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걸 좋아한다. 아니 글이다. 글 읽는 걸 좋아한다. 긴 글보다 짧은 글이 좋고, 건조한 글보다 촉촉한 글을 좋아한다. 글을 잘 쓴다는 말을 가끔 듣곤 했지만 어느 글쓰기 대회나 공모전에 입상해 본 경험이 없으니 나는 그냥 겉모습만 번지르르 글 적인 사람이다. 어릴 적엔 연애편지도 곧잘 썼는데 그 인연의 끝은 결국 이별뿐이어서 결국 그것도 번지르르 글인 척하는 사람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인지 외로움의 계절인지 관심이 없고, 단지 바위처럼 묵묵했던 마음이 바람이 붐과 동시에 산발하기 시작할 뿐이었다. 한 곳에 시선을 두기가 어려워 가슴이 벌렁벌렁 뛴다. 마치 절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절박하지 않은 그런 마음. 간절하지 않은 마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그건 무엇을 위한 간절함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건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하늘에 연을 날리 듯 꼭 무언가에 조종당하는 것 같지만 사실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아무리 멀리 가도 무언가가 꽉 붙잡고 있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그러다 다시 되돌아오는 것처럼.
글을 자주 읽는 장소는 늘 떠나는 길이었다. 집도 카페도 아닌 그야말로 출근길의 지하철. 1시간 남짓동안 읽을 수 있는 간헐적인 시간. 유독 사람이 많은 시간대와 장소는 조용히 책을 읽기에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떠나는 길에 읽는 글이 좋았다. 고여있지 않는 글이 좋았다. 그래서 내 책갈피를 엽서로 쓰고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이 그려진 엽서. 떠나고 싶은 마음을 엽서에 마구 담는 거다. 그 담백한 마음은 내 방 책상 위에 있다가 지저분한 가방 속에 들어있다가 지하철에 올라타 잠깐 책을 펼쳐낸 나로 인해 바람을 쐰다. 어딘가에 도착했을 땐 책을 덮고 그곳에 다시 잠이 든다. 밤이 되어 다시 책을 꺼내기 전까지.
그 엽서를 그린 작가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잘 지내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인사말 대신 내가 처음으로 했던 말. ‘작가님의 엽서를 책갈피로 쓰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손수 그려준 그림 한 장을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그건 그거대로 괜찮을 거예요. 그 엽서 뒤에 조그맣게 적어놨습니다. '이걸 보는 사람 모두 행복하세요' 누군가 우연히 보는 날엔 엽서에 깃들어 있는 것이 그 사람에게 날아가는 중일 겁니다. 떠나려다가 결국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 살짝 담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