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연
새로 산 신축 아파트였다.
지연이 그 집을 구하게 되어 너무 좋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고 남편과 둘이서 열심히 빚을 갚아야 하지만
빚을 갚는 것보다 집을 구했다는 기쁨이 더 큰 시기라며 수민을 집으로 자주 초대했다.
지연은 결혼한 지 6개월 정도였고 아직은 아이 계획이 없던 시기의 신혼이라 수민은 지연이의 집에 자주 가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서울에 살다가 혼자 경기 부천 인천 등 다른 지역에 떨어진 지연이가 눈에 밟혀 인천지역에서 가장 가깝게 살던 수민이가 지연과 가장 자주 볼 수 있던 시기였다.
적막... 적막감이 느껴지는 것이 시작이었다.
수민은 적당한 적막감을 좋아했지만 이렇게까지 적막감을 느끼는 것은 좀 오버라고 생각했다.
신축아파트라 방음을 끝내주게 잘해두었다고 생각했지만 옆집의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니고 담배 냄새와 물 내려가는 소리 등 문득 느껴지는 생활 소음과는 다르게 적막감이 지연이네 집 전체를 채운 듯했다.
지연의 집에 들어가면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느낌이고 와이파이도 끊기고 단절되는 상태가 된다.
지연의 말로는 와이파이 무선공유기를 아직 설치하지 않아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나중에 공유기가 설치가 되었지만 그 집에 들어가면 와이파이가 잘 잡히지 않고, 전화 자체도 스팸조차도 오지 않는다.
수민은 지연에게 리모컨을 받아 당연하게 TV를 튼다. TV를 보지 않지만 지연과 주방 식탁에서 밥을 먹어도 지연의 서재방에서 수다를 떨어도 TV소리를 일부러 틀어놓는 수민에게 지연이 물어봤다.
"야 너는 TV를 보지도 않으면서 왜 자꾸 켜? 그냥 대화를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수민은 대답했다.
"이상하게 적막(寂寞) 감이 느껴져서 그 느낌이 나쁘다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소리가 없으니까 내가 좀 못 견디겠어 그런 거 있잖아 백색소음. 그런 거라고 생각해 줘"
원래부터 온갖 소음 속에서 작업을 하는 게 수민의 취미라는 걸 지연은 알았기에 수민이 오면 당연하게 TV리모컨을 건네주게 된 것이다. 수민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소리가 패널들이 끊임없이 대화하는 채널을 틀어놓고 지연과 밀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백수 생활을 하던 중인 수민은 자격증을 위한 실습으로 인해 둘은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실습은 어때? 아이들이랑 잘 지내고? 청소는 안 시키는 것 같던데?"
지연의 말에 수민은 준비해 온 과자를 열심히 먹으면서 대답했다.
"아이들이랑은 어찌어찌 잘 지내 실습은 곧 끝날 것 같아. 근데 오늘은 이상하게 좀 여기 썰렁하다. 혼자 있다고 보일러 안 키냐?
지연은 웃으면서 말했다.
"항상 더워하는 네가 오늘은 춥다는 말을 하냐 이상하게 넌 울 집에만 오면 춥다고 하더라. 너보다 내가 더 추워하는 게 당연한데 오늘은 좀 이상하네. 그래도 모르니까 온도 더 올려줄게?"
수민은 그 말을 들으면서 TV리모컨을 아이들 채널로 변경했다.
"요즘 실습을 나가서 이야기를 듣는데 모르는 캐릭터가 그리 많은지 그래서 좀 봐야겠다. 넌 아는 게 좀 있냐?"
지연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아직 멀었지~ 준비는 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아기들 웃음소리 많이 나면 좋겠네."
수민은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적막감을 깨기 위한 TV 프로그램을 간간히 쳐다보며 간식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수민의 실습이 막바지에 이뤘고, 수민은 자신의 일에 바빠서 지연과 연락을 한 동안 하지 못했다.
세 달 정도 지나서 지연에게 연락이 왔고 그날은 지연의 집에 가도 충분한 시간이 되는 날이라 수민이 찾아가기로 했다. 그날도 두 손 가득히 간식거리를 들고 집을 방문했다. 지연은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자리를 잡고 앉은 수민에게 리모컨을 건넸다.
수민은 오늘은 음악방송이 당긴다면서 뮤직비디오가 연속으로 나오는 채널을 틀어두었다. 수민의 채널 돌리기는 자취집에 왔을 때도 있었던 행동이었는데 한참 열심히 오던 때 행동과 오늘의 행동은 좀 다른 느낌이 들어 수민에게 지연은 물어보고 싶었다.
" 너 우리 집 올 때마다 과자를 많이 가져오는데 그거 다도 다 못 먹고 오빠도 잘 안 먹는데 왜 안 가져가고 울 집에 두고 가는 거냐? 오늘은 좀 챙겨 가."
"나중에 또 와서 먹으려고 하는 거지 이제 좀 시간이 되니까 자주 보자고 어쩌다 둘 다 백수 일 때 시간을 좀 즐겨야 하지 않겠어."
수민의 말에 연속으로 놀러 오라고 지연은 웃으며 말했다. 수민의 실습이 완전히 끝나는 날 축하파티를 하자고 했다. 수민의 실습이 끝나기 3일 전 수민과 지연의 대학동창의 부고를 들었다. 축하 파티는 연기가 되었다.
파티가 연기되고, 지연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는 단어를 검색했다.
적막...
[적막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매우 고요하며 정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명사로, 주로 외딴곳이나 쓸쓸한 분위기에서 사용된다.]
지연은 우리 집에서 적막감이 느껴진다고 하는 건 뭘 말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다.
생전 추위도 잘 느끼지 않던 친구가 우리 집이 점점 추워진다고 말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고 울 집에 와서는 긴팔을 챙겨 입는 것도 좀 이상하다는 생각만 하던 지연은 집에서 익숙하게 시간을 보내던 중 잘 자지 않던 낮잠을 자게 되었다.
낮잠을 자고 나왔는데 거실 TV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 소파 쪽에 앉은 게 아니라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식을 먹고 있는 무리들이 있었다. 짓궂은 얼굴의 어린 남자아이와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 그리고 교복을 입고 있는 중학생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수민이 사 온 과자를 먹고 있었다.
지연은 그들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잠에서 덜 깬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낮잠을 자던 방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잠에서 깬 후 지연은 한숨이 나왔다. 이 집에 이사 온 지 이제 1년이 좀 넘었는데 이 집에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상외로 남편도 찬성을 하는 것이다.
"이 집이 생각보다 너무 커서 너 혼자 이 공간을 다 채우고 있는 게 좀 힘들어 보였어. 네가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는데 그때 수민이가 여기 소리가 너무 없지 않냐는 말을 우연히 들었을 때 별 생각이 없었는데
네가 집을 비우고 나 혼자 집에 있어보니 적막이라는 말이 몸을 체감되었다고 할까?
남편의 동의까지 얻은 지연은 빠르게 집을 알아보고 구옥의 아파트로 이사를 결정했다.
집이 확정되어 그곳을 벗어나는 날짜 두 달 정도 남았을 때 취업을 했다며 수민에게 연락이 왔다.
"좋은 집에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는 거냐? 축하해. 나는 이제 와이파이 무덤에서 벗어나서 너네 집에서 스마트폰을 마구마구 쓸 수 있는 것인가?"
지연은 수민의 말에 웃어버렸다. 끊임없이 찾아보는 수민에게 우리 집이 좀 힘들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다음 집이 정리되는 대로 놀러 오라고 했다. 이사를 떠나는 날 수민이 사 오던 과자를 사 와서 집에 두고 나왔다. 과자를 보신 이삿짐센터 분들이 좋아하셨다. 지연은 그냥 미소만 지었다.
새 집으로 그렇게 이사하고 세 달이 지나 지연은 수민을 집으로 초대했다.
수민에게 자연스럽게 리모컨을 전달했다.
수민은 자연스럽게 TV를 켜 놓았다.
또 다른 집에서 안정을 찾은 지연에게 아이가 찾아왔고
지연이의 집에 놀러 오는 수민은 더 이상 집에서 TV 리모컨을 요청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