다.
‘도망친 여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에 감독은 그것을 특정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영화는 명확하게 ‘도망친 여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다. 그곳에서 <도망친 여자>는 전작들과 비교할 지점이 생긴다. <강변호텔>은 나이가 든 인물의 육체를, 영환(기주봉)의 얼굴로 시작한다. 자연스레 영환을 감독의 페르소나로 읽던 관객들은 경수(권해효)와 병수(유준상)의 캐릭터를 접하며 혼란에 빠진다. 그것은 영화 밖 감독이라는 자아가 세 개의 캐릭터로 분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클레어의 카메라>에서 클레어(이자벨 위페르)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다닌다. 그런데 클레어가 완수(정진영)를 만난 시점과 만희(김민희)를 만나는 시점은 어그러져 있고, 만희의 여러 가능성은 다양한 시점에서 클레어의 카메라에 담기게 된다.
<도망친 여자> 역시 한 인물의 상황을 여러 인물의 것으로 나누어 놓은 것만 같다. 특히 김민희 배우의 영화 밖 상황이 영화 속 감희가 찾아가는 인물들에게 분산되어 있고, 카메라는 그 상황을 직접 마주하는 배우의 모습을 담는다. 감희는 수영(송선미)을 찾아간다. 수영은 집주인이 예술가를 좋아해서 전세금을 깎아주어 새로 이사하였다. 수영이 사는 동네는 시인, 영화감독, 소설가 등 예술가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언니가 예술가였냐고 묻는 감희의 말에 수영은 1년에 한 번은 창작 무용을 올리는 ‘가끔 예술가’라 말한다. 그곳은 아마 영화 밖의 배우가 도망쳐 온 공간일 것이다.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는, 예술가들과의 교류만이 허용된 어느 협소한 공간. 그곳에서 수영은 가끔 창작 무용을 하며, 배우는 가끔 영화를 찍으며 예술가가 될 것이다. 그 협소한 공간에서, 가끔 예술가가 아닌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씁쓸함을 카메라는 포착할 뿐이다. 감희가 영순을 찾아, 고기와 막걸리를 마실 때도 그렇다. 그들은 고기를 먹으며, 육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육식을 위해 도살당하는 생명들을 생각하면, 육식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지 못한다는 그들의 말들. 본능과 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의 대화는 영화 밖의 정보와 결합되었을 때, 그제야 쓸쓸함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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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여자>는 종종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CCTV 화면이나 창을 주요하게 다룬다. 감희는 화면을 통해 외부를 바라볼 뿐, 그곳에 나아가지 못한다. 영순의 집에 한 남자가 찾아와 고양이에 대해 항의할 때, 감희는 겨우 나와 고개를 내밀뿐이다. CCTV 화면을 통해 면접을 본 이웃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수영과 젊은 시인이 언쟁하는 모습을 감희는 CCTV 화면을 통해 바라볼 뿐이다.
감희의 마지막 방문은 우연히 영화관을 찾아 친구인 우진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그들의 일상적인 대화에는 현재 우진의 남편인 정선생(권해효)과 감희 사이에 과거사가 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한다. 감희는 지하 1층에서 북 콘서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진을 통해 듣지만, 그것을 외면한 채 영화를 감상하고 극장 밖을 빠져나온다. 극장 밖을 빠져나오는 순간, 감희는 정선생과 재회한다. 그리고 정선생에게 "그만 말했으면 좋겠다"라며 일갈한다.
감희는 마지막에 스크린 화면으로 다시 자신의 몸을 의탁한다. 스크린에서는 바다 수면이 잔잔히 흐른다. 인터뷰에서 감독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따온 장면이라고 밝혔다. 스크린 속으로 도망쳐, 객석에 앉아 영화를 보는 관객은 배우와 배역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순간이다. 동시에 그 관객을 줌인하는 것은 카메라와 감독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순간이다. 단언컨대 <도망친 여자>는 홍상수의 가장 취약한 영화이다. 그의 영화가 자신을 변호할 뿐이라는 비판에 대해서, 그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내던져버렸다. 그 백기 투항에 적어도 나는 돌을 던지지는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