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lway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min Oct 23. 2020

겨울

 겨울(冬)은 의미 있는 계절이다. 북반구의 겨울은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계절이며, 밤에는 별이 가장 밝게 보여 많은 이들에게 ‘인연’이라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준다. 눈(雪)이 파르르 내리는 날에는 온 세상이 새하얗게 뒤덮여 흡사 설산(雪山)을 떠오르게 만들고, 12월의 큰(大) 날인 크리스마스에는 누구나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망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뜨거운 어묵과 붕어빵 향이 고급 호텔의 레스토랑보다 값지게 느껴지며, 호떡의 꿀은 마치 장인이 담근 꿀보다 달기도 할 것이다. 이런 것들로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진 차가운 무언가가 녹아 내려지는 느낌은 오직 겨울만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에게 겨울은 서럽고 힘들며 배고픈 계절이기도 하다. 흔히 겨울을 난다고 표현을 하는데(겨울에만 쓰이는 표현이라는 건, 특히 의식주에 모두 무리가 오기 때문에) 따듯했던 음식은 금세 이가 시릴정도로 차가워지고 찢어진 패딩 속, 작은 구멍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사람들은 가슴 아파한다. 이 글을 쓰면서도 어렴풋이 떠오른 겨울들 덕에 마음이 시린다.


 겨울의 한을 느낄 즈음 드는 생각. 이토록 추운 계절에 가장 와닿는 온도는 차가움이 아니라 따듯함이 아닐런지.

봄의 따듯함과 곧잘 비교되는 이 온도는 겨울에 한해서만 느낄 수 있어 추위를 안타는 사람들은 공감이 힘들지도 모르겠다. 안경에 김이 서릴 정도의 온도. 전기장판에 앉아 잔잔한 재즈 노래를 들으며 감귤을 먹을 때의 온도. 추운 날 발을 동동거리며 정류장에서 좋아하는 이를 기다리는 온도.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는 그녀를 보고 해맑게 웃는 온도. 그리고 포근해지는 마음. 그렇게 봄에도 느끼지 못하는 따듯함을, 겨울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기사 '따듯하다'라는 감정은 정말 따듯할 때보다 추울 때 더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겨울은 마냥 춥지만은 않다.


 '겨울'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났던 것. 내가 겨울을 그토록 기다렸던 이유. 겨울이 오면 늘 설렜던 이유. 그리고 내 안의 겨울이 늘 따듯했던 이유. 헤아려 보기 전에 먼저 떠오르는 건 바로 너라는 사람이었다.

너는 어느 때보다 차갑고 싸늘하면서 눈이 내리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두꺼운 외투 주머니에 손을 폭 넣어 날아가는 나비의 색깔을 보고, 작은 새들의 소리를 하나의 음악이라 생각한 너는 겨울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겼다. 나는 추위를 잘 타 네 옆에 있으면 몸이 따듯해져 금방 잠이 오곤 했는데 그걸 본 너는 실없이 웃기만 했다. 한겨울의 칼바람이 아닌 고작 네 말 한마디에 나는 더 깊게 베일 것만 같았고, 네가 가끔 따듯한 말 두어 마디를 해주면 헤벌쭉 바보가 되는 내 모습이 정말 나다운 모습이었다. 이따금씩 마음이 추워지는 느낌이 들어 그것들을 녹여줄 곳을 찾아 헤맬 때는 너 말고 딱히 생각나는 곳이 없었다. 그렇기에 너는 나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따듯한 존재였다. 8월의 한여름에도 모포를 뒤집어쓰고 자는 내가, 너에게 안기고 싶어 더 추워지길 바랐던 내 모습이 바보 같았으나, 그렇게라도 내 마음에 솔직해지고 싶었을 뿐이다. 그만큼 너를 사랑해서겠지. 그래. 나는 분명 너를 사랑했다. 내가 너를 떠올릴 때는 이미 주위의 온도가 따듯해지고 있어서, 그래서 늘 추운 겨울이 얼른 오기를 바랐다. 그래야 따듯함이라는 걸 더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네 앞에서는 늘 겨울이 보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어쩌면 네가 내 겨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모든 걸 녹일정도로 뜨겁게, 아주 뜨겁게 서로를 사랑했던 시절이 있었으니, 나에게 겨울은 마냥 희고 추운 계절이 아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측 불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