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웬만해서는 한 아침에 두 법원을 오가야 하는 경우를 만들지 않는다. 사실 그만큼 일정을 빡빡하게 짤 만큼 바쁘지도 않고, 마음 졸이면서 차로 이동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오전에 한 곳, 오후에 다른 곳 가는 경우나 한 법원에서 여러 개의 사건을 처리하는 경우는 가끔 있었지만, 아침 내에 다른 법원에서 심리나 재판을 하는 것은 거의 무조건적으로 피하는 편이다.
그런데 며칠 전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일인 즉, 1년 전에 선고유예(deferred disposition)가 내려진 사건이 있었다. 의뢰인이 일정한 조건만 충족시키면 나나 의뢰인의 법원 출석 없이 사건이 자동 종결되는 경우라서, 사실상 선고유예가 내려지는 순간 내 입장에서 관심은 멀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용계약서 상으로도 내가 선고유예 종결 심리에 참석할 의무는 없는데, 그냥 서비스한다 생각해고 꼬박꼬박 참석하고는 있다)
대개는 이러한 선고유예 종결 심리를 구글 캘린더에 미리 적어놓는 편인데, 왠지 모르게 이 사건은 표시하는 것을 1년 전에 까먹고 잊고 있다가, 심리가 있다는 것을 불과 며칠 앞두고 알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날 아침에 다른 교통 법원에 재판이 잡혀 있었던 것. 그나마 다행인 건, 선고유예 종결 심리는 오전 9시, 교통 법원 재판은 오전 10시라는 것과, 두 법원 간 거리는 차가 막히지 않으면 30분 내에 갈 수 있는 거리라는 점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전날 교통 법원에 사정을 설명하고, 혹시 늦어질 경우를 대비해서 사건 기록 위에 "Counsel may be a little late as he will be coming from another jurisdiciton" (or something to that effect)라고 노트를 남겨달라고 했다. 더불어 의뢰인한테도 미리 언질을 해뒀다.
선고유예 종결 심리는 9시에 시작이지만 거의 8시쯤 도착해서 최대한 빨리 끝낼 수 있도록, probation officer 하고 prosecutor한테 사정을 설명했다. 다행히 그날 docket에 사건이 많지 않아서, 비교적 일찍 심리를 마칠 수 있었다. 부랴부랴 두 번째 법원으로 운전해서 도착하니 9시 55분. 다행히 의뢰인도 내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법원에 도착했다.
헐레벌떡 법정에 들어서니 다행히 판사가 bench에 없고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 사이 담당 경찰관과 검사하고 논의를 거친 결과, 추가 증거를 받을 게 있어서 재판을 속행(continue)하기로 했다. 마침내 판사가 자리에 돌아왔고, 속행 요청을 하는 것으로 교통 재판 사건도 일단은 마무리가 됐다.
그런데 마지막에 속행을 허가한 뒤에 판사가 "counsel, approach the bench"라고 하는 것이었다. 또 뭘 잘못했나 싶어서 법대에 가까이 가보니, 내가 전날 법원에 전화해서 기록에 올려진 note를 언급하면서 혹시 어디에서 사건을 마치고 오는 것이냐고 물으시길래,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That's not gonna work in the future... blah blah..." 하며 "다른 판사 같으면 재판 진행에 지장을 준다고 불쾌해 할 수 있으니,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라는 식의 쓴소리를 하셨다. 뭐 사실 늦은 것도 아니고, 혹시나 해서 늦을까 봐 노트를 남겨 놓은 것인데 판사 입장에서는 변호사들이 이를 남용할까 봐 걱정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Understood, your honor. This is my first time and I will avoid it at all costs"라고 하니 "Very well" 하며 넘어갔다.
내가 알기론 그 판사도 예전에 solo practitioner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혼자 모든 걸 해야만 하는 단독 개업 변호사의 어려움을 조금이나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무리려나? 하는 약간은 아쉬운 생각과 앞으로 일정관리에 더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하루도 별탈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는 안도감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