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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Nov 12. 2020

휴대폰 비밀번호 공개법?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피의자가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고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 처벌할 수 있는 법률 제정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관련 기사)


아침에 눈을 뜨고 잠결에 휴대폰으로 이 소식을 읽었을 때, 나는 꿈을 꾸는 줄만 알았는데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잠을 확 깼다. 보통 아침 재판이 있는 날은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켜거나 블로깅을 하지 않는데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글을 쓰게 됐다.


위의 신문 기사에 따르면,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법무부는 이날 추미애 장관이 "외국 입법례를 참조해 채널A 사건 피의자인 한동훈 연구위원처럼 피의자가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고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 법원의 명령 등 일정 요건 아래 그 이행을 강제하고 불이행 시 제재하는 법률 제정을 검토하라"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이 만약 비법조인으로부터 나온 발언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는데 문제는 이 발언이 판사 출신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에서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세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첫째, 이는 헌법상에 명시된 "불리한 진술(혹은 자백)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무시하는 처사이다. 미국에서는 Right Against Self-Incrimination이라고 해서 피고인이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이나 증거를 사법기관으로부터 강요받지 않을 권리이다. 휴대폰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만큼, 위치추적이나 이메일, 통화 기록 등을 통해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려준다는 것은 자백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도 법원이 피고인의 지문을 강제로 채취해서, 휴대폰 잠금을 해제하도록 하는 선례는 있어도 비밀번호를 "공유"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다분하다. 이에 대해 논객 진중권은 "차라리 고문을 합법화해라"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심히 공감한다.


둘째, 이는 "소급입법 금지의 원칙"의 원칙에도 위반된다. 물론 추 장관의 지시가 한동훈 연구위원의 처벌을 의도하고 내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황상 그러한 의도가 다분하다고 볼 수 있다. 소급입법 금지는 영어로 Rule Against Retroactivity인데, 형사법의 경우 특히 어떠한 행위가 발생한 시점에서 그 행위를 불법으로 처벌할 법이 없는 상태에서, 추후에 과거 행위를 범죄로 금지하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서 이를 처벌하려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막고 있다. 만약 추 장관이 한 연구위원을 뒤늦게나마 처벌하기 위해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이라면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삼권분립"을 망각한 채, 법무부가 입법 기관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의 분산(Separation of Power)이 건전한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라는 것은 중고등학생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입법부는 국민을 대표하여 법을 만들고, 사법부는 이를 해석·판단하며, 행정부는 입법부가 만들어낸 법을 효율·효과적으로 집행하면 되는 것이다. 법을 집행해야 하는 법무부 장관이 "법률 제정을 검토하라"라는 것은 행정부의 역할을 망각한 채,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려는 위험한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삼권분립이 매우 느슨한 한국의 정치구조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지만, 전직 판사이면서 국회의원이 추 장관이 이를 절대 모를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시를 내렸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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