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세오름에서 히말라야까지
책에 빠진 시기와 철인3종 운동을 시작한 시기가 거의 비슷하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검색용 컴퓨터로 ‘철인’을 검색해 보았다. 아직 대회는 나가보지 않았지만 한창 준비를 하고 있을 때여서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았다. 달리기, 수영, 자전거와 같이 단일 종목의 책은 많이 있었지만 철인3종 관련 책은 딱 한 권 있었다. 컴퓨터가 알려준 자리로 가서 ‘내 삶에 비겁하지 않기’라는 책을 펼쳐 보았다. 저자는 여행 가이면서 사진가이고 철인3종을 즐기며 히말라야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이 책은 철인경기와 히말라야 등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면서 나온다. 그때는 등산에 관심이 없어서 운동 부분만 집중적으로 본 기억이 난다. 그러나 히말라야라고 하면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동경의 대상이고 꿈일 것이다. 이 책을 봤을 때 나의 마음속에도 아주 작은 히말라야 씨앗이 뿌려졌던 것 같다.
등산을 조금씩 시작했을 때 엄홍길 대장님의 강연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휴가를 내서 참석을 하였다. 강연에 참석이 확정되고 그때 주문해서 읽은 ‘내 가슴에 묻은 별’이라는 책도 읽어보고 가지고 갔다. 강연이 끝나고 책에 사인도 받고 악수도 하였다. 책에는 ‘히말라야의 성스러운 기운을 드립니다.’라고 써 주셨다. 두툼하고 거친 손의 느낌이 그동안의 노력이 한데 모아져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2년 후 나는 히말라야로 떠나게 된다. 추석 연휴에 휴가를 내고 12일간의 일정으로 트레킹을 떠나는 것이다. 출발하기 2주 전 아내에게도 승낙을 받았고 회사에도 말했는데 인원이 적어 취소를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담당자에게 연락을 하여 어렵게 낸 기회인데 다른 방법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다른 팀에 적은 우리 팀의 인원이 합류하여 떠나는 것으로 최종 결정이 되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처음 취소 연락을 했을 때 연락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그 연락 없었다면 진행을 안 하려고 했다고 한다. 나는 꼭 가야만 하는 절박한 심정이 있었기 때문에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기회는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태어난 날도 같은 병실에서 자고, 산후조리도 집에서 하였으며 주말은 항상 아빠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길게 딸아이와 떨어진 적은 처음이었다. 네팔로 가는 비행기에서 ‘히말라야’ 영화도 보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카트만두에 도착했는데 공항에서 쌍무지개가 떴다. 왠지 이번 여행의 기분이 좋다. 잘 없는 일인지 이 무지개는 다음날 신문 1면에 작게 사진으로도 나왔다. 히말라야라고 해서 걱정을 많이 할 필요는 없다. 등반이 아니고 트레킹이다. 코스가 힘들지는 않지만 하루 8시간씩 매일 걸어야 해서 체력 관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시기적으로 우기가 끝나갈 때라 거머리가 너무나 많아서 조심을 해야 한다. 3,0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서는 맥주를 오픈하면 거품이 폭발을 한다. 힘들고 지쳤을 때 이런 경험이 한순간 웃음으로 피로를 풀어준다. 고산에서는 물을 많이 마셔야 고산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네팔에서는 아침에 일어나면 차를 마시고 매 식사마다 차를 함께 마신다. 4,130미터에서의 감동은 정말 말로 할 수가 없다. 딸아이에게 영상 편지를 쓰기 위해 동영상을 찍었는데 시작하자마자 울먹여서 찍을 수가 없었다. 중학교 들어가기 전 가을에 딸아이와 함께 와 보기로 다짐해 본다.
히말라야에서 특별한 만남도 있었다. 트레킹을 시작한 지 9일이 지났을 때 거의 다 내려와서의 일이다. 저 멀리 남자 3명이 올라오는 것이 보여서 우리 일행은 한국인이다. 중국인이다. 내기를 하고 있었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김창호 대장님 이셨다. 코리안 신루트를 개척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한다. 반갑게 인사했던 추억이 있는데 2년 후 히말라야 3,500미터 지점 베이스캠프에서 눈보라에 휩쓸려 사망하셨다. 산이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기도 하지만 소중한 것을 빼앗아가기도 한다. 12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딸아이가 현관에 편지도 써놓고 풍선도 불어놨다. 상상만 하던 일을 해내고 집에 돌아온 것이다. TV, 소파, 식탁, 금붕어 등등 바뀐 것은 없다. 안방 문을 여니 딸아이와 아내는 같은 포즈로 엎어져 자고 있었다. 돌아왔구나. 겉모습은 바뀌지 않았지만 내 안의 세상을 보는 눈은 가기 전보다는 훨씬 넓어져 있을 것이다.
딸아이 초등학교 1학년 가을. 둘만 1박 2일로 제주도 윗세오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처음에는 한라산 백록담에 가고 싶었으나 운동은 꾸준히 했어도 동네 산 한번 안 다녀본 딸아이에겐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아 윗세오름으로 변경을 하였다. 산이라는 것이 코스도 다양하지만 우리는 출발지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로 잡았다. 종주 코스로 가면 출발지와 반대 방향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중간에 힘들다고 내려가자고 하면 곤란한 상황이 생길 것 같아 올라간 길을 다시 내려오기로 한 것이다. 토요일 오후 문화센터 수업을 마친 딸아이와 함께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아빠와 둘만 떠나는 첫 비행기 여행. 기대도 되었지만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제주에 도착하니 비가 내렸다.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보니 캠핑과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마치 유럽 배낭여행을 다닐 때 묵었던 숙소 느낌이 났다. 늦은 시간도 아닌데 번화가가 아니라 근처 식당이 모두 문을 닫았다. 저녁을 위해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을 사 왔다. 숙소 지하에 마련된 공동 주방에서 둘이 컵라면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딸아이가 많이 큰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내일 산행을 위해 일찍 자고 다음날 어제 그 지하 주방에서 조식을 먹고 산행지로 출발을 하였다.
출발지에 서서 사진을 찍는데 딸아이가 신나기도 하면서 걱정도 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가다가 못하겠으면 다시 내려오면 된다고 안심을 시키고 출발을 하였다. 처음 나무 계단은 쉽게 올라가고 안내판이 나오면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보며 궁금한 건 물어보고 이야기하며 올라갔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시켜서 그런가. 처음 산행인데 제법 잘 올라간다. 숲길을 지나 산 정상에 다가오며 저 멀리 바다도 보였다. 11월 말이고 산 위로 올라오니 날씨가 제법 추웠다. 바람이 거세지면서 딸아이가 ‘아빠 나 포기하고 싶어’라고 말을 하였다. 조금만 가면 도착한다고 말을 하고 주머니에서 사탕과 젤리를 주면서 참고 가자고 하였다. 그리고 정상에 다 왔을 때 딸아이 발밑으로 구름이 쫙 깔렸다. 그때 딸아이가 했던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빠 지금 꿈꾸는 거 아니지? 꿈속을 걷는 것 같아.’ 딸아이도 대자연 앞에 큰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대피소에서 준비해 간 컵라면과 김밥을 먹었다. 올라올 때 3시간. 내려올 때 2시간. 총 5시간의 해발 1700미터의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서 딸아이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잘 끝냈다고 하고 바로 잠이 들었다. 깊이 잠든 딸아이를 보면서 조금은 측은 했지만 안 해보고 무섭고 두렵다고 말하지 말고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일단 시작을 하면 다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가르쳐준 특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