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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 Sep 15. 2021

그 큐레이션 별로예요, 신선함도 인사이트도 없어서요

좋은 관점 없이 좋은 큐레이션은 나올 수 없다

세상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비즈니스, 마케팅, 콘텐츠 분야에서도 항상 특정 시기에 트렌드가 되는 몇몇 키워드들이 있다.


한 때는 콘텐츠가 중요하다면서 콘텐츠의 중요성을 엄청나게 부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쌓아야 한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평범한 사람이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법과 관련된 책과 영상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개인적으로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쌓는 능력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요구가 아니라 인류 역사상 언제나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후 앱스토어, 구글 플레이스토어 등 다양한 플랫폼이 각광받으며 플랫폼이라는 키워드가 트렌드로 떠올랐다. 또 이러한 트렌드를 바탕으로 많은 스타트업들이 스스로를 플랫폼 기업(혹은 플랫폼 기업이 될 것이다)이라고 말하고, 기존의 회사들도 앞으로는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할 것이라는 선언이 상당히 많았다.




최근에는 콘텐츠 과잉 시대라면서, 중요한 콘텐츠를 선별하고 편집하는 큐레이션이 중요하다는 말이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있다. 큐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또 하나의 중요한 트렌드가 됐고, 또 이를 반증하듯 최근 카카오는 카카오톡 탭을 카카오 뷰로 개편했다.


큐레이션이 트렌드로 떠오르며 생겨난 현상 중 하나는 개인 혹은 조직이 만드는 큐레이션 콘텐츠가 상당히 늘어났다는 것이다. 스티비나 메일리처럼 손쉽게 콘텐츠를 만들고 배포할 수 있는 툴이 대중화된 것도 이에 한몫한다. 커리어리처럼 컨셉 자체가 콘텐츠 큐레이션인 SNS도 생겼고. (딴소리 하나 하자면, 커리어리를 보면 링크드인 피드의 한국 버전 같고 또 나중에는 링크드인처럼 채용까지 아우르는 서비스가 될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형 언론사를 비롯해 수많은 브런치 작가들, 또 브런치 이외의 개인 블로그나 웹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콘텐츠 창작자들이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개인이 모든 콘텐츠들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콘텐츠 중 중요한 콘텐츠만 선별하고 편집하는 큐레이션이 주목받고, 큐레이션 콘텐츠를 만드는 큐레이터들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큐레이션 콘텐츠와 큐레이터가 늘어나면서 또 큐레이션 콘텐츠 과잉되고, 이 큐레이션 콘텐츠 자체의 퀄리티 문제가 생겼다.


뉴스레터의 예시를 생각하면 쉽다. 큐레이션 콘텐츠가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가 바로 뉴스레터다. 큐레이션 콘텐츠라는 콘텐츠를 만들 재료가 인터넷에 널렸고, 콘텐츠를 담을 그릇인 뉴스레터는 스티비나 메일리 메일침프로 쉽게 만들 수 있으니, 콘텐츠 큐레이션 뉴스레터가 우후죽순 늘어났다.


그래서 나도 한 때는 회사에서 뉴스레터 만드는 일을 했어서, 언뜻 보기에 좋아 보이는 뉴스레터는 일단 다 구독했다. 그러다 보니 뉴스레터가 하루에 막 20, 30개씩 쌓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오픈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메일을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꾸준히 볼 뉴스레터만 구독을 이어나갔다.




큐레이션 콘텐츠의 퀄리티 이슈 핵심 근본 원인은 '큐레이터의 관점'이다. 콘텐츠를 선별하고 편집하는 큐레이터가 신선하고 다양한 관점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뻔한 관점을 갖고 있거나, 관점의 수준 자체가 높지 않으면 큐레이션 콘텐츠의 퀄리티는 자연히 떨어진다.


즉, 신선하거나 높은 수준의 관점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만든 이런 큐레이션 콘텐츠는 내게 꼭 필요한 콘텐츠만을 전달해주는 콘텐츠가 아닌, 짜깁기에 더 가까운 큐레이션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이런 큐레이션 콘텐츠는 그냥 사람이 대신해주는 크롤링 결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사실 이런 크롤링은 컴퓨터가 더 잘한다.


또한 큐레이션 콘텐츠가 넘쳐나다 보니 여러 큐레이션 콘텐츠에서 똑같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큐레이션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아졌다. 즉, 결국 독자(혹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최종적으로 같은 콘텐츠를 중복해서 접하는 일이 상당히 빈번해진다.


정말 안 다룰 수 없는 중요한 아티클이나 콘텐츠가 나올 때 콘텐츠가 중복되는 건 당연하다. 또 독자 입장에서 그만큼 해당 주제가 중요하다는 걸 인식할 수 있고. 그런데 평소에도 콘텐츠의 중복이 잦다는 건 다수의 큐레이터들이 신선한 관점을 갖지 못한 채, 남들 다 보는 매체들에서 콘텐츠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계속 말하지만 큐레이션의 핵심은 큐레이터의 관점이다. 독자는 큐레이터가 가진 관점에 따라 기존의 콘텐츠를 재해석하고 다시 보게 된다. 그래서 큐레이션 콘텐츠는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큐레이터의 인사이트 혹은 해석이 정말 중요하다. 아니면 정말 긴 아티클에서 핵심만 찾아 요약해주는 능력이라던가.


그런데 큐레이터가 관점 수준이 낮다면,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해 또 인사이트나 해석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자신의 소감 정도만 언급하게 된다. 특히 "이 콘텐츠를 보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콘텐츠에 대한 이런 식의 언급은 독후감이랑 다를 게 뭔가 싶기도 하다. 독자는 큐레이터의 단순한 소감이 필요한 게 아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보게 해 줄 신선한 관점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보통 큐레이션 콘텐츠의 컨셉이 명확하지 않을 때 가장 자주 쓰는 컨셉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이 받은 영감'이다. 그래서 자신이 받은 영감을 메인으로 컨셉으로 하는 큐레이션 콘텐츠들은 대부분 "남들과 다른 시각에서 제게 영감을 준 콘텐츠를 큐레이션 해서 보여드립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근데 이런 영감 큐레이션 콘텐츠 보면 큐레이터가 무슨 영감을 받았는지도 모르겠고, 다른 큐레이션들과 무슨 차이점이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리고 큐레이션 한 콘텐츠 자체가 별로인 경우도 있다. 이것 역시 큐레이터의 관점에서 기인하는 문제다. 좋은 콘텐츠를 고르고 편집할 관점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큐레이션 매체는 이미 차고 넘친다. 카카오는 카카오뷰를 통해 다양한 창작자들이 큐레이션 콘텐츠를 만들고 퍼블리싱하는 판을 깔기 시작했다. 또 커리어 분야 쪽으로 보면 커리어리도 있고, 서핏, 서플과 같은 큐레이션 사이트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또 뉴스레터라는 매체를 보면 이미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쌓고, 나름의 영역을 확보한 큐레이션 뉴스레터도 상당히 많다.


그래서 개인이든, 팀이든 성공하는 큐레이션 콘텐츠를 시작하려면 독자들에게 새로운 관점 혹은 아예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남들 다 보는 네이버 뉴스나, 티타임즈 아티클이나, 브런치 인기 작가 글을 큐레이션 하는 게 아니라 썸원 뉴스레터처럼 독자들의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깊이 있는 인사이트가 담긴 책에서 핵심 내용을 요약해 준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콘텐츠 수집에 공을 들이며 다른 큐레이션에서는 접할 수 없는 콘텐츠를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네이버 뉴스 기사처럼 접하기 쉬운 아티클을 큐레이션 할 때는 비즈까페처럼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제공해주거나 독자가 신선한 시각으로 콘텐츠를 해석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비즈까페는 VC와 투자의 관점에서 다양한 아티클에 대한 소감을 말해주는데, 평소에 VC와 투자의 관점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아티클을 보면 본 이미 본 아티클이라도 신선하게 보인다.


아니면 팩폭레터처럼 이전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아예 새로운 컨셉의 큐레이션을 해야 한다. 팩폭레터는 최근에 알게 된 뉴스레터인데,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팩폭 짤을 보내준다. 웬만한 인사이트 글이나 동기부여 글보다 훨씬 더 재밌고 동기부여가 된다. 이거 보고 왜 난 이 생각을 못했을까 하기도 했고.




좋은 큐레이터가 되고, 또 좋은 큐레이션을 만들고 싶다면,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깊이 있고 유니크한 관점을 기르는 게 우선이다. 이런 관점은 남들보다 더 많은 콘텐츠를 보고, 또 큐레이션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콘텐츠를 큐레이션 하며 기를 수 있다.


특히 자신만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 보는 게 관점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새롭게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이 자신의 관점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깊이 있고 신선한 관점이 없다면, 큐레이션은 그냥 오리지널 콘텐츠를 못 만드는 자들의 대안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하지만, 큐레이션의 핵심은 깊이 있고 신선한 큐레이터의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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