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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Oct 24. 2020

형사와 민사의 차이에 관하여

Criminal practice is civil.

이번 주는 하루만 빼고 매일 법원에 출석하느라 바쁘게 지나갔다. 오늘(금요일) 오전에도 보석 심리(bond motion)와 재판이 있어서 아침 8시부터 페어팩스 카운티 법원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무사히 보석 심리를 마치고, 재판을 기다리는 중에 친한 변호사를 만나서 잡담을 하던 중에 '형사 사건과 민사 사건의 차이'에 대해서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마침 무슨 사건 때문에 법원에 왔냐는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혹시 형사 사건 외에 민사나 가사 사건은 맡지 않아?"라고 물어보니 자기는 형사만 한다고 했다. 그 이유인 즉, 자신의 배우자가 가사(즉, 이혼, 양육권 분쟁 등) 사건을 주로 하는 변호사인데, 그 얘기를 들어보니 자기는 도저히 할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나도 가사 사건은 합의 이혼밖에 해보지 않았지만, 이혼 사건이나 가사 분쟁의 경우 이미 그 악명(?)을 들어서 알고 있는데, 이번에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볼 기회가 있었다. 내 경우 개인적으로 형사 사건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형사 변호사들 사이의 관계가 매우 원만하고, 프로페셔널한 수준에서 유지된다는 것"이다. 영어로는 이를 "civil"하다고 한다. (Ironically, criminal practice is "civil.") 


왜냐면 형사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변호사(소위 criminal defense attorney)들은 전체 변호사들 중에서 일부에 해당되고 그 안에서도 자주 접하는 상대방 변호사들은 전부 검사(버지니아에서는 assistant commonwealth attorney라고 한다)이기 때문에, 서로가 매우 밀접한 상호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당장은 내가 상대방에게 뭔가 아쉬운 부탁을 하게 되더라도, 나중에는 상대방이 오히려 나에게 부탁을 해올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반드시 변호인과 검사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는 검사가 변호인의 편의를 봐주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은 검사도 변호인에게 양해를 구해야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변호사든 검사든 소위 "또라이"으로 찍히거나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면 분명 그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마련이고, 그러면 알게 모르게 형사 변호사 협회(criminal defense bar)나 검사실(commonwealth attorney's office)의 응징(?)을 받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정작용이라고나 할까?


반면에 민사 사건의 경우,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사건의 당사자나 상대방 변호사를 다시 볼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굳이 상대방에게 예의를 차리거나 원만한 관계를 맺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즉, 어차피 안 볼 사이니까 막 나가도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특히 가사 사건의 경우에는 양 당사자가 매우 감정적으로 격해 있는 상황이고,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시간당 보수를 지급하기 때문에 의뢰인의 간섭과 참견이 매우 심한 편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의뢰인과 변호사의 관계에서도 형사/민사의 차이가 생긴다. 형사의 경우, 의뢰인의 헌법적 권한에 따라 중요한 결정(유죄 인정 vs. 공판 진행, 배심원 재판 vs. 판사 재판, 의뢰인의 법정 진술권 등)은 모두 의뢰인이 최종적으로 내리지만, 대부분의 의뢰인은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사건 진행에 관한 변호인의 실질적 권한이 매우 큰 편이다. 그리고, 형사 사건은 대부분 확정 보수(즉, Flat Fee)이기 때문에, 쓸데없이 사건을 질질 끌거나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러나 민사의 경우, 일단 대부분의 분쟁은 "돈"에 관한 것이고 거기에는 상당수 상대방에 대한 "악감정"이 개입되기 때문에 의뢰인과 변호사의 관계가 다른 양상을 띌 수밖에 없다. 덧붙여 위에서 언급했듯이, 변호사는 시간당 보수를 받기 때문에, 의뢰인이 사건 진행과 관련 없는 추가 서면이나 답변서를 제출을 요청하거나 사건을 길게 끌더라도 변호사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 그러면 당연히 간단하게 해결될 사안도 복잡해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고, 의뢰인 입장에서는 그만큼 큰돈을 지불하기 때문에 변호사가 자신의 "충실한 하인"이 되기를 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사실상 민사 분쟁사건의 거의 맡지 않고 있다. 사실 젊은 변호사로서 비교적 다양한 사건을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긴 한데, 굳이 돈에 얽매여 원하지 않는 사건을 받고 싶지도 않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주 메뉴는 최대 3개까지"라는 백종원 대표의 조언에 충실한 자영업자이다. 그의 조언은 요식업뿐만 아니라, 개업 변호사에게도 적용되는 것이 많다) 물론 언젠가는 민사 사건을 맡게 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정말로 변호사가 필요한, 그리고 나름 사명감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건을 무료로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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