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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Jan 07. 2021

속초

 바야흐로 2015년의 1월, 눈은 오지 않았던 새하얀 겨울의, 강원도 속초였다. 21살의 나는 군대를 가기 전 마지막으로 겨울바다를 보러 갔다. 왜 하필 속초를 선택했느냐 하면 글쎄다. 남해 바다는 어릴 적부터 자주 갔던 곳이었고, 서해 바다는 집에서 가까워 떠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조금 멀리 떨어진 동해바다였나 보다.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 겨울의 끝자락에도 나 혼자였다. 가족들에겐 다녀온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곳의 밤이 되어서야 바다를 보러 왔다고 했다. 부모님은 나름 걱정을 하셨던 것 같은데 금세 아들의 까까머리가 떠올랐는지 한숨을 푹 쉬고는 잘 다녀오라는 말을 해주셨다. 출발할 때는 그냥 바다만 보고 돌아가려 했으나 속초 역에 내리자마자 맡게 된 바다의 비릿한 향 덕에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2시가 넘어 도착해 처음으로 들렸던 곳은 바다가 아닌 횟집이었다. 바다에 왔으니 회는 먹어야겠고 갓 잡아 올린 회의 싱싱함도 느껴봐야 오길 잘했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횟집이 어찌나 많던지, 그곳이 이곳이고 이곳이 저곳 같은데 뭔가 다른 맛이 있었던 걸까. 가격이 다른 건지, 가게의 풍이 다른 건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 미묘한 차이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잘 알려나. 나는 가장 가까운 횟집에 들어가 회덮밥을 먹었다. 맛은 집 앞에서 파는 것과 같았지만 이곳에서 먹는 회덮밥이 더 맛있다고 내심 투정을 부렸다. 그래야 속초에 왔다는 거니까.


 밥을 먹고 바다를 보러 갔다. 1월의 겨울바다는 고요했다.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과 적절한 파도 소리. 칼바람에 베일 듯한 추위에도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보게 된다. 순간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잠시라도 세상의 소리가 멈췄으면 좋겠지만, 파도의 소리는 멈춤을 이어간다. 그곳에선 그냥 생각을 멈추면 되는 거다. 하염없이 바다를 걷다가 어느새 밤이 되었다. 속초의 밤은 깨끗했다. 바다 위의 별들은 파도 소리를 냈다. 어디선가 희미한 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였다.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였다. 아. 바로 뒤를 돌아 시장으로 향했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닭강정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는 시장에는 사람이 북적였다. 오징어순대나 코다리 냉면같이 속초의 유명한 음식점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감자전을 파는 아주머니에게 시선이 갔다. 목욕탕 의자를 펴놓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철판의 감자전과 막걸리가 담긴 항아리가 있었던. 하필이면 이토록 추운 날, 가게 안이 아니라 밖에서 먹는 이유가 바로 저 감자전 냄새였다니. 나는 자리에 앉아 인사를 건네고 감자전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손바닥만 한 항아리에 담긴 막걸리는 여타 먹었던 것들과는 사뭇 다른 맛이었다. 코끝까지 치고 올라오는 쓴맛에 정신을 차렸다. 아, 내가 속초에 왔구나. 나는 달달한 술이 좋은데.


 아주머니는 통통하게 생긴 감자를 강판에 슥슥 갈았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감자를 투하, 곧 색이 노리끼리하게 변하자 진한 감자 냄새가 났다. 지글지글 익는 소리는 막걸리를 한 사발 더 마시게 해주는 소리가 분명했다. 아주머니는 방긋 웃으며 구워진 감자전과 파가 송송 올려져 있던 간장을 주셨다. 어디 보자, 강원도는 감자가 유명하다던데. 이토록 낭만적인 날에 그렇게 맛있다던 감자를 먹어볼까 하며 한 조각을 입에 쏙 넣었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들었던 생각. 뭔가 잘못됐다. 분명 냄새도 좋고 맛있게 구워진 것 같은데 소금을 안쳐서 그런지 너무 싱거웠다. 이게 조미료 없는 진정한 감자전인가. 나는 짭짤한 감자가 좋은데.


 야심 차게 준비했던 감자 먹기는 물 건너가버렸다.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 떠나기엔 막걸리가 아직 한 사발 남았다. 에잇 술에 취해 감자전 한입에 왕 넣고 자러 가야지 할 때, 내 옆에 있던 남자가 말을 걸었다.


“혹시 군대 가시나요?”


 헉, 어떻게 알았지. 앳되보이는 얼굴로 혼자 술을 먹어서 그런가. 티 안 내려고 모자까지 쓰고 왔는데. 


“네, 다음 주에 군대 가는데 마지막으로 겨울바다 보고 싶어서 왔어요.”


 남자는 쓱 웃더니 말했다.


“감자전 맛있죠? 제가 살게요”


"네?"


 이유가 궁금했다. 이런 걸 의식의 흐름이라고 하는 건지. 겨울바다를 보고 싶어서 왔다니까 대뜸 감자전이 맛있냐는 질문과 대신 돈을 내준다는 의미는 뭐였을까. 내 표정은 분명 맛이 없다는 표정이었을 텐데 말이지. 당황한 나머지 주인아주머니를 힐끗 쳐다봤다. 입가에 웃음이 가득한 채 감자를 계속 갈고 계셨다. 그때서야 이 어색한 상황을 깨달았다. 어린 나이에 먹기엔 참 맛도 없다는 걸 그 사람들은 알고 있었겠지. 그걸 알아서 괜스레 '맛없는 거 알아, 그래도 이곳에서 좋은 기억만 담고 가'라고 내심 물었던 거겠지. 나는 내가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도 오히려 감자전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버렸네. 나라는 사람은 정말 바보다. 누가 봐도 못생긴 감자전 안에는 이미 사람의 진한 냄새가 가득 찼다. 나는 호탕하게 웃고는 그 맛없는 감자전과 막걸리를 한 사발 쭉 들이켰다. 강원도 속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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