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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Nov 23. 2020

자각몽


 눈을 떠보니 열기구 안이었다. 공기 중엔 향수라고 불릴만한 것들이 지나가고, 점점 위로 올라가는 열기구에 몸이 떨렸다. 처음 느껴보는 붕 떠있는 느낌과 짙은 주황색, 웅장한 열의 소리는 신비로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곳은 하늘의 바다라고 불릴 만한 곳이었고 깊은 심해에 있는 것처럼 고요했다. 귀를 기울이면 바람이 희미하게 들렸지만, 그건 더 멀리 가기 위해 잠시 내 어깨 위에서 쉬고 있었을 뿐이었다. 의식을 하면 금방 사라지는 탓에, 나는 입을 닫고 모른 척했다.


 서서히 지고 있는 노을뿐이었다. 유일하게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그건 시간을 견디지 못해 바다로 떨어지는 중이었고 나는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그 모습이 좋아 무의식적으로 턱을 굈다. 노을을 감싸주던 수많은 구름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 작별인사라도 하듯 자신들을 노을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사라지고 스며들고 바래지는 색이라고 해야 할까. 정말이지 그것들은 매일 그렇게 인사를 하고 헤어지다가 마지막엔 마구 뒤섞이는 것 같았다. 동화 속 이야기처럼 그들은 각자의 영혼과 이름, 감정이 있었고 서로를 이해하고 애정했다. 그들은 이곳에 온 첫 인간이 나라는 걸 깨달은 후에는 내가 타고 있던 열기구를 세상의 끝으로 밀어주었다. 노을의 마지막 반점이 사라짐과 동시에 구름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정말 영혼이 있었다.


 밤이 되자 나는 낮과 밤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낮의 하늘이 잔잔한 호수였다면, 밤의 하늘은 무한히도 깊어 속을 알 수 없는 바다였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아도 하늘을 볼 수 있었고,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들여다보면 무언가가 반짝거리고 있다. 해파리인지 은갈치인지 모를 것들이 자꾸만 꿈틀거린다. 자세히 보기 위해 인상을 찌푸리다가 그곳에서 갑자기 별똥별이 펑 소리를 내며 뛰쳐나왔다. 그들은 한 곳에 고여있는 것을 참지 못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낮에는 꼭꼭 숨어있다가 밤이 되면 누구보다 신나게 춤추는 것들. 고결하고 순수했던 아름다움은 이제 만인의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말하기를, 유성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게 되면 소원을 빌라고 했다. 그 이유인즉슨, 그것을 그만큼 보기 힘들거니와 이토록 다른 세상에서 날아온 티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에겐 정말 희귀한 경험이 아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감상이 아닌 소원이라니. 무릇 그들의 존재의 이유를 헤아렸다. 그건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스스로가 빛나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자신들을 바라봐 주는 거니까.


 유치하지만 그렇다. 별을 세는 걸 좋아하던 내가 저 웅장한 모습에 반해 떨어진 별들을 센다. 쉰 하나, 쉰둘, 쉰셋. 퐁퐁 떨어지는 별은 어느새 바다가 되어 숫자를 세기에는 의미가 없어진다.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그러다 머리에 뚝뚝 떨어지는 무엇에 신경이 쓰여 다시 위로.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았다. 버너에 뜨거운 열이, 활활 타오르는 불이 있어야 할 곳에 손바닥만 한 우주가 있었고 그곳에선 마치 소나기가 내리듯 반짝거리는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별을 가까이서 보면 굉장히 커다랄 줄 알았는데, 막상 눈앞에서 보니 그들은 하염없이 작고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이런 것들이 열기구 안에 들어왔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라, 설마 구멍이 뚫린 건가 싶었지만 열기구는 원래 그런 일인 양 조용히 날고 있었다. 나는 이게 꿈이라고 확신했다. 이제 자각몽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뭘 해야 하고 뭘 느껴야 하는 건지. 꿈인 걸 알게 돼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는 건지. 어떻게 저 별들이 나에게로 오는 것이며, 설마 그것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도 아니면 어떤 과학적인 장치로 인해 순간 이동되어 내 열기구 안으로 들어오는 걸까. 수많은 의문점을 뒤로하고, 나는 그 별들에 젖어줄 마음이 없어 내 몸을 덮어줄 것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구석에 세워진 우산이 보였다. 손잡이를 보니 내 이름 석자가 쓰여있다. 나는 우산을 잡아 펼쳤고, 펼쳐진 내 우산에 튕겨져 나간 별들은 지상에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반짝거렸다. 별이 빛을 잃는다는 건 생명이 다하는 것과 같아서 그들은 빛을 뽐내려 발버둥 쳤다. 그 모습을 안타까워했고 구태여 왜 저렇게 빛나려 하는지 생각했다. 빛나지 않는 별. 반짝거리지 않는 별. 있기야 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별. 아. 그런 걸 누가 바라봐 주겠는가. '별'이라는 존재는 빛나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아름답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충분히 행복하다면 좋을 텐데. 행복의 척도가 단순히 저 별의 숫자라면 좋을 텐데. 나도 누군가에게 빛나고 싶은 순간이 기억나면 좋을 텐데.


꿈속이라지만 어떻게 모두가 살아 움직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꿈속이라서 가능한 걸까. 구름, 별, 바다, 심지어 바람까지 그들은 마치 지상에서 대화가 안 통하는 인간들을 상대하다가 처음으로, 혹은 아주 오랜만에 자신들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를 만난 것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은 어찌 보면 내 맘속 깊숙한 곳이 틀림없겠지만, 상상 속의 무대 라기에는 너무나 구체적인 곳이었다.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시작되는 꿈 속에서 나는 작별을 고하듯,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현실로 돌아왔고 오히려 그게 꿈이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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