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은 정부나 기업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그게 16살일지라도. '나는 무엇을 업으로 삼아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은 큰 걱정으로 다가왔다. 하필이면 그때의 나는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결국 나는 마이스터고의 문을 두들겼다. 누군가는 내게 말한다. '결국 꿈이 없어서 마이스터고에 간 거 아냐?' 맞다. 꿈이 있었더라면, 내가 열정을 바쳐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더라면, 나는 결코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16살에 기계, 전기를 알고 직업으로 삼고 싶은 학생이 몇이나 될까.
한국사회에서 고졸로 남겠다고 결정한 것은 여러 반항을 일으킨다. 고졸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겠다 결정한 16살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고졸로 뭐 먹고살래?'라는 말이다. 16살의 나는 이미 진로를 결정했고, 스스로 성숙하다 생각했지만, 이제 갓 중학교를 졸업하려 하는 아이가 어른들에게 반박하기엔 경험이 부족했다.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취업해서 어떻게 살아갈 건지, 그 들에게 설명해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너는 아직 세상을 모른다'라는 핀잔뿐이었다. 심지어 고등학교 원서를 써주던 선생님마저도 만류했다. 마이스터 고등학교에 가기보단 이 성적을 계속 유지하여 좋은 대학교에 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이미 난 대학생활에 미련이 없었고, 얼른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 밖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공기업에 취업했고, 나름 충실하게 현실을 살아나가는 중이다. 그들이 걱정한 내 밥벌이는 어느 정도 하는 셈이다. 공기업이란 이름은 막상 입사하고 나선 환상이 깨지지만, 그래도 한국 사회에 꽤 '통하는' 단어다. 그렇기 때문에 '고졸로 뭐 먹고살래?'라는 질문에 효과적인 대답이 되곤 한다.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부터 고졸을 걱정하고 비난하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아직 학생인 나에게 버거웠고, 힘들었다. 이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떡하나 고민이 많았다. 나의 앞날보다 이 사람들의 걱정이 현실이 된다는 게 두려웠다. 취업도 못 하고 대학도 못 가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걱정했다. 공기업, 높은 연봉. 다 좋지만 나는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채찍질한다. 그렇지만 나는 가끔씩 '고졸로 뭐 먹고살래?'라는 무례한 질문에 아주 흔쾌히 답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취업도 하고, 잘 먹고 잘 살아서 다행이다. 나는 누군가 위 제목과 같은 질문을 할 때마다 이렇게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