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Nov 27. 2020

미국 검사의 의무: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공유할 것

검사의 목표는 승소가 아니라 정의의 실현이다.

미국의 당사자주의 재판은 치열한 법정 공방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구조이다. 그만큼 상대가 가진 증거를 최대한 파악하고, 내가 가진 증거는 가급적 밝히지 않으려는 증거 개시 과정에서의 눈치싸움이 치열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형사 사건의 경우 검사에게 독특한 의무를 부과하는데, 바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자발적으로 공유할 것"을 골자로 하는 Brady 공개 의무(Brady disclosure)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Brady v. Maryland)


어떻게 보면 검사 입장에서 매우 불리한 의무이지만, 그 실상을 알아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왜냐면 검사의 의무는 유죄를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검사의 기본 업무가 공소를 유지하고 피고인의 유죄를 얻어내는 것이긴 하지만, 조사 과정이나 재판 진행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피고인의 무죄가 뒷받침되는 정황이 있으면 이를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의 무제한의 정보와 자원을 가진 정부는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의 무죄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입수하게 될 가능성도 있는데, 이를 은폐한 채로 재판을 진행하면 재판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논리이다. 최근 이러한 예시를 잘 보여주는 판결이 나왔다.


곤잘레스는 1급 살인죄와 불법 총기 사용죄로 기소되었다. 공소장의 내용을 보면 2019년 11월 피고인이 피해자를 총으로 쏴 살해했다고 되어 있으며, 현장에서 칼 한 자루가 발견되었다. 당시 경찰은 해당 칼에 대한 DNA나 지문 검사를 실시하지 않았으며, 2020년 1월 변호인 측에 전달된 증거개시 자료에는 "칼 한 자루가 발견되었다"정도의 수사 보고서 상의 언급만 있었다. 그러나 2020년 8월, 사전 심리를 불과 며칠 남겨둔 시점에 전달된 추가 증거개시 자료에는 "당시에 사건 현장을 목격한 증인이 있었으며, 해당 증인의 말에 따르면 사망한 피해자가 사건 발생 직전에 칼을 들고 있었고, 가해자는 이를 보고 '나에게 총이 있으니 더 가까이 오지 말라'라는 발언을 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해당 증인에 관한 정보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전부였다.


이후, 변호인 측과 경찰, 검사가 모두 해당 증인을 수소문했지만, 결국 그 증인을 찾을 수 없었고, 변호인 측은 검사가 해당 증거를 일부러 은폐 및 지연함으로써 검사의 Brady 공개 의무를 위반했다며 재판부에 공소장 기각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판사는 "사회가 승리하는 때는 범죄자에게 유죄가 확정될 때뿐만 아니라, 형사 재판이 공평하게 이루어지는 때"라는 말을 인용하며, 해당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서 검경의 Brady 위반을 꾸짖었다. 구체적으로, 수사를 담당한 형사는 1차적으로 해당 증인의 존재를 나중에서야 추가 수사보고서에 짤막하게 언급하는 대신 검사에게 직접적으로 알리지 않은 잘못이 있고, 검사는 이에 대해 해당 증인의 신변을 확보하거나 발견된 칼의 DNA/지문 검사 등을 요청하지 않음으로써, 불리한 증거를 고의적으로 무시한 채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었다." 결국 피고인 측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인/증언 확보의 기회를 영원히 놓친 것이다. 판결문에 나온 판사의 비판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엉터리 재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의와 공정함에 대해서는 윙크와 끄덕임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최소한 우리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옳은 결과가 정의로운 결과라면, 유무죄 여부를 떠나서, 검사의 의무를 단순히 불편하지만 필요한 의무(inconvenient but necessary)로 여기는 대신, 이를 반드시 신성한(hallowed) 것으로 여기는 절차를 통해야만 합니다."


대신, 판사는 변호인의 요청대로 공소장을 기각시켜 사건을 바로 종결시키는 대신, 배심원에게 다음과 같은 설시문을 제공함으로써, 유리한 핵심 증인을 놓친 피고인 측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이 사건의 공판 전 단계에서 검사 측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신속하게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는데, 검사는 2019년 11월에, 수사관을 통해 피해자가 사망 직전 칼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나에겐 총이 있으니 가까이 오지 마시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증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어떠한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으며, 해당 증인의 거주지, 직장, 이메일이나, 비상연락처를 묻지도 않았습니다.

피고인 측이 2020년 8월이 되어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됐는데, 이는 99쪽에 달하는 서류의 97쪽에 몇 줄로만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검사 측은 2020년 10월에서야 피고인에게 해당 증인의 생년월일과 전화번호를 제공하였습니다. 해당 전화번호는 결번이었고, 증인의 신변은 양측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행방불명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피해자의 시신 근처에서 발견된 칼은 2020년 10월이 되어서야 정밀 감식을 위해 보내졌습니다.

배심원은 만약 이러한 증언 내용이 피고인 측에게 신속하게 전달되었다면, 피고인이 정당방위를 주장하는데 유리한 증거로 작용했을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무죄판결 및 공소장 기각이라는 결과를 이끌어 냈을 수도 있었다고 추정해야 합니다."


검사의 입장에서는 매우 껄끄러운 배심원 설시문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배심원이라고 해도 이러한 판사의 설시문이 제공된다면, 증거가 웬만해선 유죄 평결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판결문은 형사 변호인 사회에서 크게 환영받고 있는데, 그동안 검사들이 Brady 의무를 알게 모르게 위반하더라도 이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고(말해 주지 않는 정보의 존재를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 드물게 이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해 '고의가 없었다'라는 검사의 변명을 믿어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판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문을 통해, 앞으로 더욱더 피고인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늘어났으면 한다.


판결문 원본 링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