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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Jul 18. 2022

예측 불허

 

 머리는 예측된 고통에 미리 대비한다는 말, 너무 큰 슬픔이나 고통이 찾아오면 머리로는 ‘이제 많이 아플 거야’라고 인식하게 된다. 머리로 먼저 이해해야 몸이 반응한다. 가슴은 고통과 슬픔을 대비할 수 없다. 너무 갑작스러워 미리 준비할 수도 없는 통증은 머리보다 가슴으로, 가슴에서 가슴속 깊은 곳까지 뚫어버린다. 어떤 것이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한데 준비되지 못한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깜짝 놀랐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아픔이 점점 무뎌지게 된다. 그게 바로 후유증이다. 고통마저 무뎌지는 것.


 고등학교 2학년 때 권투를 했다.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는 곳에서 1년 조금 안되게 배웠다. 다닌 지 보름정도 되었던 날이었나, 관장님이 갑자기 링으로 올라오라고 하신다. 링 위에는 대추처럼 피부가 그을린 사람이 마우스피스를 끼고 헤드기어를 차고 있었다. 설마 저 사람이랑 스파링을 하라는 건가? 싶어서 이게 뭐냐고 물으니, 일단 맞아보란다. 그래야 악이 생기고 맞을 줄 알아야 때릴 수도 있다고. 가슴이 벌렁벌렁 뛰는 게 설마 죽기야 하겠어 하며 올라갔는데, 종이 땅 울리자마자 날아오는 펀치에 주마등이 스쳤다. 살면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맞아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코피가 흐르고 눈에는 멍이 들고 다리는 부들부들 떨리는 게, 이 사람은 적당히라는 단어를 아예 모르는 사람 같았다. 어떻게 갓 배운 사람한테 이렇게 무자비할 수 있을까. 1라운드가 끝나자마자 기진맥진해서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자 관장님이 와서 한 마디를 한다.

‘다음에는 덜 아플 거다’


 그때 느꼈던 것 같다. 지금 느끼고 있는 고통은 내가 그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맞은 거라 더 아픈 거구나. 내가 좀 더 운동을 하고 체력을 키우고 피하는 법과 치는 법을 배웠으면, 같은 주먹을 맞았어도 똑같이 아팠을까. 다음에는 좀 더 잘해야지,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그렇게 쌓인 다음들을 언젠가 써먹을 날이 올까 싶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언제 닥칠지 모를 그것에 무뎌지는 것뿐이었다.


 물리적인 것은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으나, 사람 사이의 일에서의 가장 큰 슬픔. 내 일부가 사라지는 것. 그건 도저히 내가 대비할 수가 없다.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 단련해도 맷집이란 게 생기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고, 갑자기 찾아오는 이별은 정말 큰 아픔이었다. 그래. 누군가 죽는 건 당연한 거지만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그날을 미리 알았다면 이만큼이나 아팠을까. 아니, 그날을 알았더라면 그날이 오기 전의 모든 날들이 아팠을 거다. 더 잘해주지 못한 미련과 후회에 더 아팠을 거다. 애정이든 사랑이든 사람 사이에서 자꾸 움찔거리는 것이든 그 모든 게 하나로 압축되었다면, 그 크기가 클수록 아픔은 커지는 거다. 그건 마치 시속 150km의 속도로 날아오는 야구공과 같으며, 그 야구공에 맞아 쓰러져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이며, 그 비행기가 지나간 곳엔 구름이 케이크처럼 잘라져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충격은 한 번뿐이 아니다. 아픔은 오랫동안 연쇄작용한다. 천천히 무뎌질 때까지.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막상 그런 일이 일어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하루 동안 밥 한 톨도 먹지 못하는 내 모습은 정말 바보병신이 따로 없었다. 사람이 물만 먹어도 살 수 있다는 게 사실이었다. 울다가 잠들기를 반복하다가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나가서 운동을 해봐도 아픈 건 똑같았다. 피폐한 건 여전하다. 단순히 이별에만 후유증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같이 보냈던 기억 속에도, 지나간 거리에도, 심지어 쏟아지는 빗방울에도 자세히 보면 과거에 스쳤던 감정이 보였다. 그런 걸 추억이라고 하기엔 단순히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이 아직까진 그 잔류가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는 거겠지. 그러니까 나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싫어하지만 그 말을 어쩔 수 없이 믿어보는 것이다. 믿기 싫지만 이것밖에 답이 없다는 걸 알아서. 물집이 생겨도 좋고, 흉터가 생겨도 좋으니까 얼른 무뎌지기를. 그래야 그것을 떠올릴 때 마냥 가슴이 저린 게 아닌, 바람이 휭 부는 것처럼 서늘할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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