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 서비스는 매출 상승의 만능 열쇠가 아닌데요
최근 스타트업, 신사업에서 가장 핫 한 키워드 중 하나는 '구독 서비스'다. 생수, 커피, 면도기 등등 세상의 거의 모든 제품이 구독형 제품과 서비스로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영양제 구독 서비스도 생겼다. 심지어 카카오도 월 정액제로 이모티콘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어도비도 포토샵 등 자신의 소프트웨어 판매 방식을 구독 서비스로 바꿨고, 마이크로소프트도 엑셀, 워드 등을 구독 서비스로 판매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서브스크립션 열풍이니, 국내에서도 구독 서비스 열풍이 부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싶다.
이렇게 구독 서비스가 인기를 끌게 된 이유에는 아마 넷플릭스의 성공 때문인 것 같다. 넷플릭스는 매달 전세계 수천만 사용자들로부터 월마다 수익을 얻는다.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정말 너무 매력적인 수익 구조다. 매달 반복해서 수익이 들어오니까.
그래서 많은 스타트업과 기업들이 월 반복 매출(MRR)을 올릴 수 있는 구독 상품을 만들고 개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구독 서비스만 새로 만들면 매달 반복해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즉, 구독 서비스를 매출 상승을 위한 비장의 무기로 생각하고 있다.
근데 정말 그럴까? 구독 상품, 구독 서비스를 만들어서 출시하면 고객들이 저절로 매력을 느껴서 구독을 시작할까? 단순히 결제를 여러번 안해도 된다는 점에 이끌려서? 구독 서비스를 만드는 게 나쁘다는 얘기도 아니고, 구독 서비스를 만들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다. 단지, 구독 서비스를 만들기 전에, 진짜 우리 사업에 필요한 건지, 인풋 대비 확실한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생각하자는 얘기다.
최근 읽은 '일을 잘한다는 것'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어도비의 성공은 서브스크립션 덕분이 아니라 포토샵과 같은 강력한 소프트웨어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도비의 강점은 단지 제품 사용자 수가 많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다른 소프트웨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체 불가능한 수준의 제품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용자들이 ‘포토샵이 아니면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즉 어도비가 서브스크립션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브스크립션'이라는 사업 모델 덕분이 아니라, 양질의 제품과 다수의 충성 고객층을 이미 갖추고 있었던 덕분이지요.
즉, 어도비 구독 서비스가 성공한 핵심 이유는 구독 서비스 그 자체가 아니라 완성도 높은 제품이다. 어도비의 제품은 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객들은 매달 반복해서 결제를 하며 어도비의 소프트웨어를 구독하고 사용한다.
그래서 구독 서비스를 만들기 전에, '우리 제품이 고객들이 매달 반복해서 쓸 만큼 대체 불가능하고 완성도 높은 제품인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어도비, 마이크로소프트, 넷플릭스 모두 대체 불가능한 제품들이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구독 서비스를 안착시킬 수 있었다.
커피처럼 특정 타겟만 대상으로 하는 제품도 충분히 구독 서비스로 성공할 수 있다. 핵심 타겟들에게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면 된다.
제품의 완성도도 높고, 고객들에게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준다고 반드시 구독 서비스가 필요하거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운영하는 사업 모델과 고객들의 재구매율을 따져봐야 한다.
스타트업의 바이블 중 하나인 '린 분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1. 재구매율이 40% 이하로 예상되는 사업이라면 신규 고객 확보에 사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2. 재구매율이 40~60%라면 신규 고객과 기존 고객 둘 다를 바탕으로 회사가 성장한다.
3. 재구매율이 60% 이상이면 회사는 고객 충성도에 초점을 맞춰 충성도 높은 고객이 더 자주 구매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구독 서비스를 만들기 전 우리 회사의 재구매율이 얼마인지 먼저 파악하는 것이 좋다. 만약 재구매율이 40% 이하라면, 구독 서비스를 만들어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신규 고객 확보에 집중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위 내용은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중 전자상거래 스타트업에 해당하지만, 무형의 제품을 판매한다고 해도 구독 서비스를 고려하고 있다면 반드시 눈여겨 봐야 한다.
그리고 린 분석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사업이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CEO가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재구매율이 높은 제품을 판매 한다고 반드시 좋은 사업도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반드시 나쁜 사업도 아니다. 다만 사업이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모르는 것은 정말 나쁘다. 이를 정확히 모르면 잘못된 의사 결정을 내리기 십상이다.
제품이 완성도 높고, 고객들의 재구매율도 높아 구독 서비스 도입을 결정했다면 반드시 가격 정책에 온 힘을 들여야 한다. 린 분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가격 정책을 올바로 결정하면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음에도 스타트업은 대부분 실제 데이터를 살펴보지 않고 가격 정책을 마구잡이로 결정하고 있다."
고객이 매월 구매하는 특정 제품 한 개를 10,000원에 판매한다고 해보자. 이를 1년 구독 상품으로 만들 때, 12개월 x 10,000원으로 계산해 120,000을 책정하고 고객들에게 구독 상품 결제를 유도하기 위해 1년 짜리 구독 상품을 110,000만 원에 판매하는 식이다.
이처럼 가격 변동과 매출 사이의 연관성, 즉 가격 탄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가격을 책정한다. 다른 할 일도 많은으니까, 이런 식으로 가격을 책정하면 편하다. 그리고 1년 구독 서비스가 더 저렴하니까, 언뜻 보기에도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격이 고객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쉬운 설문조사 하나도 실시하지 않는다. 스타트업의 제품은 가격 설정이 전부라고 할 정도로, 많은 경영 서적에서 가격 설정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디테일하게 가격 설정을 하는 곳은 거의 없다.
엄청난 팬덤을 확보한 애플도 제품마다 디테일하게 가격을 설정하는데, 매출이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스타트업에서 가격 설정을 대충 한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다.
구독 서비스는 매출 확보와 사업 성장의 만능 열쇠가 아니다. 제품을 판매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구독 서비스가 트렌드라서 구독 서비스를 시도하면, 이 트렌드가 지나면 다시 구독 서비스를 없앨 건지도 궁금하다.
구독 서비스를 도입하냐 마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완성도를 높여, 고객들에게 대체 불가능한 제품과 가치를 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