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연
수민의 회사는 동묘에 있었다. 인천에서 동묘로 올라갈 때 용산에서 내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리를 잘 잡아 앉게 되면 묘한 소리를 들었다. 대방역에서 서울역으로 들어갈 때는 불이 꺼지고 다시 지는 찰나의 순간에 잠깐 들리는 소리라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동묘에서 운 좋게 자리를 잡아 앉아서 집으로 올 때
서울역에서 남영역역으로 지나갈 때 불이 꺼진다.
그리고 다시 켜진다. 그때 되면 전철 내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아침보다 더 크게 들린다.
수민은 처음에는 무시하려고 했었다. 그냥 직장을 다니는 길이 초행이라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려고 했으나 이제 직장 생활 1~2년을 넘기고 3년 차에 들어가는 이때 출근하는 길이나 퇴근하는 길에서 신경 쓰이는 소리가 계속 들리니 수민이 이제 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초반에 들리는 소리는 절구공이 소리였다. 들리는 소리를 검색해 보니 화장터에서 나는 유사 소리라고 검색되었다. 화장터에서 나는 소리라는 말에 수민은 더 믿기 힘들었다. 이제 뭔가 긁는 소리가 점점 더 커져서 불타는 소리처럼 들렸다. 불태운 뼈를 곱게 가는 소리가 전철 내부에서 들리는 것이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수민은 혼자만의 착각이라고 생각했기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임금님은 귀는 당나귀 귀]의 옛날이야기처럼 누군가에게 너무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슬쩍 이야기를 던져봤지만 그들은 수민의 이야기에 코웃음을 쳤다.
수민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출퇴근 길 무선이어폰을 꼭 끼고 더 이상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날은 더더욱 피곤한 날이었다. 앉아가고 싶었던 수민은 퇴근 시간을 피해서 전철을 탔다.
7시 40분 정도면 전철 안 사람이 별로 없다. 동묘에서 인천선을 확인하고 전철을 탔고 서울역에서 갑자기 전철이 정차를 하더니 고객 민원이 들어왔다며 좀 멈췄다가 처리하고 간다고 한다. 수민이 있던 칸 사람들은 그 민원이 뭔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웅성웅성 소리는 커졌지만 민원 처리는 3분 안쪽으로 정리가 되었는지 전철은 출발했다. 그렇게 남영역으로 전철을 이동했고 전철의 불이 꺼졌다. 수민은 핸드폰을 보던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는데 창에 사람들이 비치는 모습이 순간 무서웠다.
지금 이 칸에는 서 있는 사람이 없었는데 전철 안은 서 있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전철 불이 켜지고 창에 비치는 모습을 다시 봤는 데 평온하게 현재 수민과 같은 칸에 앉아 있는 사람만 보였다.
수민은 이 한 번의 경험으로 이 역에서는 다시 창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들리는 소리도 무서운데 저런 장면을 헛것이라지만 봤다는 게 너무 싫었다.
정말 이게 들리고 보이는 게 나라는 사실이라는 게 수민을 힘들게 했다. 다들 평온한데 혼자 평온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싫었다. 이제 익숙해진 회사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런 상태로 계속 출퇴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출퇴근 루트를 변경하기로 했다.
용산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여러 번 타는 형태로 출근을 하는 것도 귀찮지만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출퇴근을 이어가던 어느 날. 야근을 했고 그날은 일찍 집에 가고 싶었다.
추석 전날 어쩔 수 없는 야근이라 다들 퇴근했고 수민만 남아 있던 상황이었다.
밤 9시 30분 버스를 타서 가면 너무 늦어질 것 같아 오랜만에 전철을 타기로 결심했다.
정말 여의치 않으면 전철을 타지 않았던 수민은 긴 연휴가 시작되는 이 날만큼은 빠르고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동묘에서 전철을 타자마자 눈을 감고 절대적으로 눈을 뜨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수민은 전철을 타서 꿀잠을 자고 눈을 뜨니 가산디지털단지역이었다. 수민은 역이름을 확인하고 바로 내렸다.
"나는 분명 인천행을 확인하고 전철을 탔는데 왜 신창행이었을까"
수민은 집에 일찍 가고자 했던 마음으로 탄 전철이었는데 길을 더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7호선으로 갈아타서 온수나 부평에서 전철을 다시 탈 것인가 아니면 구로와 신도림으로 가서 갈아탈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1호선 광운대행을 타고 영등포역에서 갈아타기로 결정했다.
수민은 너무 피곤해서 그랬을까 또 잠이 들어버렸고 시청역에서 눈을 떴다. 수민은 시청역에서 다시 전철을 기다리면서 고민을 했다. 남영을 지나가야 하는 게 맘에 걸렸다. 그러나 인천선 제대로 보고 다시 자버리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란 생각에 다시 한번 더 전철을 타기로 했다.
부평행을 확인하고 수민을 전철을 탔다. 꼬리칸에서 전철을 탄 수민은 드문 드문 앉아 있는 사람들과 좀 떨어져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선이어폰을 귓가에 꽂고 눈을 감았다. 서울역을 지나고 이제 남영역으로 가는 길에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무선이어폰을 뚫고 들리는 그 소리
"드르륵드르륵 그윽 그윽 드르르륵 "
수민은 결국 눈을 뜨고 말았다.
어두컴컴한 전철 사람들은 저 멀리 보이지만 수민이 앉아있는 자리 근처로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왜 창가에 보이는 풍경은 엄청 많은 사람들이 자신 주변에 서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민은 순간 아무것도 아닌 척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전철 안은 깜깜했다.
다른 때보다 오늘은 더 긴 시간 동안 깜깜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좀 추워졌다.
그런데 그 이상한 소리와 함께 속삭이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째지는 소리였다.
[들리나?]
수민은 목 뒤에서 땀이 흘렀다.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보이나?]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가면 이 이상한 소리와 추운 느낌이 사라질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려고 했는데 또 소리가 들렸다
[야 보이는 가 보네? 들리는 건 기본이고, 전부터 좀 이상하다 했는데 안 보여서 잊었었는데...]
수민은 내가 왜 전철을 탔을까 후회가 되었다.
그런 티를 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이는 쪽으로 움직이려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좀만 더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다시 눈을 감으려 했더니 또 들리는 목소리
[들리고 보이고 캬햐햐 이런 년 가끔 있던데 이번에는 제대로 인가 본데 ]
아까의 목소리와 다른 사람이었다. 깜깜한 곳에 꼼짝달싹 못하는 상태로 불이 켜지기만을 바라던 그때
불이 켜졌다.
수민의 엉거주춤한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수민의 얼굴과 귀까지 새빨게 졌다. 수민은 그 자리에 다시 앉아버리고 싶었지만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서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
수민의 그런 모습에 사람들이 시선이 한참 머물렀으나 이동하는 수민을 보고 난 사람들은 여전히 핸드폰 삼매경에 빠지거나 졸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추석 선물세트를 확인하기도 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 전철의 흔한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