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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대협 May 23. 2024

한국인의 광기를 보여주자

DAY 2 로마 남부 투어

유럽은 배낭여행의 성지이다. 아니, 성지였었다. 이제는 패키지여행의 성지이다. '영프스이' 4개국 10박 여행은 학생시절을 회상하며 다시 모인 중년 여성들의 동창회 필수코스이다. 소꿉친구들과 '먼 나라 이웃나라' 소풍으로 인천공항은 하하 호호 들뜬 분위기로 연일 화기애애하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패키지여행의 인기에 힘입어 유럽 현지에서 구성되는 한국인용 패키지 투어 상품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나도 그중 '유로자전거나라'의 '로마 남부 투어', '바티칸 시국 투어'와 '로마 버스 투어'를 예약해 놓았다.

로마에서 출발하는 남부투어는 오전 7시에 출발한다.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3개 도시의 약자를 따서 '나폼소' 투어라고도 한다. 하지만 어떤 투어상품도 나폴리는 거의 가지 않는 듯하다. 나폴리도 과거 왕국의 수도였으니 관광명소가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치안이나 교통상 번거로움 때문인 듯하다. 

나폴리의 이미지는 일단 항구도시라는 데에서 거친 과격함이 기본으로 깔려있고, 마피아의 거점이라는 데에서 폭력성이 배가된다. 엘레나 페란테가 그린 70년대의 나폴리에서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가부장적이고 전근대적인 가정에서 지금으로 따지면 학대에 가까운 취급을 받으면서 양육되고, 그로 인해 폭력성이 자연스럽게 배양된다. <나폴리 4부작>은 치정과 성장, 성공과 회한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 모든 흐름의 기저에 깔린 것은 야만과 폭력이다. 나폴리에서는 사람이든 도시든 비릿하게 진동하는 날 것의 냄새가 난다. 아직도 가장이 존중받아야 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가풍을 따라야 하는 가족중심주의가 아우르고 있어, 어느 정도는 보수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는 것 같다.

7시에 출발하는 전세버스를 두고 한국인들은 좋은 좌석을 차지하기 위해 6시부터 탑승하겠다고 온다. 남부 투어가 있는 날, 민박집에서는 아침밥을 6시에 준비해 주신다. 등교를 앞둔 고등학생 자녀에게 엄마들은 새벽부터 불고기 반찬이 든 도시락을 싼다. 이것이 한국인의 모정이다. 놀러 나가는 아들, 딸뻘 여행자들을 위해 민박집 사장님은 이른 새벽부터 아침밥을 짓는다. 이것이 한국인의 광기다. 

로마에서 제일 먼저 도착하는 폼페이까지는 3시간 거리다. 버스가 출발한 지 1시간쯤 되면 휴게소에 한 번 들르는데, 가이드께서 권고한다. '이 휴게소에서 꼭 화장실을 사용할 것, 그리고 그날 흡입할 포켓커피와 물을 쟁여놓을 것'. 이탈리아 특산품 포켓커피는 커피가 든 초콜릿으로 페레로 로쉐나 누텔라의 자매품이다. 겨울용은 초콜릿 내부에 커피가 들어 있어 초콜릿을 씹어먹으면 커피가 터져서 맛이 어우러진다. 여름용은 너겟초콜릿 크기의 컵에 에스프레소가 들어있고 미니 빨대가 같이 들어 있다. 커피와 초콜릿의 조합은 흔하겠지만, 이런 아이디어는 역시 커피에도 초콜릿에도 진심뿐인 이탈리아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폼페이는 로마 부자들의 별장이 많은 휴양지였다. 위치는 우리로 치면 대천쯤 되려나.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하면서 인구의 10퍼센트가 사라졌고, 도시의 모든 것은 3층 높이의 화산재에 뒤덮였다. 화산 폭발 직후 도착한 구조팀은 지상에서 폼페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폼페이는 그들의 발보다 6, 7미터 아래에 있었던 것이다. 대지진도 있었고, 간간히 용암 분출도 있었듯이 화산 폭발은 예정되어 있었다. 폭발 며칠 전에도 화산에 대고 불의 신 불카누스를 숭배하기 위해 성대한 제사를 올리고 있었다. 제사에 대한 화산의 대답이 되었으려나. 예정된 재앙을 방관했는지, 재앙의 크기를 오판했는지, 대응하기 역부족임을 알고 있었는지 사람들이 화산 폭발 순간까지 도시에 남아있었던 것이 의아하다. 하긴 21세기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해일이나 지진 위험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주민들이 많은데 1세기라고 다르진 않았을 것 같다.

주민이 없는 도시를 구경하는 것은 흥미롭다. 오히려 기이한 공허함이 있어야 더 재미있는 것 같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화덕, 지금과는 한참 다른 화장실, 얼핏 보아선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광고판, 너무나 멋들어지게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신전 기둥들. 과연 이곳에서 진짜 사람이 살았던 것일까, 이곳은 잘 마련된 세트장 아닐까 의구심을 느끼게 한다. 그러다가도 부잣집의 부유함을 과시하는 조각상, 놀랍도록 기발하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자이크 장식들을 보면 사람이라는 동물은 예나 지금이나 어찌나 똑같은지.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현대인과 더 유사한 점만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 <혹성탈출>이 픽션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천 년 동안 겨우 과학 기술 한 조각 발전시켰을 따름이구나

커다란 개 한 마리가 그늘에서 자고 있다. 주민이 없는데 어느 집에서 사는지 모르겠다. 혹은 살아 있는 존재가 맞는지 모르겠다. 폼페이 유적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스파게티 한 접시와 반찬 격으로 이탈리아식 오징어튀김 칼라마리를 먹었다. 나는 튀김재료보다 튀김옷을 좋아해서 치느님도 껍질을 맛있게 먹는 편인데, 이곳 오징어튀김은 튀김옷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다. 그래도 재료가 신선하고 좋은지라 바삭거리고 짭조름하니 맛이 좋았다. 밥을 먹고 있을 때 거리 악사가 기타와 탬버린을 치며 <산타루치아>를 부르길래 "브라보!" 외치며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악사는 떠나지 않고 연주를 끝까지 마친 뒤 그 탬버린을 뒤집어 동전을 받으러 왔다. 여행자들이 동전을 탬버린에 떨어트릴 때마다 마치 악사의 기분을 대변하듯 쨍쨍 울렸다.




식사를 마치고 포지타노로 향하는 아말피 해안가도를 달렸다. 남부 투어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하다. 국내에서는 동해나 서해 해안도로를 타더라도 절경이라고 할 만한 광경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석양이라든지, 아주 맑은 날이라든지, 시간대를 어찌어찌 잘 맞춰야 가능하다. 어차피 고국이라 감흥이 크지 않은 것일까. 

아말피 해안가도는 나폴리, 포지타노, 아말피, 살레르노를 잇는 소렌토 반도까지 50킬로미터에 이른다. 유럽인은 이 길을 '지상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passage from the earth to the heaven)'이라고 한단다. 아름답고 아름답고 또 아름다워서, 그리고 아주 사소하게는 절벽을 끼고도는 해변도로가 험난해서라고 한다. 특히 굽이굽이 도는 절벽 길 초장에 산등성이를 뚫은 터널이 있는데 버스가 그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하늘과 바다가 한데 어우러지는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질 때 승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 같이 탄성을 내뱉는다.

인터넷 후기에서 백이면 백, 로마에서 출발하는 남부투어를 갈 때 반드시 버스 운전석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앉으라고 한다. 버스가 아말피 해변 절벽을 돌 때 바다가 오른쪽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굳이 왜? 왼쪽 자리에서는 올 때 볼 수 있지 않나? 대답은 '볼 수 없다.'이다. 투어 경로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로마에서 포지타노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기 때문에 오른쪽에 있는 바다가 보이는데, 포지타노에서 페리를 타고 살레르노를 거쳐 로마로 복귀할 때는 내륙도로를 타기 때문에 바다가 안 보인다. 게다가 돌아오는 차선은 도로 안쪽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말피 해안가도의 절벽 절경을 보고 싶다면 꼭 로마에서 하행하는 버스의 오른쪽 창가좌석에 앉아야 한다.




오늘은 포지타노에서 정차하여 살레르노까지 페리를 타고 간다. 날이 좋지 않아 페리를 타지 못해야 소렌토에 갈 수 있는데, 오늘은 날이 좋아 소렌토에 정차하지 못했다. 소렌토 역시 부호들의 휴양지로 유명한데, 아기자기한 지중해풍 가옥과 경치를 보지 못해 아쉽다. 소렌토는 원래 근대에 번영하던 해양도시였으나, 내륙 산업화와 도시화로 젊은이들이 모두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는 바람에 노인들밖에 남지 않았다. 이에 도시로 떠난 아들딸들이 안녕하게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기원을 담아 만든 노래가 <돌아오라 소렌토로(Toma a Surriento)>인데, 이 노래 덕분에 도시가 다시 주목받고 없어졌던 우체국도 다시 만들어졌다고 한다. <제주도 푸른 밤>이나 <여수 밤바다>나, 국가만 있는 게 아니라 '도시가'가 실제 더 자주 불리고 생산성이 좋은 것 같다. 미지의 전설과 고유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마을은 노래든 영화든 이야기의 소재로 제격이다.

버스는 멀미 날 만큼 아말피 해안을 끼고 돈 후에 포지타노 마을 언덕에서 우리를 내려준다. 언덕에 내리면 졸래졸래 계단 소로를 타고 해변까지 내려갈 수 있다. 내려가는 길에는 이탈리아 시골마을의 다채로운 일상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 때문에 감탄한다. 타일로 만든 지번 문패, 멋들어진 쇠창살로 장식한 발코니, 그 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지각색의 화분과 이름을 알듯 말듯한 여러 가지 꽃들. 꽤나 흔할 수 있지만 지겨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코스이다. 가끔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께서 집을 수리하느라 벽에 사다리를 괘여 놓고 올라타시는 걸 보면 서커스를 보는 듯 조마조마 주먹을 그러쥔다. 굽이굽이 짧지 않은 골목길이지만 눈 깜짝할 새 해변에 당도했다. 




투어 코스의 일부인 페리를 타고 포지타노부터 살레르노 항까지 해상로로 이동한다. 뱃길에서 보이는 절벽의 장관과 그 절벽에 게딱지처럼 붙어있는 작은 주택들을 보면서 감상에 젖어들었다. 어떤 고급가옥들은 육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아예 없는 것처럼 보였다. 호텔인지 개인주택인지 모르겠지만 보트가 있어야만 출입할 수 있는 집이다. 외진 곳에 사는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 혹은 그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여유가 있는 집인 게 틀림없다. 

나는 언제 이런 곳에 별장 사고 언제 요트 사서 올 수 있나, 저 집은 얼마짜리일까, 저 호텔은 얼마짜리일까, 솔직히 이런 질투는 들지 않았다. 휴가에 있어서 뚜렷한 취향이 없는 나는 그냥 집구석에서 선풍기 쐬면서 밀린 웹툰들과 드라마 보는 게 최고다. 오늘처럼 멀리 떠나 온 여행도 휴양보다는 모험, 탐험, 발견의 지분이 크다. 

포지타노는 원래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부호들의 숨겨진 휴양지였으나, 브래드 피트가 앤젤리나 졸리를 줄기차게 데려와 구애하다가 파파라치에게 걸려서 들통난 곳이다. 연예인 걱정이 세상 제일 쓸데없다지만, 파파라치로부터 숨어 다니는 삶보다는 무플뿐인 인터넷 게시글 같은 나의 삶이 쏠쏠하게 좋은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서민인 나로서는 지금 내 수준의 삶에 만족할 뿐이고, 부자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누리는 또 다른 만족감이 있겠지. 헛헛한 마음을 위로하며 바다 너머로 지는 해를 본다. 지중해의 저녁놀은 어떤 사정을 지닌 어떤 이의 감성이라도 자극한다. 하루가 아무리 어떻게 저떻게 지나갔다 하더라도 이런 노을을 보면 뚜렷한 대상이 없는 향수와 회한에 잠긴다.




살레르노에 도착해서 저녁식사로 피자를 먹었다. 원형피자가 아니라 조각피자였는데, 역시 나폴리(인근) 피자라 그런지 맛이 최고였다. 고르곤졸라 비스무리한 것과 마르게리타 각각 한 조각씩 먹었다. 이태원 '피자리움'을 생각나게 하는 맛이었다. 피자의 본고장에 와서 정통피자를 먹으면서 한국 구멍가게 피자가 생각나다니, 한국은 정말 편강탕 같은 나라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로마로의 복귀 대장정을 시작한다. 로마에 도착하면 약 11시가 될 것이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17시간, 멀고 먼 길을 굽이굽이 내려와서 다시 굽이굽이 올라간다. 가이드께서 말씀하시기를 로마에서 출발하는 한국인들의 남부투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일찍 시작하고 가장 늦게 끝나는 현지투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른 시각조차 못 참고 새벽 5시에 나와서 버스 문 열어달라는 한국인이 있다고 한다. 한국인 투어업체가 이런 상품 기획안을 들고 이탈리아 버스업체에 대절을 협상하러 갔을 때, 버스업체에서는 상품가치가 전혀 없는 안이라고 욕했다고 한다. 일정 주기로 버스기사에게 휴식기를 주도록 규정한 이탈리아 법은 둘째 치고, 불가능한 코스를 구상했다는 것이다. 세계 어디서 누가 이렇게 새벽부터 자정까지 오로지 여행을 위해 몸뚱이를 지치도록 굴려가며 돌아다니겠냐고 비웃었단다. 지금 이렇게 한국인의 광기를 반영한 투어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현실을 지켜보는 버스업체의 심정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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