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을 단순하게 나열하는 건 회의록이 아닌 속기록입니다
회사에서는 협업이 빠질 수 없고, 협업의 꽃은 회의다. 그리고 회의 후에 꼭 필요한 것이 있다. 회의록이다. 그러나 회의록을 잘 쓰기는 쉽지 않다.
특히 주니어들이 회의록을 많이 쓰게 되는데, 회의록은 대학 때 쓰던 레포트와는 다르다. 그래서 레포트 쓰듯이 회의록을 썼다가는 다시 고쳐야 하거나, 나중에 다시 보면 이해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사내에 레퍼런스 삼을만한 회의록이 있고, 회의록 작성을 잘 가르쳐줄 사수가 있다면 비교적 수월하게 회의록 작성 능력을 기를 수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보통 둘 다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회의록 작성 경험을 바탕으로 회의 이후 회의록을 작성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쉬운 방법에 대해 써본다. 회의 도중 기본적인 내용들은 다 적었다는 전제 조건이 설정되어 있다.
회의의 가장 주된 목적은 다수의 구성원이 더 나은 회사 차원에서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회의에서 나온 의사결정을 실행하기 위해 누가, 어떤 업무를, 언제까지 할 것인지 즉, 업무 분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회의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거나, 의사결정을 실행하기 위한 업무 분배가 정확히 이뤄진 것이 아니라면 회의를 해도 한 것이 아니다. 그냥 잡담하며 시간을 보낸 것뿐이다. 더군다나 그 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한 기회비용까지 발생한다.
* 참고로 모든 회의가 의사결정이 목적인 것은 아니다. 주간 미팅처럼 현황 공유 및 점검이 가장 주된 목적인 회의도 있지만, 여기서는 의사결정이 가장 주된 목적인 회의만 다룬다.
회의의 목적은 의사결정과 업무 분배다. 그렇다면 회의록의 목적은 뭘까? 너무나 당연하게도 회의록의 목적은 의사결정과 업무 분배를 기록해 남기는 것이다. 회의록 작성이 중요한 이유는 의사결정의 관점과 업무 분배의 관점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전자의 관점에서 추후 일어날 잘못된 의사결정을 예방할 수 있다. 회의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의사결정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려 노력한다고 하더라라도 잘못된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이때 지난 회의록을 통해 잘못된 의사결정과 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를 보고 추후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후자의 관점에서 회의록은 공식적인 업무 분배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구성원 간 분쟁, 책임 회피 등의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회의에서 아무리 좋은 의사결정이 나왔다고 해도,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때 회의록은 의사결정에 수반되는 업무와 담당자, 기한을 공식적으로 확정하는 역할을 한다.
회의에서 동일한 정보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회의 참여자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보를 해석한다. 즉 같은 회의에서는 하나의 정보를 얘기했지만, 나중에는 구성원들이 각자 서로 다른 n개의 정보를 이해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문제가 업무 분배와 합쳐지면 최악의 경우, 각자의 기억을 근거로 일을 서로에게 떠미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구성원들끼리 분쟁이 일어나며 업무는 하나도 진행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회의록에 업무, 담당자, 기한을 명확히 적어 놓으면 구성원 간 분쟁이 생기더라도, 회의록이라는 공식적인 증거가 이를 원만히 해결해 줄 수 있다.
추가적으로 회의록을 작성하고 잘 쌓아놨다면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왔을 때에도 큰 도움이 된다. 새로운 구성원이 회의록을 보며 업무와 회사에 대해 더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자신의 역할과 조직, 업무 히스토리에 대해 더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
두 번째 회사로 이직하며, 직접 회의록 작성 가이드라인을 제작했다. 이때 작성한 가이드라인을 수정, 보완한 것이 아래 버전이다. 줄 글 형식이 아니라 원본 가이드라인처럼 넘버링과 불렛을 이용해 작성했다. 회의록 작성이 힘든 주니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1) 작성법
- 회의록의 제목은 '회의일_회의 유형_버전'형식으로 통일합니다.
- 완성된 회의록은 버전에 'v1.0'라고 씁니다.
- 미완성, 초안, 사전 논의 사항만 작성한 회의록은 버전에 'v0.x'라고 씁니다.
- 제목 양식을 통일하는 이유는 전사 차원에서 회의록 관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 버전을 나눠서 관리하면 이전 버전과 최종 버전을 비교하며 수정, 보완한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2) 예시
- 21.01.11_마케팅 회의_v0.1 (사전 논의 사항만 작성했을 때)
- 21.01.11_마케팅 회의_v0.2 (회의 후 회의록 초안만 작성했을 때)
- 21.01.11_마케팅 회의_v1.0 (완성했을 때)
1) 작성법
- 회의 전 주최자가 논의 필요 사항을 작성합니다. 논의 사항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어야 합니다.
- 논의 사항의 개수 대신, 명확한 논의 주제를 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2) 예시
1. 사전 논의 필요 대주제
1) 사전 논의 필요 소주제
- 사전 논의 필요 사항 1
- 사전 논의 필요 사항 2
1) 작성법
- 시간순 대화 나열이 아닌, 주제 단위로 구분해 작성합니다. 회의 내용을 단순히 시간, 발언 순으로 적는 것은 회의록이 아닌 속기록입니다. (* 회의 중에는 A 주제를 얘기하다가 어느 순간 B, C 주제로 넘어가는 일이 많습니다. 따라서 회의록을 발언 순서대로 적는다면 중요한 내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 회의 내용 중 중복되거나 빠지는 부분이 없도록 작성해야 합니다. 특히 빠지는 부분이 없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 MECE 기법으로 작성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 넘버링과 불렛을 사용해 주제 별로 위계를 명확히 정리하고, 시각적으로 구체적인 회의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합니다. (* 동일한 기호를 사용한 항목끼리 동일한 위계를 나타내야 합니다. 또한 불릿은 가장 하위 위계에 사용하는 기호입니다.)
- 회의 미 참석자도, 회의록만 보고 회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작성해야 합니다. (* 회의록은 사내 공식 문서입니다. 따라서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다른 구성원들도 회의의 내용과 주요 의사결정, 담당자를 알 수 있도록 쉽게 적어야 합니다. 이는 회의 참석 인원과 미 참석 인원 간의 커뮤니케이션 미스를 줄이는 데 효과적입니다.)
- 회의록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회의 당일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을 못 하거나 잘못 기억을 할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집니다. 따라서 최대한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회의록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회의 당일 작성이 필요합니다.)
2) 예시
1. 논의 사항 대주제
1) 논의 사항 소주제
- 세부 논의 결과 1
- 세부 논의 결과 2
1) 작성법
- 업무, 담당자, 데드라인, 협업 요청 필요 사항을 작성합니다.
-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업무 진행에 차질이 생깁니다. (* 업무 진행의 차질이 반복된다면, 회사 계획에도 차질이 생기며 목표 달성에 큰 리스크가 됩니다. 따라서 사전에 이러한 리스크를 방지해야 합니다.)
2) 예시
1. 업무 1
- 담당자: OOO
- 데드라인: 2020.01.31
- 협업 요청: 개발자 A, 디자이너 B
- 유의사항: OOO 주의 필요.
회의록 작성 방법을 알았다고 바로 회의록을 잘 쓸 수는 없다. 미적분을 배웠다고 해도 바로 수능 4점짜리 문제를 풀 수 없는 것처럼. 회의록도 계속 써보고, 피드백받으며 고쳐야 실력이 는다. 또한 회의록은 회사 문서의 기본이라 회의록을 잘 쓰게 되면 다른 문서도 쉽게 쓸 수 있으니, 회의록 작성이 어렵다고 피하지 말고 계속 작성해보길 바란다.
참고로 더 자세한 회의록 작성 방법을 알고 싶다면, 유디v 작가님의 '회의록 작성, 그대로 따라 하기'를 보면 좋다. 처음에 회의록과 가이드라인을 작성할 때 큰 도움을 받았다.
또 제목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박소연 작가님의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를 오마주해서 지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박소연 작가님이 이 글을 좋게 봐주시면 참 좋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