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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상아 Jun 19. 2018

지역민과 함께한 콘텐츠  ‘시가 흐르는 섬마을’

아름다움 그 자체이며 일상이다

 경상북도와 안동시가 공동 제작한 애니메이션 엄마까투리가 지역문화콘텐츠의 성공적인 사례로 각광받고 있다. 그리고 충남문화산업진흥원의 공주시 캐릭터 고마곰 애니메이션 제작, 서천군 한산모시 ASMR 콘텐츠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엄마까투리'의 성과가 다른 애니메이션들과 달리 주목받는 이유는 지방자치단체인 경상북도와 안동시가 제작비 투자 등을 통해 제작을 주도하고 지역기업, 소상공인, 관광․교육․문화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라이선싱 사업 가이드를 만들어 사업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홍보 및 산업화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데일리대구경북뉴스]

 그리고 충남문화산업진흥원도 문화콘텐츠 기업과 손잡고 경쟁력 있는 지역콘텐츠를 발굴해 글로벌 진출을 돕고 있다.

 이 두 가지의 성공한 지역문화콘텐츠 사례를 보면 지자체와 콘텐츠기업이 하나가 되어 투자와 전문 인력을 활용하여 콘텐츠 제작과 유튜브를 통한 홍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지역민간예술단체가 지역민과 함께 한 성공적인 지역문화콘텐츠 사례들이 성장 할 수 없는 요인을 살펴보면 지자체나 정부의 투자와 유튜브(한국 사용시간 점유율 90% 육박)를 활용할 수 있는 홍보 마케팅 전문 인력의 부족이다.

 지역민간예술단체에게 투자나 홍보의 전문 인력이 필요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지역민과 함께한 지역문화콘텐츠가 사장(死藏) 될 것이 두려운 것이다.

 요즘 유튜브의 제일 중요한 키워드는 '일상'이라고 한다. 사량도 섬마을의 어르신들의 일상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도록 영상으로 제작하여 유튜브에 올려 많은 이가 볼 수 있도록 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영상 제작 전 정리단계로 2009년에 어르신과 함께 한 많은 작업들을 글로 축약하려고 한다.  

  

통영시 사량도 하도 양지리마을을 아시나요? 

 통영은 시리도록 아픈 푸른 쪽빛바다에 떠있는 수많은 섬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아름다운 풍광과 어족자원의 풍요함과 통제영의 역사가 살아 숨 쉬며, 한산대첩의 승전고가 울려 퍼지는 평화의 바다, 이름 하여 ‘바다의 땅 통영’은 기라성 같은 예술가를 배출한 예술의 보물창고라 할 수 있다.

 통영은 바다와 더불어 200여개의 유 무인도를 합쳐 많은 섬들이 있는데 그곳은 문화예술의 사각지대라 누구하나 관심가지지 않아 2006년부터 섬마을순회공연을 기획하여 통영의 섬, <사량도> <한산도> <욕지도>등을 시발, 순회공연을 해오던 극단 벅수골이 2009년 ‘섬마을에 웃음꽃이 활짝 피네’ 프로그램으로 사량도 섬사람들의 이야기와 설화를 시로 표현, 노래와 춤, 연극 그림 교육 등으로, 시 푯말 설치, 마을가꾸기로 구성하여 어르신들과 함께 공동체 작업을 시도하였다  

 사량도(蛇梁島)는 통영시 서편에 자리한 섬으로 상도(上島)와 하도(下島)가 나란히 이마를 맞대고 있는 형국으로 1.5km 거리에 있는 상도와 하도 사이의 바다는 물살이 제법 거칠다. 사량도는 섬이 꼭 긴 뱀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기암괴석으로 덮여 있는 섬의 해안 돌출부가 하나같이 뱀처럼 생겼고 실제로도 섬에 뱀이 많다고 한다.

사량하도 양지리 능양 마을은 일곱 현자가 살았다는 칠현산 자락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마을이며 1980년대 만해도 초등학생이 500여명에 이를 만큼 적은마을이 아니었는데, 떠날 사람은 다 떠나고 지금은 아이울음 소리 조차들 수 없는 조용한 마을이 되었고 60대가 청년이고 70대가 중년이 되어 생기가 사라진 마을이다. 그러나  시인 <박재두>선생, <차한수>선생, <차영환>선생의 출생지로서 오래전부터 詩가 흐르는 마을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기도하다.     


시가 흐르는 섬마을 이야기, 들어보신 적 있나요?    

 이러한 시가 흐르는 섬마을(능양)에 2009년 9월부터 ‘섬마을에 웃음꽃이 활짝 피네’ 프로그램으로 매주 3일간 교육하기로 하고 통영에서 1시간 남짓 정기여객선에 몸을 싣고 사량 양지리 마을을 찾아 갔다.

 첫모임날 마을이장님을 찾아 마을방송을 부탁하고 마을노인정에 30명의 7,80대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였다.

섬마을에 웃음꽃이 활짝피네 설명을 듣는 어르신들

 생활문화 공동체마을 만들기의 취지와 앞으로 마을설화와 어르신들이 살아온 일평생의 이야기를 시로 표현하여 생활문화공동체를 만들자고 열변을 토했으나 열기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온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싸늘한 냉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우리가 무슨  수로 시를 쓴다 말이고 글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글을 안다 해도 노안에다 눈도 어둡고 밭일, 뱃일에 지친사람들이 잠도 모자라는 냉소적인 분위기속에 준비한 아이스크림만 맛있게 먹으며 듣는 둥 마는 둥 천장만 바라보며 계시던 그 모습에 힘이 빠지는 첫모임이었다.

 그날 이후 강사진들의 의논 끝에 강사진중 나이가 지긋한 문학 강사를 한 주간 상주하여 집집마다 어르신들을 찾아 인사드리고 마을구판장에서 이장님을 비롯한 영향력 있는 어른들과 술잔을 나누며 마을 사람들과 친교를 쌓아가며 마을 분위기를 익혀갔다.

 저녁이면 노인정에 10명 남 짓 모인 어른들에게 한글수업을 가,나,다 를 시작 했는데 따라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상하는 눈치였다. 어르신들이 글을 모른다고 해서가 아니고 앞으로 시를 짓고 낭송 하려면 정확한 발음을 연습해야 된다고 크게 소리 내어 해보자고 했으나 모기만한 목소리에 가라앉은 분위기다.

 구판장에 부탁한 술과 음료가 도착하니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잡담과 넋두리를 토해낸다. 술과 음료로 함께한 자리는 마을 정서와 개개인의 삶을 이해하는 자리가 되었다.

 문학 강사는 계속해서 마을을 돌아보던 중 마을입구에 잔디와 나무그늘로 잘 가꾼 쉼터에 앉아서 마늘을 까고 있는  할머니들과 함께 마늘을 까며 이야기를 주워 듣기 시작했다.

 통영(뭍)에서 ‘한산대첩 축제’ 때 띄어 올린 풍선이 바람에 날려 와, 마늘밭에 내려왔는데 풍선 색깔이 너무 고와 쑤씨골에 걸어두었는데 며칠이 지나 바람이 빠져 쭈굴쭈굴 해져 할머니 얼굴처럼 되었다고 한다. 재미가 있어 메모지를 꺼내 적어두었다.

 이날 저녁 모임에서 해거름 쉼터에서 들었던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생활 속에 있는 이야기, 기쁨과 눈물어린 사연들 그런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글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무슨 글을 적느냐고, 하시며 자신 없는 웃음만 흘린다. ‘자자 웃지만 말고 한 번 해보자’며 독려하여 다시금 그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은 글을 백보드 판에 적으면서 문장을 정리하고 읽어드리니 시가 되었다.    

[올 한산대첩은 직접 보지 못했지만 / 텔레비전으로 봐도 그런대로 재미있고 자랑스러웠다. // 섬(양지리)에 사니까 뭍(통영)의 행사와 축제는 보고 싶어도 못 보고 사는 게 섬사람들의 삶이 아니던가, / 자식이 통영공직에 있으니 구경하고 가라해도 안 갔다. // 팔순의 나이지만 마늘밭도 가꾸어야하고 섬에 살아도 할 일도 많고 자식들 성가시게 하기 싫어 텔레비전을 봤다. / 바람이 은근히 늙은이의 마음을 알았는지 한산대첩이 끝날 무렵 축제 때에 띄워 올린 풍선 여섯 개를 집 위 마늘밭에 내려놓았다. // 얼마나 예쁜지 / 늙은이의 마음도 풍선 따라 부풀어 올랐다. / 호박보다 더 크고 반짝이는 빛이 고와 풍선을 / 오래 오래 보고 싶어 쑤씨골에 걸어두었는데 / 며칠이 지나 / 바람이 빠져 쭈꿀 쭈굴 해져 버렸다. // 조것이 나를 닮았네.] (바람에 실려온 풍선 / 김공순)  

다들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그래 맞아, 그때 풍선이 날아왔지 바람이 빠져 할매 얼굴처럼 쭈꿀 방탱이가 되었지’ 하고 웃음바다가 되고 너도나도 이야기 봇 따리를 풀어낸다.  

‘묘 자리를 쓰는데 하얀 백학이 날아간 차씨 문중의 전설’

‘일제강점기시절 처녀공출당하지 않기 위해 17살 때 섬으로 시집와서 팔순을 살고 있는 사연’

‘등잔불에 선을 보고 결혼으로 성사된 마마자국의 곰보할머니 이야기’

‘수년간 숙원사업인 상도 하도 연도교가 아직도 놓아지지 않는 불만’

‘주색잡기로 몇 번이나 딴 살림 차리고 돌아간 영감이 밉지만 그립다는 할머니’

‘척추 판 고정으로 19년 병수발로 효부상 받은 이야기’ 등 너무나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 이런 사연들이 수 없이 많을 것 같아 이야기들을 적어오라고 숙제를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가져온 달력 뒷장에 비뚤거리는 글씨, 그래도 뜻을 알아 볼 수 있기에 다시 백보드에 써가며 함께 문장을 만들어 갔다. 몇몇 어른들은 수정하지 않아도 좋은 글도 있었고, 만들어진 시는 반복해서 낭송연습을 시키고 아예 글을 모르는 몇 분은 구설로 정리 녹음하여 연습을 통해 글을 익히도록 훈련하며 시제에 맞는 그림 그리기도 하며 재미를 더해갔다.  

자작시에 맞는 그림 그리기

 풍성해진 모임에 마을 설화 선바위, 고기잡이 노래 말을 만들고 민요풍으로 2곡을 작곡, 통영태평성당성가대에 합창곡을 녹음하여 연습, 수시로 마을 방송을 통하여 집과 밭에서 곡을 익히도록 했다. -에야, 디야 에헤야 디야 ~~~ 사량바다 노는 고기 감성돔에 뽈래기 다 ~~  

 시극(콩트)과 노래와 풍물 연습을 위해 7명의 강사진과 30여명의 어른들이 북적되니 노인정이 비좁아 엉덩이가 부딪치고 그때마다 폭소가 터지고 신나는 광경들이 연출되었다. 저녁이면 낭송연습과 마을노래연습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간다.

어르신들의 마을 노래 연습

 그리고 시 푯말 작업을 위해 마을을 둘러보는데 포구에 눈살을 찌푸리는 낡은 냉동고가 녹슬어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다. 20여 개 중 5개정도는 가동하고 있으나 현재로선 다른 처리방법이 없다고 하니 그곳에 시화전시장을 만들기로 강사진과 이장님, 참여하신 어른들이 결정하고 미술 강사가 디자인 맡아 작업에 들어갔다.

 냉동고는 평면이 아닌 요철이라 글을 쓰기는 힘들고 시간도 많이 걸려 시화부분은 필름 작업으로 대체하고 냉동고 무지개 색깔은 마을 어른들이 직접 2주간 걸쳐 칠했다.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은 아침이면 이슬이 내려 습기로 인하여 오전 작업은 못하고 오후에만 작업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공동 작업에 갓 잡아온 낙지와 문어를 쓸어 소주한잔의 새참은 꿀맛이고 변해가는 냉동고의 무지개색은 마을의 희망이었다.

 낮에는 냉동고 도색작업에 어른들은 뱃일 밭일로 교대로 작업을 하며 마을회관 스피커에 울려 나오는 고기잡이노래와 선바위노래의 콧노래와 함께 냉동고는 24편 시화로 아름답게 변하고 있었다.

어르신들의 도색작업

 

어르신들의 시화 붙이는 작업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변해 가는데 유독 변하지 않았던 마을유지 한분이 있었다. 그분이 노인정에 얼굴을 내밀고 들어온다.

그간의 불만을 토로 하며 강사진과 마을이장을 성토하기에 그 내용을 시로 만들자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하여 문장을 정리하니    

[주민여러분! 오늘, /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모임이 있으니 / 마을 노인정에 모여 주십시오. / 마을이장이 방송한다. // 무슨 소리냐, / 뱃일, 밭일에 지친 사람들, / 일찍 자도 잠이 모자라는 판인데 / 밥 나오고, 떡 나오는 일도 아닌데 / 방관하고 ‘텔레비전’ 보다가 잤다. // 그러는 사이 /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화’가 되어 / 무지개 색으로 변한 냉동고에 붙는다. // 아~! 이런 모임 이었구나 // 홍보부족을 탓하며 노인정을 찾는다, / 노래와 ‘시극’연습에 열심들이다. / 빡빡한 나의 성격이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 나의 이장시절에 / 피조개 공동사업으로 부(富)를 축척하고 / 공정한 분배로 단결과 화목을 / 이루었던 때를 생각하며 / 문화를 통하여 생동감 있는 마을공동체를 / 만들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 설득력이 없으면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 대 쪽 같은 내 성격,  / 마을 공동이익을 위해 이제 나서야 하겠다.] (마을 공동이익을 위하여! / 김형도)

이렇게 만들어진 시를 낭송 하니 그동안 참가했던 할머니들이 반성문 이라고 숙덕거리지만 그간 마음고생 했던 강사진들은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일상적인 삶, 섬마을 시인으로 만들다.

 일상을 마치고 오후에 종합발표장예정지 야외 마을쉼터에 모여 총리허설을 실시, 시낭송은 나름대로 또박 또박 낭송되지만 콩트와 춤(군무) 마을노래합창 전체동작과 개인동작 선을 몇 번이나 교정, 반복해도 극단배우에게 익숙한 연출, 풍물강사의 눈에는 차지 않는다. 배우들 같으면 큰소리도 치고 나무라기라도 할 건데 시골어른들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입가에 미소를 지어야하는 표정관리가 더 힘들다.

 그런 와중에도 물때 맞추어 어장(낙지잡이)나가야 된다며 출연자들이 빠져 나가고 해는 저물고 할아버지들은 구판장으로 모여가 고구마와 소주잔을 기울이고 할머니들은 어줍은 걸음걸이로 집으로 간다.     

 연습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만 바람이 세차다 풍랑주의보가 발효되고 정기여객선이 끊겼다. 문학 강사는 상주하다시피 섬에 있으니 별문제가 없지만 다른 강사들은 섬에 들어오지 못했다. 한주간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함께 섬에 갇혀 보내었고 섬사람들의 불편함을 몸소 느꼈다.

 행사준비 마무리단계인 시화집 편집과 교정을 마치고 마을 어귀에 현수막설치와 야외무대에 바람막이 천과 무대설치와 음향시설을 점검하며, 행사당일 마을에서 떡국을 준비하여 손님들과 함께 마을잔치를 벌이기로 했는데 의견 충돌이 있었다. 연로하신 분들이 많아 음식 할 수 있는 노동력 부족으로 도시락을 시켜먹자고 한다.  생활문화공동체 마을만들기는 문화도 문화지만 생활문화를 통하여 공동체 형성에 목표를 두고 있기에 음식도 함께 만들고 함께 나누는 것도 공동체라고 강사진들의 설득 끝에 마을 부녀회가 총동원되어 떡국과 잔치 음식을 하기로 하는 한편 모든 경비를 마을에서 부담하기로 결의 했다.

  드디어 발표회 날 돌풍이 심하게 불어댄다. 바람막이가 날아가고 차가운 바람은 야외무대행사는 도저히 불가능하게 만든다. 서둘러 행사장을 마을회관 이층으로 바쁘게 정리하여 물건들을 옮긴다. 비좁은 곳이지만 실내라 따뜻하고 바람소리가 없으니 평온하다.  

   

종합발표회 _ 마을 노래

 그들은 이미 시인이었다.

 적지 않은 내빈, 이웃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모두들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평소 연습한데로 어르신들의 시낭송은 또박 또박 이어지고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감동 속에 ‘십오야 달빛의 추억’의 촌극은 예상치 못한 어르신 배우들의 애드리브에 폭소와 배꼽을 잡고 마을노래합창으로 박수갈채와 함께 막을 내렸다.   

 필자는 종합발표회가 진행되는 동안, 뜨겁게 차오르는 눈시울을 감추기 위해 여러 번 사진기를 들고 뷰파인더 속으로 눈을 감춰야만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섬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시를 들고 나와 낭송을 했다. 그들의 삶이 시가 되어 피어났고, 그 시가 그네들의 육성으로 회장에 낮게 깔렸다. 반세기를 훌쩍 넘게 살아낸 사람들의 육성은, 묘한 울림을 자아냈다.

“노을과 함께/석양이 질 때면// 어둠 맞이 불빛/하나 둘 켜지고//무전기 스피커엔/삶의 목소리들// 언제나 저 석양/ 같은 인생이라면” (오호권 ‘밤 낙지잡이’)

“일제강점기시절/꿈 많고 꽃다운 열일곱 소녀를/처녀공출 당하지 않기 위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은행근무도 그만두게 하고/부모님이 억지로 결혼시켜/육지에서 섬으로 시집보냈다.//밥 할 줄 모르는 새색시는/시댁 식구들이 내던지는/밥사발에 이마가 터지고/가냘픈 몸매에 큰 물독을 이고/ 지게지고 나무하느라 고운 손은 거북이 손으로 변했다.//신랑이 어장배 타고/떠난 밤이면//피곤함과 외로움이 온몸을 쑤시어/열손가락 마디마디가 더 아리게 했다.”(장석순 ‘열일곱 소녀’)

 20여 편의 시가 낭송되는 동안 누구 하나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사람들은 회장에 낮게 깔리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였다. 그들의 시에는 섬마을 사람들의 애환, 삶과 죽음, 고독과 사랑 그리고 화해의 시구들이 넘실거렸다. 낭송을 듣던 사람들은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꾹꾹 눈가를 찍기도 했으며, 다시 환하게 웃기도 했다.

 그랬다. 그들의 인생을 시로 풀어낸 사람들. 그들은 이미 시인이었다.

“어허라 넘자 어허라 넘자 바다로 넘자 바다로 넘자/ 어허라 넘자 어허라 넘자 바다로 넘자 바다로 넘자” 시낭송이 끝난 후, 주민들이 공동 창작한 선바위 노래를 합창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종합발표회는 끝이 났다.

“담배 한대 빌릴 수 있을까요?”

비니를 쓴 남자 한명이 다가와 필자에게 물었다. 필자는 흔쾌히 담배 한 대를 건넸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며 “끊었던 담배가 다 피고 싶네요.” 말을 보탰다. 먹먹한 감동을 느낀 것은 필자만이 아닌 듯했다. 주민 60여 명의 섬마을에 생활문화공동체 시범사업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시를 짓고 시화를 붙이고, 시극을 연습하며 두 계절을 보냈다. 그들의 삶과 두 계절의 시간이 온몸으로 부딪쳐온 것이리라.

EBS 지식채널e '늙은 시인의 노래' _ 2012년 10월30일 방송 / 극단 벅수골 기획사무국장 제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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