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져 찾아내기
몇 달 전 함께 일하는 기획자가 기존에 취급하지 않았던 새로운 프로덕트를 만들었다. 마케터인 나는 그에 맞는 새로운 페이스북 광고를 제작해 최대한 고객들의 관심을 끌고 구매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그러나 기존에 취급하지 않았던 프로덕트였기 때문에, 어떤 포인트로 광고를 만들어야 고객들에게 소구 할 수 있을지 불분명했다. 이때 기획자와 마케터인 나 사이에 의견 대립이 생겼다.
기획자는 일단 브레인스토밍으로 광고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서, 전부 광고 효과를 확인해보자고 주장했다. 어떤 광고가 성공하고 실패할지 모르니 일단 전부 광고를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프로덕트를 기획하면서 이미 10개 정도 만들어 놓은 광고들이 있다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첫 번째로 기획자의 주장에 대한 불만과 화가 올라왔다. 하지만 꾹 참고 내 주장을 말했다.
나는 소구 포인트를 정말 명확하게 보여주는 광고 3, 4개 정도만 실제로 광고를 돌리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왜냐면 많은 광고를 전부 만들어서 돌린다면, 결과를 봤을 때 어떤 소구 포인트가 효과적인지 분석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광고의 성공 및 실패 요인 역시 분석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나는 페이스북 광고 캠페인 하나에 광고가 많이 들어갈수록, 광고 1개당 투입되는 비용이 낮아져 광고 효과가 떨어질뿐더러, 효과가 나오더라도 이를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시에는 프로덕트 별로 페이스북 캠페인을 운영했기 때문에 보통 프로덕트 1개 당 페이스북 광고 캠페인 1개를 운영했다.)
내가 이 말을 하자. 기획자가 광고가 많아질수록 광고 효과가 떨어진다는 데이터가 있냐고 보여달라고 했다. 이때 두 번째로 내면에서 화가 다시 한번 올라왔다.
이때 한 캠페인 안의 광고 개수가 많아질수록, 광고 1개당 효과가 떨어질 거라는 가설만 있고, 이에 대한 실증적인 데이터는 없는 상태였다. 왜냐면 나는 페이스북 광고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내가 맡기 전까지 이에 대한 실험과 데이터가 없는 상태였었다.
그 당시 기획자와 나는 이번만 기획자가 주장하는 방식대로 진행하고, 다음부터는 광고를 만들기 전 내게 먼저 말해야 한다는 합의를 보고 그렇게 논쟁을 마쳤다.
그 날부터 며칠 동안 기획자의 주장에 대해 왜 화가 나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첫 번째로 기획자가 데이터에 대한 요구를 했을 때 왜 화가 났는지를 곰곰이 생각했고 결론을 찾아냈다. 평소에 기획자는 데이터를 요구한 적이 없었는데, 내 주장에 대한 공격을 위해 데이터를 들먹였다고 생각해서 화가 난 것이었다. (심지어 똑같이 데이터를 자기 필요할 때만 무기로 쓰는 경우에 대해 화가 난 경험을 전에 기획자에게 토로한 적이 있었는데도!)
여기서 또 왜 데이터를 요구한 것에 대해 화가 났는지 또 한 번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생각해냈다. 평소에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나 토론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데이터로 공격하니 이는 정말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터 기반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조직 내 한두 명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 건데, 그 책임을 나에게 모두 떠넘겨 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또한 이 생각까지 도달하며 나는 '데이터는 무기가 맞다. 다만 그 무기의 방향이 함께 일하는 구성원의 의견을 꺾기 위해 쓴다면 무기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식칼로 요리를 해야지 누군가를 해치면 안 되는 것처럼.'이라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로, 기획자가 광고 여러 개 일단 만들어 놨으니까 전부 실행하는 주장에 대해 화가 난 것을 생각했다. 이때 기획자가 정말 열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출 증대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아 적극적으로 내게 제시한 것이니까.
다만, 일단 만들어 놨으니까 전부 실행해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고객의 반응과 아웃풋의 퀄리티를 중시하는 나의 관점에서 납득이 되지 않은 것이었다. 만들었으니까 실행해야 한다는 것은 철저하게 자신의 노력, 즉 인풋을 중시하는 관점에서의 발언이었으니까.
퀄리티가 정말 좋지 않아도 내 인풋이 많이 들어갔으니까, 고객들에게 낮은 퀄리티의 프로덕트 혹은 광고를 내보내도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있을 때 나는 무조건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내 관점에 기반했을 때 기획자의 주장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만약 기획자가 10개의 광고를 만든 후에 고객의 페인 포인트와 각 광고의 소구점, 예상 고객 반응 등 아웃풋 관점에서 주장했다면 아마 나는 기획자의 열정과 실력에 대해 감탄했을 것이다. (해당 기획자는 정말 실력이 많은 사람이다. 정말이다, 내가 장담한다. 다만 실력이 있는 것과 이를 또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 또 왜 기획자의 대안에 반대를 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 둘 다 분명히 매출 증대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고 서로 논쟁을 벌이게 됐을까를 계속 반복해서 생각했다.
그러다가 머릿속에서 하나의 가설이 떠올랐다. 서로 다른 직무에서 서로 다른 것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자는 매출만 따지면 되는 입장이었다. 광고 비용, ROAS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예를 들면 광고비 10만 원을 들여 매출 100만 원을 내는 것보다, 광고비 300만 원을 들여 매출 290만 원을 내는 걸 더 우선시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래서 광고 개수를 늘릴수록 더 많은 매출을 만들 수 있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나는 광고 비용과 ROAS까지 전부 신경 써야 했다. 매일 아침 광고 지출 비용과 매출 및 ROAS를 확인하는 게 내 주요 업무였고, 마케팅 결과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결국 내 몫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매출은 높고, 지출은 최대한 적은 최적의 선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고객들의 페인 포인트와 소구점을 정확히 짚어낸 광고 3, 4개를 운영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계속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말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나의 행동과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찾아낸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나니, 답답하고 무겁던 머리가 갑자기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내용으로 기획자와 대화를 하려 했지만, 조직 내 사정상 이에 대해 기획자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여기까지 했다면 해당 의견 대립에 대한 최선의 마무리가 지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을 거치며 정말 중요한 것을 배웠다. 만약 기분이 나쁘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거나,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낄 때, 그냥 "기분이 나빠", "짜증 나"에서 생각을 멈춘다면 스스로가 힘들어질 뿐 아니라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고민거리에 대해 계속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만의 명확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는 않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고민거리를 되뇌는 과정에서 더욱 짜증이 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과정이 힘들다고 포기해버리면 매번 고민이 생기고 짜증 날 때마다,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임시방편으로 고민을 잠깐 덮어버리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계속 똑같은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스스로를 힘들게 할 수밖에 없다.
반면 스스로의 고민에 대해 명확한 답을 끝끝내 치열하게 찾아낸다면, 엉킨 실타래가 마법처럼 갑자기 풀리는 듯한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기분이다.
나도 이렇게 깊게 고민해서 명쾌한 답을 찾아낸 것이 처음이었다. 이 경험은 이렇게 강렬하게 뇌리에 남았고, 나는 앞으로도 치열하게 명쾌한 답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참고로 기획자는 정말 일도 잘하고, 사람도 정말 착한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기획자와의 논쟁을 다시 생각하며, 정말 서로 열심히 일했다는 생각을 했다. 기획자와의 논쟁은 서로를 깎아내리고 파멸시키는 싸움이 아니라, 공통의 목표를 향해 서로의 열정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논쟁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