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회사는 없다지만 꿈은 꿀 수 있으니까 (1) 직무편
우리는 하루 8시간을 회사에서 일을 하며 보낸다. 거기다가 출퇴근 시간, 준비 시간까지 합하면 거의 10시간 이상을 회사에 할애하게 된다. 하루에 8시간을 잔다고 했을 때, 깨어있는 16시간 중 절반 이상을 회사와 관련지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래서 회사 생활이 행복하지 않은데, 삶이 행복할 수 없다고 믿는다. 퇴근 이후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시간을 보내도, 어떻게 회사에서의 삶과 개인적 삶을 무 자르듯 분리할 수가 있을까.
그러니까 어떤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지를 스스로가 제일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일하고 싶은 회사에서 일을 해야 일을 잘할 수 있고, 재밌게 잘할 수 있다. 그래야 퇴근 이후의 개인적 삶도 제대로 즐길 수 있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실수하고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는데 퇴근 후에 모든 부정적 감정이 리셋되며, 갑자기 즐거워지는 건 불가능하다. 또 하루 종일 퇴근만 바라보고, 적당히 주어진 일만 하는 인생이 풍요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 '쟤는 공부도 잘하는데, 잘 놀기도 하네'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쟤는 일도 잘하는데, 퇴근 후에도 잘 노네'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밀레니얼 세대로,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의 조건을 직무, 사람, 회사의 측면에서 생각해봤다. 그리고 이 글은 첫번째 직무 측면에서 내가 원하는 회사의 조건을 쓴 글이다. 세상에 완벽한 회사는 없고, 팀바팀 사바사 라고 하지만 그래도 꿈은 꿀 수 있으니까.
성과를 내고 몰입하며, 즐길 수 있는 직무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향과 맞는 직무를 찾아야 한다. 내 직무는 마케터인데, 운이 좋게도 내 성향과 잘 맞는 직무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평소에도 예약 전화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수없이 많은 전화를 하고 사람을 만나야 하는 영업 직무였다면 이만큼 내 직무를 좋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케팅 직무를 좋아하는 이유를 성향과 연관 지어 한마디로 말한다면, 내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동시에 취약한 부분에 대해 보완하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든 콘텐츠든 내 장점 중 하나인 기획력이나 창의력을 발휘해서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더군다나 온라인 채널을 통해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고객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좋고. 조회수가 안 나오고, ROAS가 낮으면 정말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내 결과물이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케터에게 필요한 역량 중 창의력은 빙산의 일각이다. 마케팅 결과물을 만드는 마지막 단계에서 활용하는 역량이다. 그전까지는 가설과 실험을 설계하는 논리가 중요하다. 요즘 마케터 필수 역량이라고 하는 데이터 분석 역량도 결국 논리라는 역량의 일부분이다.
내 성향상 논리나 분석적 사고가 약한 편이었는데 마케터로 지표 설정 및 해석, 콘텐츠 기획 등의 업무를 하며 논리, 분석적 사고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논리와 분석적 사고는 어떤 직무를 하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의 기본기다. 따라서 마케터로 일하며 내 장점을 발휘하는 동시에,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점이 좋다.
또 다양한 최신 기술(Tech)을 접할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예전 마케팅을 주도하는 것은 천재적 감각이었다면, 요즘은 데이터와 이를 활용하는 Tech다. 최근 Mar-Tech, AD-Tech라는 개념이 뜨는 이유도 이것이다. 그래서 요즘 마케터는 반드시 데이터와 Tech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관련된 툴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고, FAANG과 같은 IT기업이 세계를 주도하는 시대에, 직무에 있어 Tech 활용 능력은 필수다. Tech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직무 역량은 점점 더 크게 벌어질 것이다. 그래서 Tech를 빠르게 접할 수 있고, 활용 능력을 기를 수 있는 마케팅 직무에 만족한다.
사실 처음에는 콘텐츠, 그중에서도 텍스트 위주의 콘텐츠를 만드는 마케팅 활동을 많이 했다. 그러나 마케팅에 있어서 이미지, 영상 콘텐츠 제작은 필수가 되었고 잘하는 사람도 너무 많다. 지금 내가 이미지, 영상 제작 스킬을 배워도 시장에서 결과물을 인정해 줄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텍스트만으로 마케팅을 하는데도 결국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성장하고 시장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케팅 툴을 익혀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GA, Braze, Amplitude 등의 툴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직무에서 일하고 싶다.
세상에 시키는 일만 그대로 해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내 성향상 더욱 그렇다. 주도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주도적으로 일한다는 것에 대한 각자의 정의가 전부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의사결정 권한'이 얼마나 있는가이다. 처음부터 넓은 범위의 의사결정 권한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니어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주니어라고 시키는 일만 그대로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시키는 일을 그대로 하길 원하면, 사람보다는 컴퓨터에게 일을 맡기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그래서 직무와 연차 등등을 고려해서 작은 부분에서라도 의사결정 권한을 갖고,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 의사결정의 권한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 여기서 주도적으로 일할 때의 핵심 요소는 열정, 책임 그리고 조직에 대한 이해다.
열정이 없으면 주도적으로 일할 수 없다. 주도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직무, 조직, 커리어에 대한 열정이 필수다. 열정에 관해서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열정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회사가 열정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면 좋겠지만, 회사는 개인의 열정을 꺾는 환경만 만들지 않으면 다행이다.
주도적으로 일한다는 것에는 항상 책임이 따른다.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하고 일을 한 것이니까. 판단은 실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맞을지 틀릴지 모른다. 판단이 맞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판단이 틀렸을 때, 그 책임은 오롯이 판단을 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잘못된 판단에 대한 책임을 감내하는 건 힘들다. 특히 회사에서는 잘못된 판단으로 다른 구성원들이나 회사에 손해를 끼치기도 하고, 윗사람으로부터 비판과 질책을 엄청나게 받을 수 있다.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올라가며 판단하고 책임져야 할 일은 더 많아진다.
근데 책임을 져야 할 때마다 아랫사람들을 비난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지울 건가? 지금 내가 지독히도 싫어하는 그 상사처럼. 그러니 책임의 무게가 작은 주니어 때부터 주도적으로 일하며 책임을 지는 연습을 하고, 이에 대한 대처 방식을 배우고 싶다.
가끔 '저는 주도적으로 일하는 것보다 지시를 받아서 일하는 것이 편해요'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람들은 책임에 대한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지시를 받는 것이 더 편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도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다들 주도적으로만 일하고 싶어 하면 따로 개인플레이만 하고 조직의 성과도 낮아질 것이다.
그리고 주도적으로 일한다는 건 내 멋대로 일한다는 게 아니다. 조직을 정확히 이해하고 조직의 목표와 목적에 도움이 되는 일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주도적으로 일을 수행해도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면 뻘짓을 한 것이다. 단순 뻘짓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뻘짓을 하느라 날린 기회비용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을 한 것이다. 따라서 주도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목표와 방향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글을 쓰고보니 마케터가 된게 아주 큰 행운이라고 느꼈다. 영업, 회계 등 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었다면 아마 나도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어하며 퇴근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