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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대협 May 23. 2024

굿바이, 헬로 어게인

DAY 16 여행 종료

오늘 저녁 코벤트리로 복귀할 것이다.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짐을 맡겼다.

리옹 북쪽에 있는 떼뜨도흐 공원(Parc de la Tete d'Or)에 가기 위해 C1 전차를 탔다. 어제 산 일일권이 아직 24시간은 안 되었는데, 날짜가 지나서 그런지 이제는 무효한 것 같다. 국제구역(Site Internazionale) 정류장에서 내렸다. 건너편에 현대미술관이 있었다.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려는데 또 비가 왔다. 그래도 꿋꿋이 우산을 쓰고 공원을 돌았다. 공원 한쪽에 거위들이 몰려있었는데, 다들 한쪽 발로 서서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왠지 거위들이 깨면 떼를 지어 달려들 것 같았다. 깨우지 않게 살금살금 걸어갔다. 그런데 멀리서 밥 주는 사람이 다가오자, 거위들이 일제히 소리치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떤 거위는 조깅하던 사람과 부딪힐 뻔했는데, 둘이 서로 흠칫하다가 인사하고 엇갈려 갔다. 사람이나 거위나 귀여운 구석은 누구에게나 있나 보다. 

공원 한편에 '온리 리옹(ONLY LYON)' 글자로 만든 새빨간 조형물이 초록 잔디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어 강렬하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슬로건이다. 언어적으로나 수학적으로나 균형과 비례가 잘 맞고 메시지가 분명하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풀냄새, 흙냄새가 향긋했다.

1996년 7월 26일 자 한겨레 신문에 여기 떼뜨도흐 공원에서 사람을 전시한다고 해서 깜짝 놀라 봤더니 연극배우들이 전위예술하는 것이었다. '동물원의 곰 우리를 치우고 사람을 전시했다. 연극배우 니콜라 라몽이 동료배우와 함께 하루 2시간씩 사람의 일상사를 다룬 무언극을 실연하고 우리 밖에는 '진기한 종 - 이성을 가진 두 발 짐승 호모사피엔스'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인종차별인 줄 알았더니 인류희롱이었네. 좋은 의미로 말이다. 이런 전시를 승인해 준 동물원 관계자들이 신기하다. 

하긴 우리도 2000년대에 어느 방송국에 투명한 박스 '유리의 성'을 만들어 놓고 방송인이 들어가 생활하면서 지나다니는 행인들에게 100일간 있는 그대로 노출시킨 적이 있다. 그때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방송이 그런 관음증류의 프로그램, 각본 없는 리얼리티쇼를 만들었던 것 같다. 대중은 처음에 그 엽기적인 실험에 호기심을 보이고 신기해하며 환호했지만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인기는 식었고 오히려 보험판매원이나 주취자 같은 '진상'들만 늘어갔으며, 실험에 자원했던 방송인은 극심한 정신적 불안을 겪고 피폐해진 채로 실험을 마쳤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를 들여다본다.' 니체는 인생의 공허함에 대한 고민을 경고하려는 의미였겠지만, 인간 정신의 나약함을 설명하는 한 문장이 아닐까 싶다. 위험한 호기심, 인간의 잔인한 본성에 대한 실험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좀 먹고 파괴할 수도 있다. 불이 뜨겁고, 똥이 더럽다는 것을 굳이 실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은 조용히 지키는 것이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위해 괜찮은 결정일 수도 있다.

공원을 나와서 다시 C1 전차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서있었다. 어떤 할아버지께서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한국인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반가워하시면서 자꾸 '문'이라고 하셨다. 달을 말씀하시는 건지, 문을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었다. 문선명이나 문재인을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자 할아버지께서 당신은 영어를 쪼끔 한다고 하시면서 기분 나빠하지 말라셨다. 오히려 제가 이해 못 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시내로 나와서 거리를 돌아다녔다. 지하철, 전차, 버스로 이어지는 3단 콤보 대중교통이 너무 편리했다. 인테리어 소품과 액세서리들이 너무 귀여웠다. 리옹은 진리다. 중고책 시장이 섰다. 보던 책인지 오랫동안 묵혀둔 책인지 모르겠지만 상인도 많은데 상인들마다 각자 많이도 가지고 나왔다. 다들 어디서 저런 책이 나오지? 중간중간에 요리책, 여행서적 같은 실용서적도 있고, 심지어 1950년대 즈음으로 추정되는 시기의 신문도 있었다. 저런 걸 사는 사람도 있나?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지. 진품명품에 나가야 되는 거 아닌가. 혹시 정말 진귀한 고서적이라도 있는 걸까? 프랑스어를 읽을 수 없어 쓸데없는 생각들만 하며 지나갔다. 중고책 시장을 보니 청계천이 생각났다. 

옛날에는 경제적 여건이 안 되어서도 그렇고, 찾아야 할 정보가 있어서도 그렇고, 헌책들이 꽤 많이 거래되었던 것 같은데 요새는 헌책 사는 사람을 잘 못 본 것 같다. 알라딘과 예스24에서 중고서점을 개설했는데, 파는 사람은 많은 것 같은데 사는 사람도 많은지 모르겠다. 각종 고시 수험교재는 그렇다 쳐도 자격증 시험은 해마다 새롭게 바뀌는 내용을 잘 체크해야 하기 때문에 옛날 책으로는 공부가 안된다고도 하는 것 같다. 단행본 같은 경우는 이북리더기가 꾸준히 잘 팔려서, 이제는 마을마다 크든 작든 도서관이 많이 생겨서, 혹은 단순히 독서가 취미로서 매력을 잃어가서 안 팔리는 것일 수도 있다. 하긴 한 달에 한 권 읽는 한국인이 별로 없다고 하니, 책보다는 다른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런데 또 반대로 옛날보다 책을 쓰는 사람, 특히 일반인 작가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읽지는 않아도 경험하고 생각하는 것은 풍부한 것도 같다. 신분을 밝히지 않는 비밀작가가 쓴 소설이 드라마화되어 천문학적인 수입을 벌어들이고, 평범한 직장인이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를 써서 히트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재창조를 하는 데는 지류도서 외에 또 다른 소재가 되는 자원이 있다는 증거이다.

크후와후쓰(Croix Rousse) 지역에서 건물 외벽들마다 착시 속임 그림인 '트롱프뢰유(trompe-l'oeil)' 벽화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사실적으로 잘도 그려서 길 건너 멀리서 보면 정말 분간하기 힘들다.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페인트공, 문을 열고 나온 사자, 모든 것이 그럴듯하다. '카뉘의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풍경은 실제 리옹의 어느 골목을 그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금방이라도 내가 계단을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이 사실적이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누가 진짜인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고, 1층 위를 날아오르는 비둘기는 역동적이다. '리옹의 명사들'을 그린 벽화에서 알아볼 것 같은 사람은 뤼미에르 형제와 생텍쥐베리 등이 있다. 건물들이 오래되어 낡았기 때문에 벽화를 그려서 분위기를 바꾼 것일 텐데 참신했다. 경제나 정책적으로 부수고 다시 짓기가 힘들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재미있게 도색하니 관광객은 더 많이 올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난 깨끗하게 리모델링한 집이 좋다. 




숙소에 들러 짐을 챙기고 빠흐디유 역에서 출발하는 론익스프레스(Rhone Express)를 탔다. 인터넷 예약은 14.5유로이고, 현장 자판기는 15.7유로이다. 공항 가는 중간에 2번 정차하는데 잘못 하차하지 말라고 안내방송이 나온다. 공항까지 약 30분 정도 걸린다.

리옹 생텍쥐베리(Lyon St Exupery) 공항의 택스리펀 스탬프 받는 곳은 G층 27 게이트 옆이다. 세관직원이 물건을 보여달라고 해서 더스트백을 열려고 꺼냈더니 그만 됐다고 하신다. 스탬프를 받고 1층 트래블렉스(Travelex)에 주면서 신용카드로 환급해 달라고 했더니, 카드정보 적어서 옆쪽 노란 우체통에 넣으란다. '그냥 우체통에?' 조금 불안했지만 일단 넣고 떠났다.




공항 이름으로 생텍쥐베리만큼 낭만적인 이름이 또 있을까 싶다. 라이트 형제 공항이 없는 현실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이 그나마 가장 비등한 경쟁작일 것 같지만 불의의 낭만성 면에서 생텍쥐베리를 따를 이름은 없는 것 같다. 역사상 가장 완벽한 비행소설의 창작자, 비행에 대한 광적인 집착쟁이, 비행에서의 업적과 민폐. 비행과 관련해서 생텍쥐베리만큼 미친 사람이 있을까 싶다.

앙투안 드 생텍쥐베리는 1900년 리옹에서 태어났다. 독서와 문예에는 관심을 보였으나, 학업에서는 별 소득이 없었고 파리에서 건축학과에 청강생으로 다녔으나 대학생보다는 룸펜에 가까웠다. 21세에 비행조종 훈련을 받아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육군 항공연대에서 근무하였으나 항공기 추락사고로 부상을 입고 전역했다. 이후 타일 제조회사, 자동차 판매 대리점 등에서 근무했으나 실무영업은 성격에 맞지 않았는지, 금방 사직하고 저술을 시작하여 26세에 최초로 출간하였다. 그리고는 비행경력을 살려 물류회사에 취직, 세네갈 다카르와 모로코 카사블랑카 간 항공우편을 수송하는 비행업무를 담당했다. 2차 대전 초기에 프랑스 공군에서 복무하다가 미국으로 망명하였으나, 나치 독일과 연계되었다는 루머의 오명을 벗기 위해 1943년 다시 공군에 재입대하였다. 43세란 나이는 비행사에게 적기가 아니었고 지휘관은 그의 불성실함을 이유로 조종업무에서 배제하였으나, 그는 비행을 너무 사랑해서였는지 혹은 취미 삼았던 비행 중 독서와 집필을 하기 위해서였는지 고위급 청탁을 통해서 조종을 고집하여 다시 조종간을 잡았다. 이쯤 되면 예술만 잘했지 가히 정신병자라고 할 만도 하다. 계속된 친독일 논란과 아슬아슬한 비행으로 우울증과 폭음이 계속되었고 이로 인해 신체와 정신 모두가 피폐해지는 악순환에 빠졌고, 흐려진 판단력으로 비행을 계속하다 결국 1944년 비행 중 실종하여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어린 왕자>에서도 보이듯이 그에게 있어 추락이나 비행기와 관련된 사고는 그다지 위험하지도 희귀하지도 않은 사고이다. 20대 항공연대 근무 당시 추락사고로 의병전역한 데에 이어, 35세에는 개인 전용기를 몰다가 사막에 불시착하여 구조되었고, 38세에는 항공기 엔진 폭발로 불시착하여 두개골과 쇄골이 또다시 파열된다. 43세에 다시 공군에서 비행할 때는 착륙 시 조종 미숙으로 항공기를 고장 낸 적도 있고, 사고는 아니지만 조종 중 책을 읽기 위해 착륙하지 않고 계획보다 1시간이나 더 선회하기도 했다. 그 자신뿐만 아니라 절친이던 앙리 기요메도 남미까지 횡단하다 추락했으나 기적적으로 엿새 밤낮을 안데스산맥을 걸어 나와 구조되었고, 계속 또 비행을 하다 결국 2차 대전시 이탈리아군에게 격추당해 사망하였다. 결국 생텍쥐베리는 칵핏에서 사망한 불굴의 조종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생텍쥐베리의 비행 도착증, 비행 집착, 비행 중독은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위대한 작품의 밑바탕되었고, <어린 왕자>는 비행과 관련하여 인간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아련한 러브 소네트가 아닐까 싶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시작하여 프랑스 리옹에서 마친 15박 16일의 여정이 끝났다. 몸은 지쳤고 아쉬운 기억도 많이 남았지만 뿌듯하고 벅차오르는 감정이 더 크다. 여행에서 품은 감동, 행복한 추억은 앞으로 남은 삶의 여정에서 이따금 반짝반짝 빛나는 조약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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