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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대협 May 23. 2024

오늘부터 1일

DAY 1 로마 입성

새해까지 열흘 남았다. 나는 런던 근교 코벤트리에 있다. 오늘은 이탈리아 로마로 출발한다.

아직 동트지 않은 6시, 코벤트리 버스터미널에서 런던 스탄스테드 공항까지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한국에서는 고속터미널 가서 방금 끊은 따끈따끈한 표를 갖고 버스에 오르는 게 쏠쏠한 재미였는데, 영국은 모든 것을 다 예약받는다. 음악회, 전시회, 식당은 물론이고 기차와 버스도 사전예매를 받는다. 하지만 버스 사전예매라는 것에 익숙지 않은 나는, 예매를 했다가 불의의 오류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걱정이 되어 현장구매를 하기로 했다. 버스를 예매하면 29.5파운드이지만, 현장에서 구매하면 31.7파운드인 데다가 거스름돈도 안 돌려주기 때문에, 거금 35파운드를 150킬로미터 구간동안 버스를 타는데 지출했다. 런던에서 로마까지 약 1,800킬로미터를 가는 데에 233파운드가 드는데 말이다. 

뿌연 안개 너머 네온사인이 빛나는 건물이 보였다. 옆자리 아가씨에게 물었다. "죄송해요. 여기가 스탄스테드 공항인가요?" 아가씨는 신생아를 보듯이 사랑스럽게 나를 보며 상냥하게 답했다. "레이디, 이곳은 루톤 공항이에요. 조금만 더 가면 스탄스테드 공항이니 같이 내려요." 나는 이 아가씨가 지방에서 온 영국여자라고 확신했다. 35파운드를 날리고 남은 내 전 재산 465파운드를 걸 수 있었다. 



런던이나 서울이나 대도시는 똑같다. 지옥철을 뚫고 출근하는 사람들에게는 은은한 광기가 떠돈다. 백화점 명품관을 둘러보는 사람들에게는 아닌 척하면서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속물의 냄새가 배어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에게서는 옆사람을 신경 쓸 여유가 없는, 신경 쓰지 않고 싶어 하는 무관심의 속내가 읽힌다. 회색의 도시에서는 누구나 같은 모습으로, 같은 향취로 같이 부대낀다. 모든 나라의 대도시는 같은 모양새다. 하지만 모든 나라의 시골은 각양각색이다.

지방의 영국 남자는 보통 백 년 묵은 맥주통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서까래에 스며든 어두컴컴한 펍 한편 카운터에 팔꿈치를 걸치고 상반신을 의지한 채 프리미어리그가 방영되는 텔레비전 모니터를 주시한다. 바텐더에게 2번 접은 5파운드를 내밀면서 "고맙슈(Cheers)." 하며 방금 따른 파인트 맥주에서 흘러내리는 한 방울의 거품조차 용납하지 않을 기세로 맥주잔을 핥아댄다. 하절기에는 주로 목이 약간 늘어난 라운드 티셔츠를, 동절기에는 플란넬셔츠에 퀼트재킷을 입는다. 

지방의 영국 여자는 자애롭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꽃이든 잔디든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정성을 다해 가꾸고 상냥하게 보듬는다. 사무실 누군가 재채기를 하면 저 멀리서 '솔' 음정의 "몸조심하세요(Bless you)!"  하는 소리가 들린다. 마트에서 계산할 때 가방 제일 밑에 깔려있는 지갑을 꺼내느라 당황하며 뒤적이면 뒤에 서계신 아줌마가 "천천히 천천히(Take it easy)!" 하신다. 입을 떼면 디폴트가 "예쁘다(Lovely)!"라고 옵션이 "훌륭해(Brilliant)!"이다. 아줌마들은 다들 비슷하겠지만 지방의 영국여자는 말 그대로 사랑과 애정이 넘친다.



아무튼 상냥한 아가씨와 같이 스탄스테드 공항에 내렸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사람들은 바글바글했다. 보안검색대에서 검색요원이 묻는다. "랩탑이나 아이패드가 있습니까?" 철저한 계획형 인간인 나는 이럴 때를 대비해 왔다. 자랑스럽게 나의 DSLR 카메라를 꺼내 들고 "여기 나의 DSLR 카메라가 있습니다.(플래그십 모델은 아니지만 여행자들을 위한 캐논의 역작이라 불리는 가성비 모델이죠,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전에 파리 샤를드골공항에서 영국행 비행기로로 환승할 때 카메라를 검색대에 올린 경험이 있어 이번에도 역시나 드릉드릉 꺼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검색요원은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그건 됐습니다(That's fine)." 나는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왜 거절하는가. 지난번에는 왜 검색대에 올리라고 했던가. 어떤 물품을 꺼내 검색해야 하는지 매뉴얼이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검색요원 또는 공항 또는 항공사의 재량이었던가. 또는 기체의 종류나 탑승 시각 혹은 탑승객의 외관에 따라 판단되는 것이던가. 내가 아시아 촌구석에서 온 일자무식 아낙으로 보여 테러 계획은커녕 테러 같은 걸 알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해소되지 않은 의문을 품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 여정은 잔혹했다. 그토록 먼 거리를 이토록 저렴한 가격에 이동하려고 저가 항공을 예약한 저렴한 여행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라도 할 듯이 좌석은 좁고 작았으며, 어떠한 식사와 음료도 제공되지 않았다. 요청하면 냉수 한 잔이 제공되었는데, 그마저도 말 그대로 한 번 쓰면 구겨져버릴 얇은 플라스틱컵에 담겨 있었다. 마치 이 비행기 내에서 내가 차지하고 있는 가치는 그 플라스틱컵 정도라고 지적하는 듯했다. 하지만 저가 항공이라도 임무에는 충실했다. 비행기는 우리를 안전하고 정확하게 로마 치암피노 공항에 데려다주었다.

로마에 도착했다. 아니 아직, 이곳은 문명 이기의 결집체 공항이다. 이제 진짜 로마로 입성해야 한다.




로마 치암피노 공항은 유럽노선 항공 위주의 공항이라 매우 작았다. 로마와는 꽤 거리가 있었는데 테라비전이라는 공항버스를 타고 로마 시내로 진입한다. 출국장을 나와 테라비전 버스표 창구를 찾았다. 하지만 매표원은 눈을 찡긋, 윙크를 하며 말한다. "표는 밖에 나가 줄 서서 사세요." 매표창구에서 표를 팔지 않는 동네, 웰컴 투 이탈리아다. 나는 속으로 갖은 욕을 날리되, 눈은 같이 찡긋 화답해 주었다. 

공항을 나와서 보니 주차장에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어떤 것이 테라비전 버스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에 갔더니 분홍색과 보라색이 사선방향으로 색칠된 표를 한 장씩 들고 있다. 일련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구석에 가서 줄을 섰다가 다시 사람들 많은 곳으로 돌아가길래 나도 따라다녔다. 그 사람들도 나를 흘끗흘끗 보고 나도 그들을 흘끗흘끗 보는데 그들 손에는 테라비전 표가 있고, 내 손에는 없다. 게 중 한 아줌마에게 얼떨결에 소리쳤다. "테, 테, 테라비전 버스?" 가히 듣기 평가의 천재라고 할 만한 아줌마가 대답하신다. "표가 있나요?" 내가 "아, 아니요. 없어요." 하자, 고맙게도 나를 어떤 청년에게 데려다주신다. 청년이 익숙하다는 듯 "단지 한 장(Only one ticket)?" 하고 묻자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4유로란다. 인터넷 예매는 4유로이고 현장구매는 6유로라고 들었는데, 현장구매도 4유로였다! 로마 도착 첫날부터 기분이 째졌다. 절도와 사기가 횡행하는 도시에서 돈이 굳었다! 냉큼 4유로 티켓을 들고 좋아라 사람 무더기 속에 파묻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테라비전 버스가 와서 사람들을 실었다. 공교롭게 내 앞 앞사람에서 줄이 끊겼다. 아깝다. 조금만 새치기했으면 나도 타는 건데. 그렇게 20분이 흘렀다. 버스는 오지 않았다. 30분이 흘렀다. 버스는 오지 않았다. 옆 칸에는 다른 업체 공항버스가 들고 나면서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나보다 늦게 나온 사람들도 빈 버스표를 냉큼 사서 타고 갔다. 내 뒤에 있던 젊은 여성은 다른 버스표를 새로 사서 가면서 드라마틱한 제스처로 테라비전 표를 던져버렸다. 나는 4유로 표를 내려보며 오늘 밤을 새더라도 반드시 테라비전을 타겠다고 각오했다. 이쯤 되니 돈 낭비고 아니고를 떠나 테라비전이라는 고지를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마침내 줄 선 지 40분째, 버스가 왔다. 사람들이 <워킹데드> 같이 우적우적 모여들었다. 나는 기득권도 있었고, 표를 팔았던 청년과 안면도 있고, 또 아무튼 이래저래 내 자리를 빼앗길 수 없다고 다짐하고 굳건하게 줄을 지켰다. 검표하는 아저씨에게 표를 내밀자 반으로 자르면서 캐리어는 트렁크에 넣고 오라고 했다. 나는 재빨리 캐리어를 아무렇게나 트렁크에 던져버리고 버스 계단을 올라 착석했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내 뒤로 타는 사람들을 흘끗흘끗 쳐다보았다. 다들 나 못지않게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 우리는 다 같이 전장에서 살아남은 패잔병이었다. 얼마 후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고 우리는 로마 시내로 출발했다. 아직 타지 못한 사람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남겼다.




달린 지 20분 정도 지나자 로마 시내에 들어온 것처럼 보였다. 차가 밀렸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사실 원래 차는 공항을 나오자 마자부터 밀리고 있었는데, 시내는 단계가 달랐다. 이곳은 지하 던전이었다. 2차선 도로였는데 같은 줄에 있는 차량은 3대였다. 모든 차가 일종의 무빙워크를 타고 있는 듯 한 개의 뭉텅이로 어우러져 동시에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 두 대는 대가리를 사선으로 들이밀면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버스 차고가 높은 덕분에 멀미가 덜 나서 다행이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지 않았다. 깜빡이 없이 끼어들어오는 얌체와 길도 모르면서 주말에 차 끌고 나온 악마들이 주연인 바보들의 행진을 돈 주고 관람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보너스로 단지 운전자들을 약 올리기 위해 길을 건너는 척 왔다 갔다 하는 무단횡단자들도 등장했다. 차라리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눈 뜨면 코 베어 간다는 로마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왠지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 태평양 참치잡이 원양어선에 있을 것 같았다. 버스는 40여 분간 시내를 향해 어떻게든 파고든 후 승객들을 로마의 중심 테르미니 역에 내려줬다. 그토록 치솟았던 분노가 사그라들고, 아무 소득 없었던 인질극이 끝난 것처럼 감사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버스기사에게 경쾌한 목소리로 "땡큐!"라고 외치고 스타카토 같이 발걸음을 뗐다.

내가 숙소로 잡은 민박집 사장님은 테르미니역 24번 출구에서 보자고 했었다. 사장님께서 기차역에서 민박집까지는 짧은 거리이지만 만반의 사태에 대비하여 직접 나와봐야지 안심하겠다고 하셨다. 내가 내린 곳은 테르미니역 1번 출구였고, 24번 출구는 그 반대편 끝이었다. 그곳까지 안전하고 온전하게 생존해서 가야 했다. 소매치기를 예방하기 위해 특별히 안에 받쳐 입은 낚시용 망사조끼와 허리가방을 다시 확인하고, 기차역 복도를 질주했다. 눈은 정면 목표지점을 향하고 손에 든 캐리어는 달랑거리며 경보법을 시전 했다. 우물쭈물하고 있다가는 소매치기들의 좋은 표적이 된다고 들었다. '나는 명확한 목적지와 루트를 가지고 있으니, 너희들 따위에게 당할 수 없다.'는 의지를 만천하에 공개하듯 24번 플랫폼까지 당차게 걸어갔다. 중간쯤에서 플랫폼이 끊기고 공사 중이어서 대차게 주변을 헤맸지만, 결국 24번 출구 어느 카페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8분 정도, 주머니를 주섬주섬 챙기면서, 나를 노렸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는 주변 청년들을 노려보며 신경전을 펼쳤다. 낚시조끼와 등산 레깅스, 산과 물의 조합, 도저히 관광객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겹겹이 겹쳐 입고 마무리는 쑥색 방한점퍼를 입은 여인네. 그 사람들은 나를 집시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과민과 오해로 범벅된 신경전을 마치고 마중 나온 사장님을 따라 안전하게 민박집에 도착했다. 오늘부터 여행이랑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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