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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Nov 04. 2020

검사 없는 형사재판의 모습

"사선 검사"의 출현?

최근 페어팩스(Fairfax, VA)와 알링턴(Arlington, VA) 형사 법정에서 볼 수 있는 광경 중에 하나는 검사가 관여하지 않는 형사 재판이다. (정확히는 "공판"이라고 해야 하는 것 같지만 편의상 재판으로 지칭함) 검사 없는 형사 재판이라면 얼핏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정확히는 검사의 역할을 경찰관이나 피해자가 대신한다는 의미이다. (이전 관련 글)


이는 얼마 전부터 페어팩스와 알링턴 검사실에서 중범죄나 일부 경범죄를 제외하고는 검사가 사건에 직접 관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놨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아무리 사소한 교통법규 위반이라도,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에는 검사가 관여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변호사가 있건 없건 대다수의 경범죄 사건에는 검사가 아예 법정에 출석하지 않고, 법정에 있더라도 해당 사건에 관여하지 않게 됐다.


덕분에 검사의 역할을 이제는 경찰관이 대신하게 되었다. 대부분 피고인의 체포와 기소,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이 직접 법정에서 사실 관계에 대한 증언을 하면서 동시에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역할(공소유지)을 동시에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후자의 역할을 검사가 담당하고 경찰관은 순전히 증인의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심지어 경찰관 조차 관여하지 않는 형사 사건도 있다. 바로 일반인 고소(criminal complaint)로 시작되는 폭행 사건인데, 이 경우에는 피해자가 직접 고소장을 접수하고 치안판사가 이를 허용함으로써 기소가 이루어진다. 당연히 이에 대한 경찰관의 조사나 관여는 전혀 없다. 단순히 공판 날짜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법원에 출석해서, 민사 사건 하듯이 피해자가 증인 및 범죄 입증을 위한 주장을 펼치게 된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피고인이 최초 법원 출석 시(advisement라고 한다) 판사는 변호인 선임 여부 및 국선 변호인 지정가능 여부를 묻게 되는데 만약 변호인을 선임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경우 국선 변호인의 지정 여부는 피해자의 답변에 달려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국선 변호인은 징역형(집행유예도 포함)의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만 지정되는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징역형을 추구할 것인지 묻기 때문이다. 즉, 판사가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어떤 처벌을 받길 원하는가? 벌금형 or 징역형?"라고 질문했을 때 "징역형"이라고 답변을 해야만 피해자에게 국선 변호인 지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법률가가 아닌 경찰관이나 일반인은 법정에서 유죄 입증을 하기가 쉽지 않다. 검사가 아니라고 해서 법적 기준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도 법률상 가장 높은 입증 기준인 "beyond reasonable doubt"을 넘어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다, 모든 형법의 입증에는 법원의 관할권/재판지( jursidiction/venue)도 입증해야 하고, 가해자의 신분확인(identification)도 입증해야 한다. 예를 들면, 페어팩스 법원은 페어팩스 카운티 내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만 관할권이 있기 때문에, 서면이나 증인의 증언을 통해서 해당 사건/범죄행위가 페어팩스 카운티 내에서 일어났다는 사실관계를 입증하지 못하면 무죄가 날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technicality defense가 이런 부분에서 나온다)


증거법의 적용도 엄격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문증거(hearsay) 배제 원칙이다. 원칙적으로 법정 밖에서 제삼자가 얘기한 내용을 되풀이하지 못하게 하는 개념이다. 물론 모든 원칙이 그러하듯이 예외 원칙이 있고, 이를 피해 갈 수 있는 방법도 있는데 이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법조인인 아니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영역이다. 일반인들이 또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증거의 토대(foundation)를 성립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증거로 제출하려고 할 경우, 해당 사진이 당시 상황을 진실되고 정확하게(true and accurate) 묘사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미리 증언으로 밝혀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해지는 것이 판사의 역할이다. 원칙상 판사는 중립적인 위치에서 당사자주의(adversarial)에 따라 당사자의 주장에만 귀를 기울여 이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역할이 되어야 하는데, 종종 이를 넘어서 원활한 재판 진행을 위하여 적극주의(inquisitorial)의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경찰관의 증언에서 위에서 언급한 관할권이나 신분확인에 대한 요소가 없는 경우 "해당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어디인가?" 혹은 "증인은 피고인을 얼굴을 알아보았는가?"같은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한쪽 당사자의 사실 관계 입증을 도와준다는 점에서 엄연히 판사의 역할을 벗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 법조인 특히 경찰관이 아닌 일반인이 변호인이 있는 피고인을 상대로 유죄 입증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왠지 앞으로는 형사 사건에서 피고인만을 대리하지 않고, 고소인을 대리하여 검사 대신 공소를 유지하는 변호인의 수요도 어느 정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제가 폭행을 당했는데, 주 검사는 폭행사건에 관여를 하지 않는데요. 그래서 검사 대신 유죄 입증을 해주실/도와주실 변호인을 찾고 있어요"라는 의뢰인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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