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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Nov 26. 2020

사랑은 여행이었음을

사랑은 여행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잠시 여행을 가기 전의 느낌을 떠올려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만큼 공을 들입니다. 여행지와 관련된 책을 읽고 블로그를 훑어보며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 나름 신중해지는 순간입니다. 떠나기 전인데도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습니다. 벌써부터 김칫국입니다. 내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 어쭙잖게 준비하는 것보다 조금 더 마음을 다한다면, 그래야 후회가 덜할 겁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같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더 명확해지고 싫어하는 것은 모호해집니다. 다시 좋아하게 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여행은 이토록 낭만적입니다. 그곳은 어떤 곳일까요. 그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얼마나 내 안에 폭 담길까요. 여행을 준비하는 백팩에는 화장품이니, 옷이니 이런 것들보다는 말이죠. 단지 그곳을 잘 담고 오겠다는 마음, 그거 하나만 잘 포장하면 되겠습니다.


 비행기에 내려 숙소로 가는 기차 안, 어쩐지 기분이 묘합니다. 오들오들 떨리는 것이 마냥 추워서가 아닌듯합니다. 당장 이 마음을 진정시킬 것이 필요해 가이드북을 꺼내듭니다. 제가 가야 할 곳을 미리 탐색합니다. 이미 읽었던 것을 또 읽어서 그럴까요. 잠이 오기 시작합니다. 여행까지 온 마당에 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번뜩 창문에 머리를 박고 바깥 풍경을 바라봅니다. 기차 안의 열기 때문에 뿌옇게 보였던 바깥세상. 메고 있던 목도리로 창문을 살짝 닦습니다. 그 빈틈으로 보였던 풍경엔 사방이 새하얀 눈으로 쌓여있습니다. 새벽 이른 시간의 밖이라 아직은 어둑했던 그곳에서 나는 중간중간 지나치는 노을 색 전등에 몸이 녹아 결국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잠에서 깨면 책의 맨 뒷장에 이곳을 적어야겠습니다. ‘잠이 잘 드는 길’ 이라고요.


 기차가 멈추고 고대했던 여행지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시작된 새로움의 연속. 막상 와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뭔가 다릅니다. 분명 이럴 줄 알고 저럴 줄 알았는데, 그래서 이곳에 온 건데 라는 마음이 듭니다. 그것은 아마 날씨의 영향도 있겠고, 건물과 사람의 색이 다른 것도 있겠으며 무엇보다 내 마음과는 다른 냄새가 꽉 차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여행을 예상한다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의 안녕에 우리가 맞춰야 합니다. 그러다 길을 잃기도 하겠죠. 정답이 존재하는 지도를 우리는 늘 맞추지 못합니다. 어떤 첨벙거리는 것이 내 마음에 침범하는데 여행을 하면 이런 존재를 꼭 한 번씩은 만납니다. 저는 에라 모르겠다, 하며 눈앞에 보이는 닭꼬치 집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확연하게 느낍니다. 여행은 정말이지 사사롭지 않다는 것을요. 그곳에서 먹은 닭꼬치가 내 인생 최고의 닭이었다던가, 너무 맛있었던 마음에 그걸 흔적으로 남기고 싶어 찢어진 종이에 '잘 먹고 갑니다'라는 글을 적었다던가, 물론 한국어로 적은 탓에 그 사람들은 낙서로 보이려나 피식 웃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의도하지 않게 만들어낸 오답은 이제 저에겐 정답일 겁니다.


 시간이 흘러 설렘과 새로움에 익숙해져 그곳과 뒤섞일 즈음엔, 제한된 시간에 한탄하며 작별의 짐을 싸고 인연을 마무리합니다. ‘아, 그곳에 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곳엔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때 말을 걸었어야 했는데’ 하며 아쉬워하며 후회합니다. 물론 그곳에 쭉 눌러앉는 사람이 있습니다. 새로운 감정보다 익숙한 감정이 두터운 사람. 그곳의 날씨, 그곳의 냄새, 사람과 건물의 색이 전부 스며든 사람. 단지 스쳤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 결국 여행이란 건 새로운 걸 느끼고 싶어 하는 것보다 진부하지만 익숙했던 무엇을 더 떠올리게 하는, 그런 기억 회상의 매개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기사 사랑은 여행인 거니까요. 사랑이란 목적지만 있을 뿐, 그 후의 일은 우리에게 달려있는 거니까요.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쉬움에 눈물이 흐르기도, 허탈하게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드는 생각. ‘잘 담고 갑니다‘

담았다는 말이 좋습니다. 어디에 담았을까요. 그것은 마음 일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무엇을 담았을까요. 그것은 그야말로 사랑, 일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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