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좋아한다. 생크림같이 새하얗고 풍선처럼 둥글둥글하면서 바람이 서늘하게 부는 날에는 마치 생선뼈처럼 가늘게 늘어져 곳곳에 빈틈이 보이기도 하는 그런 구름을 좋아한다. 모양이 제각각이라 뭉게구름이니, 새털구름이니, 생긴 대로 불리는 것들은 그들만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영혼과 무게를 가지고 하염없이 떠돌아다니는 걸 보면 이토록 자유로운 존재임이 틀림없겠으나 구름은 본디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하늘을 수백 번 보더라도 구름은 수천 번 볼 수 있는 것이다. 구름 사이로 노을 진 색이 쭉 삐져나오는 날에는 그 색을 직격으로 맞아 몸이 사르르 녹았고, 그러다 잠에 들면 구름 위를 헤엄치는 꿈을 꾸기도 한다. 나는 수영도 못하는데 구태여. 그러니까 꿈은 꿈인 거겠지. 그저 이룰 수 없는 알량한 꿈.
꾸리꾸리 한 날엔 마음이 고요하지가 않다. 사람은 해를 보고 살아야 하는데 해가 없는 날엔 기필코 우울해진다. 아일랜드나 영국 사람들이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것처럼 구름은 있다가도 없어지길 바라는 존재가 된다. 비가 오는 날에는 더 그렇다. 그 음산한 습기와 비릿한 비 냄새는 구름 속에서 빠져나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에 철퍼덕 넘어지거나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하는. 비는 그렇게 몸과 마음을 적적하게 만든다.
하지만 모든 비가 암울한 건 아니렷다. 어쩔 땐 반갑기도 하다. 피아니스트 이루마의 ‘Kiss the rain’은 그의 영국 유학시절에 비가 내리던 날, 다리를 건너던 중에 우연히 떠오른 곡이라고 한다. 앨범에 넣지 않으려고 했는데 스튜디오 시간이 남아 어쩔 수 없이 녹음하게 된 곡. 단 몇 분 만에 탄생한 것 치고는 비와 키스하는 소리가 참 여운이 있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비는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오랫동안 젖힌다. 비라는 건 그날의 많은 슬픔이 모이고 모여 하늘로 올라가 우리 대신 눈물을 흘려주는 것이니, 그들도 기억해 주길 바란다는 마음에 비를 내려주는 것뿐일 테니까.
기억을 짜내도 들리지 않던 그 사람의 목소리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들린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인상을 찌푸리다가 버스 창가에 비친 얼굴은 내가 아닌 그 사람의 것이었다. 왜일까. 왜 사라졌던 기억은 예고도 없이 이렇게 찾아오는 걸까. 잊지 못해 그러는 건지, 기억해야 해서 기억이 나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것들이 떠오를 땐 내 옆으로 바람이 살짝 지나간 것 같기도 한데, 하늘을 보면 비구름이 먹먹한 것이다. 내 여린 마음과 불안함을 나에게서 가져간 건지도 모를 테니 그것들을 보며 그저 고마워하게 된다. 별안간 찾아오는 기억들은 구름처럼 잡히지 않고 비처럼 자유로운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