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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대협 May 23. 2024

샐러드가 맛있는 리옹 부숑

DAY 15 리옹 도착

유럽에 온 지 15일째만에 아침 일찍 일어나 봤자 갈 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오전에 리옹으로 이동하니 호텔에서 게으름 피우다가 나가면 된다. 10시 기차라 느긋하게 짐을 챙기고 샤워를 했더니 벌써 9시 20분이다. 잠깐 내가 정신을 잃었었나.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르나. 후다닥 팁을 남겨놓고 숙소를 나섰다. 좋은 숙소를 떠나려니 아쉽다. 다음에라도 또 오면 또 여기 묵어야지. 

기차역에서 생수 한 병 뽑으려고 2유로를 넣었는데 돈만 먹고 물은 안 준다. 한국이고 프랑스고 기차역 자판기는 합법적으로 돈을 갈취하기 위한 전통설비인 듯하다. 어쩌다 한 번씩 들르는 여행자들이니 돈을 떼여 먹혀도 사법적으로는 고사하고 행정적 조치를 취할 리도 만무하다. 전 세계 기차역 자판기 운영자 조합에서 혹시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자판기를 설치할 경우 향후 100년간 그 인근에서 장사할 생각은 접으라는 공문이라도 내려보낸 것 아닐까. 어쩌면 자판기 안에 진짜 사람이 있어 돈 넣는 인간 면상을 보고 '저 인간은 제쳐도 되겠구먼.' 하고 묵묵부답 깔아뭉개는 것은 아닐까. 자판기 옆구리를 한 번 때려볼까 했는데, 여기는 자유시장경제의 선도국 프랑스이고 사유재산 파괴와 관련해 문제가 생기면 골치가 아파지니 그냥 오늘 하루 식량을 2유로어치 덜 먹기로 한다.




기차를 타고 리옹에서 내렸다. 숙소를 바로 기차역 앞에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숙소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내 특기대로 또 다른 호텔에 들어가서 우리 숙소가 어디 있는지 물어봤다. 주소와 지도를 살펴본 직원 말로는 리옹에는 기차역에 여러 개가 있는데, 나는 우리 숙소가 있는 역보다 한 정류장 앞에서 내렸단다. 고로 기차역에 트램 정류장이 있으니 트램을 타고 빠흐디유(Part Dieu) 정류장에서 내려서 찾아보란다. 민망과 감사와 내 무식에 대한 회한이 뒤범벅되어 눈물이 앞을 가렸다.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와 일일권(5.2유로)을 끊어 트램을 탔다. 리옹 일일권은 우리나라 옛날 종이 지하철표와 비슷해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만든다. 잠실역에서 처음으로 엄마를 졸라 지하철표를 받고 돌아가는 개찰구를 멋지게 나오려고 했지만 바에 걸려 폴더처럼 허리가 꺾이고 만, 슬프지만 약간 웃기고 무척 어리숙한 어린이에 대한 추억이다. 

트램을 타고 몇 정거장 이동하는 사이에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테나 호텔(Hotel Athena)이 트램정류장과 가까이 있어서 비를 별로 맞지 않고 도착은 했다. 그런데 내가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비가 수그러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날씨요정이나 호우주의보 따위의 별명이 없다. 어언 서른 평생을 살면서 날씨가 좋아서 득을 보거나 날씨가 나빠서 해를 입은 적이 없을 정도로 날씨와 아무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왔다. 좋은 날씨에 감사하거나 궂은 날씨를 탓하지도 않고 날씨란 것은 그저 지나가는 운명 같은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곳 프랑스에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이곳 프랑스에서 날씨는 나에게 대단한 똥을 주었다. 프랑스 남부 지역은 좋은 날씨가 가장 유명해 전 세계인이 찾는 휴양지라더니 나는 계속 비만 만났다. 프랑스의 비구름은 마르세유와 리옹까지도 나를 쫓아왔다. 단순히 비가 많이 오거나 날이 흐리거나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주 적극적으로 내가 교통수단을 탈 때는 자기도 쉬는 것처럼 해가 나올락 말락 하더니 내가 교통수단을 내리면 돌변해서 비바람을 내리친다. 미리 날씨를 확인하고 움직였어야 하는데 내가 대역죄를 지은 것인지. 이 정도면 가히 프랑스 날씨와 나는 전생의 원수였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전생 같은 건 필요 없고 현생에서 날씨가 나를 이렇게 괴롭히면 얻는 희열이라도 있는 마조히스트인가 싶다. 날씨가 인격체가 있어 만날 수 있다면 나도 한번 그렇게 괴롭혀 주고 싶다.




어쨌든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와서 짐정리를 했다. 아테나 호텔 싱글룸은 1박 65유로이고 마르세유 테르미누스 호텔보다 넓었지만 카펫바닥인 데다가 가구 등은 연식이 높아 보였다. 그나마 아테나 호텔은 리셉션 옆에 데스크톱이 있다. 갸흐 빠흐디유(Gare Part Dieu) 역에서 지하철 보라색선을 타고 기요티에(Guillotiere) 역에서 초록색선으로 갈아타고 구시가지(Vieux Lyon) 역에 있는 세례자 요한(Saint Jean Baptiste) 대성당으로 갔다. 12세기에 건립된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이다. 정면 파사드는 14세기말에 만들어지면서 고딕양식 특유의 장미창이 더해졌고,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와 리옹시의 천체시계도 위치하게 되었다. 리옹 대성당은 '프리미탈레(수석대주교, Primatiale)'라고 불린다는데, 1079년 교황이 리옹 대교구장에게 프랑스 왕국 전체 대주교 중 최고인 '갈리아 전체의 수석대주교' 칭호를 하사했기 때문이다. 12월이 되면 이곳 리옹 대성당에서 빛의 축제가 열려 파사드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레이저쇼가 펼쳐진다. 흑사병을 퇴치한 이후부터 매년 12월 8일 무염시태의 날 성모 마리아께 사람들을 구원하고 도시를 회복시켜 준 데 대해 감사의 의미로 촛불을 켜던 전통이 전해진 것이라 한다.

성당 옆 구시가지 거리 바로 옆에 고대로마 유적지가 남아있다. 특별한 철창도 없고 거창한 안내서도 없다. 작은 팻말이 하나 서 있다. 프랑스에 와서 니스, 마르세유, 리옹을 거쳤는데 우연히도 모두 로마의 손길이 거친 곳들이다. 유럽에 로마가 닿지 않은 곳이 있겠냐마는 로마가 기반을 닦았던 도시들을 따라 북진하니 내가 그 옛날 로마군이 된 느낌이다. 백인대장급은 확실히 아니다. 




구시가지에서 푸르비에르 언덕 꼭대기로 푸니쿨라(Funicular)가 이어져 있고, 일일권으로 탈 수 있다. 푸니쿨라를 타고 노트르담 푸르비에르(Notre Dame Fourviere) 성당에 갔다. 리옹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도시 전경을 보러 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푸르비에르 언덕은 원래 트라얀의 로마 광장이 있던 곳으로, 이름 푸르비에르도 라틴어 '구광장(forum vetus)'에서 이어진 프랑스어 뷰포럼(Vieux-Forum)에서 따온 것이다. 노트르담 푸르비에르 성당은 1896년 완공되어 성모 마리아께 바친 성당이다. 리옹에서도 베네치아와 마찬가지로 17세기 흑사병이 퇴치되자 성모 마리아께 감사를 드렸으며, 이후 1832년 콜레라, 1870년 프러시아의 침입으로부터도 살아남고 성모 마리아께 감사드렸다. 이렇게 높은 언덕에, 이렇게 거대한 성당을 지을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베르트랑 타이트는 설명한다. "사람들은 공산주의에 승리한 것에 대하여 신께 감사하고, 근대 프랑스의 죄악에 대한 참회를 위하여 사립기금으로 거대한 봉납물을, 도시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건립했다. 그 건물이 파리 몽마르트르의 사크뢰쾨르 성당과 리옹의 푸르비에르 성당이다." 

노트르담 푸르비에르 성당은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을 혼합하여 건립했으며, 종탑에는 황금색 성모마리아가 빛난다. 4개의 탑이 두꺼운 코끼리 다리 같아 사람들이 '물구나무 코끼리'라고 부른단다. 지하묘실 위쪽 본당 내부는 입이 떡 벌어지는 모자이크 장식과 뛰어난 스테인드글라스가 혼재하고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인데도 제단 뒤쪽을 우하하고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해서 공간을 환하게 밝히고 성스러움이 더해진다. 궁륭에는 성모 마리아의 상징인 다양한 채도의 푸른 계열 색을 활용하여 모자이크를 새겨 넣었고 아치마다 황금색 무늬 모자이크가 한껏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긴 원통모양에 얼기설기 구멍이난 샹들리에가 거대한 촛불처럼 보이면서 성당의 경건함을 고조시킨다. 화려하면서 조화롭고, 둥글둥글하면서 거침없다. 아름답다.




언덕 꼭대기에서 보는 리옹은 잘 정돈된 중소도시였다. 웅장하고 거친 론강과 아담하고 잔잔한 쏜강, 2개의 강이 도시를 관통해 흐르면서 사람들이 교류하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교통수단은 원활하고 편리하며, 공공 편의시설을 곳곳에 배치한 도시계획으로부터 생활, 보건, 문화 모든 면에서 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내가 프랑스인이라면, 불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 복작이며 사는 것보다 이곳 리옹 같은 중소도시에서 한적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르비에르 언덕 아래로 내려와서 구시가지를 걸었다. 오밀조밀한 구시가지는 언제 어느 곳을 봐도 마음을 들뜨게 한다. 구매할 수는 없지만 구경은 공짜에 자유이니 이런 즐거운 시간 죽이기 활동이 또 없다. 아기자기한 장식품들을 보면 여행에 지친 발도 까맣게 잊어버린다. 미니어처 박물관도 보인다. 정식 박물관 입장은 비용이 따로 있지만, 입구 매점은 구경해도 된다. 실물을 눈으로 보면 그저 그런 것 같은데, 카메라로 찍고 사진을 보면 감쪽같다. 이렇게 영화를 찍나 보다. 리옹이 뤼미에르 형제의 활동무대라서 그런지 영화와 관련된 소규모 박물관이나 가게들이 많았다. 

엄청난 개념이나 장치를 발명한 사람이 정작 그 발명을 팔아먹지를 못해 성공의 대가를 치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뤼미에르 형제도 게중 하나이다. 뤼미에르 형제는 시네마토그라프를 발명하고 <기차의 도착>으로 최초의 대중영화를 상영하면서, 영화의 아버지라는 명성을 얻고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활동사진에 대한 열정은 산업으로서의 영화에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과학자와 기술자로서의 기발함, 성실성은 좋았으나, 스토리텔링 능력이나 장사꾼의 수완이 없었던 지라 이후의 실사영화는 점점 인기가 부진하고 흥행에 실패했다. 말년에는 시네마토그라프의 특허권을 라이벌 찰스 파테(Charles Pathe)에게 넘기면서 '영화는 미래가 없는 발명'이라고 폄하하기에 이른다. 이후 동생 루이는 다시 발명의 길을 걸어 '뤼미에르 오토크롬'으로 컬러사진의 효시를 창안하였고, 형 오귀스트는 의학으로 방향을 틀어 결핵과 암을 연구하는 데 매진하였다. 형제가 모두 기똥찬 머리로 발명과 공부에는 재능이 대단했다. 비록 경제적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형제의 인생은 보람차고 재미있었을 것 같다.

한편 뤼미에르로부터 영화의 계보를 물려받은 파테의 영화사 파테!(Pathe!)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사 중 하나이며, 현재도 프랑스에서 건재한 영화사이다. 사실 엄청 대단한 회사인 게, 90년대 웬만한 코미디 영화를 다 만들었다. <오스틴파워>, <컷스로트 아일랜드>, <덤 앤 더머>, <제5원소>, <롤리타>, <마스크>, <토털리콜>, <레지던트 이블>. 이루 다 말하기도 힘들다.




프랑스에서도 유명하다는 리옹 부숑(Buchon Lyonnaise)을 먹기로 했다. 적당한 가격대로 보이는 가게에 들어갔는데, 오래된 식당 냄새가 났다. 저녁을 먹기에는 약간 이른 시각이어서 그런지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다른 가게들도 거의 다 마찬가지였으니 손님 상태를 보아 어느 가게가 맛집이고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점심이나 평일에는 12유로 정식이 있고, 주말에는 15 또는 20유로 정식이었다. 연어요리 정식(20유로) 등이 있었는데, 이왕 시도하는 김에 리옹 전통식을 해봐야지, 하고 곱창(tripes) 요리 정식(15유로)과 자두주스를 시켰다. 리옹 샐러드와 디저트가 따라 나오는 코스였다. 리옹 샐러드는 무척 맛있었다. 리옹 샐러드라기엔 아주 보편적으로 베이컨이 들어간 시저샐러드 비슷했는데 짭조름해서 좋았다. 

헌데 곱창 요리에서는 똥냄새가 났다. 곱창과 토마토, 여러 야채를 같이 끓이고 졸인 것 같았는데, 곱창이 무르도록 끓였는지 물컹물컹하고, 토마토의 시큼한 냄새에 누린내가 섞인 듯한 독특한 냄새가 났다. 내장탕과 곱창을 즐겨 먹는 한국 아저씨에게도 식감은 별개의 문제고 향내가 역해서 쉽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탈리아에서도 경험했다시피 유럽식 음식에 비위가 좋지 않은 내가 또다시 누린내 나는 음식을 한 접시 가득 먹으려니 고역이었다. 다만 나를 보며 맛있지 않냐는 표정으로 눈썹을 들썩이는 종업원의 눈썹을 보아서라도 최대한 코로 숨 쉬지 않고 열심히 씹어서 다 먹었다. 리옹 부숑이 질적인 측면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양적인 측면에서는 아주 훌륭했다. 포만감이 압도했다. 

종업원이 카시스에 바닐라를 합친 아이스크림 디저트를 가져다주면서 "카페라테 한 잔?" 하고 물었다. 엉겁결에 또 "오, 좋아요." 하고 말하고 나니, 퍼뜩 무언가가 뇌리를 스쳐갔다. 공짜가 아니다! 하지만 종업원은 이미 신이 나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고, 나는 눈물 콧물을 훔치며 카페라테를 사약처럼 들이켜야 했다. 이제 정말 말 그대로 배가 터질 것 같았다. 엉금엉금 일어나서 계산을 했는데, 21.2유로란다. 그나마 팁이 없으니 망정이지, 팁까지 내야 했으면 억울해서 뒤집어엎으려 그랬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연어 단품 시킬걸. 그래도 샐러드가 맛있었으니 만족해야 하나. 엉엉.




쏜강 천변을 걷다가 떼호 광장(Place de Terreaux)으로 이동해서 시청사(Hotel de Ville)를 발견했다. 1645년부터 1651년까지 시몽 모팽에 의해 건립되었고, 1886년 7월 12일 역사유적으로 지정되었단다. 시청 광장에 바톨디 분수가 있는데, 뛰어나가려는 말을 모는 사람의 역동적인 장면을 포착한 동상이 있었다. 말의 콧구멍에서 금방 콧김이 나올 것 같았다. 

시청 뒤편은 리옹 국립오페라극장(Opera National de Lyon)이다. 1800년대에 건립된 이후, 1993년 빛과 그림자의 건축가 장 누벨 지휘 하에 리모델링되면서 바로크와 현대건축이 미묘하게 합쳐졌다. 면적이 무려 4천5백여 평에 18층인데, 리모델링시 꼭대기 다섯 층을 캐노피 유리로 덮었다고 한다. 정면 입구 위쪽에 늘어선 음악과 예술의 뮤즈 조각상들이 붉은 조명을 받아 클럽처럼 신나 보였다. 오페라극장 앞에서 몇몇 청소년들이 비보잉을 연습하고 있었다. 

생니지에르(Saint Nizier) 성당을 지나쳐, 상업산업회의소(Chambre de commerce et d'industrie de Lyon)에 다다랐다. 리옹의 무역, 산업, 서비스업의 이익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경제정책, 인프라 등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고, 관광업에 대한 주요 이슈를 만든다. 현재 6만 2천여 명의 지역산업으로부터 선출된 65명의 대표들이 구성되어 있다. 우리 상공회의소와 같은 역할인 듯하다. 리옹이 작은 도시 같아 보였는데, 근로자가 6만 2천여 명이나 되는 것을 보면 어마어마하게 크나 보다. 

계속 걸어 벨꾸르(Bellcour) 광장으로 나왔다. 광장중앙의 루이 14세 기마동상은 신고전주의 조각가 프랑수아 레모가 만든 것이다. 역시나 광장 한편에 자리한 대관람차와 루이 14세 기마상과 저 멀리 노트르담 푸르비에르 성당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누가 보아도 프랑스요, 하고 말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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