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Dec 07. 2020

미국 시민권 취득 후기 (1) - 변호사의 관점에서

길고 길었던 여정의 끝. 새로운 시작.

새로운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귀화한다"라고 한다. 영어로는 naturalize. "자연스러운"이라는 뜻의 형용사인 "natural"에 동사형 접미사인 "-ize"가 붙어서 파생된 단어이다. 어원에 따라 직역을 하면 "자연스럽게 만들다"라고 볼 수 있다. 뒤집어 보면 한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의 시민이 아닌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unnatural)이라는 뉘앙스가 있다. 맞는 말이다. 자기가 사는 나라에서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하며, 언제라도 추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2020년 12월 3일, 나는 미국 시민으로 귀화했다. 영어 어원을 따라 직역하면 자연화(自然化)된 것이다. 그동안은 8년이 넘는 기간을 소위 이방인으로 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이 곳이 내 나라인 셈이다. 선거권은 물론이고, 공직 출마 시 피선거권, 주민투표 및 배심원 참여권 등도 보장된다.


나는 미국 로스쿨에서 법을 공부했고 형사 피고인들을 대리하기 위하여 매일 같이 법원에 출근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미국 헌법과 시민권의 중요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형사 사건은 결국 국가의 공권력과 개인의 자유가 충돌하는 최전선에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자동차로 비유하고 헌법을 도로로 비유하자면, 타이어와 도로의 표면이 접촉하는 그 첨단의 접점이 바로 형사 사건이다.


나의 일상 업무는 바로 이러한 헌법적 권리의 향연이다. 매일 검사 혹은 수사관/경찰관과 체포 및 증거수집의 정당성을 논하는데, 이는 미국 수정헌법 4조에 명시된 "불합리한 수색 및 압류를 받지 않을 권리"에 근거한 것이며, 국선 변호인으로 지정되는 경우에는 수정헌법 6조에 명시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근거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검사들은 지역 시민들이 주민투표를 통해 선출된 검사장이 임명한 검사들이며,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는 지역 변호사 협회의 추천(투표)을 받아 주 의회(주민들의 대표)가 재청하여 임명된 판사들이다. 게다가 재판에서는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피고인의 유무죄를 평결한다.


즉, 형사 사건의 절차 곳곳에서는 경찰과 피의자가 만나는 순간부터 유죄가 내려지고 형이 선고되는 그 순간까지 직간접적으로 헌법의 손길과 지역 주민의 참여가 곳곳에 녹여져 있다. 물론 대다수의 주민들은 실제로 이러한 형사 사건의 현장을 느껴볼 일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운전하다가 과속위반으로 티켓을 받은 경우가 그나마 이에 가장 근접한 경험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민권 선서 시에 "미국의 헌법을 수호하겠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나는 이미 예전에 변호사 선서 시에도 동일한 내용에 대해 서약했었고, 미국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일 변호사로서 미국의 헌법을 수호하는 일을 해온 셈이다)


게다가, 형사 사건에 연루된 외국인(서류 미비자, 방문객, 영주권자 등)들에게는 언제나 추방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범죄 기록은 중대한 추방 사유 중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사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이민법상 추방의 위험에 대하여 조언하지 않는 것은 수정헌법 6조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위반한 것이라는 연방대법원 판례도 있다. Padilla v. Kentucky, 559 U.S. 356 (2010).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을 변호하는 경우 실형을 살더라도 추방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감옥이야 며칠 혹은 몇 개월 살다 나오면 되지만, 추방은 미국에 생활기반과 가족이 있는 이민자들에겐 사실상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야 사실상 형사 사건에 변호인이 아닌 일로 연루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미국의 헌법과 법률에 깊이 몸담고 있는 변호사로서 "시민"의 힘을 알기 때문에, 이 곳에서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귀화를 결정하게 됐다. 작년 11월에 시민권 신청을 접수해서 1년이 넘은 우여곡절 끝에 마스크를 쓰고 선서를 하게 되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값진 경험이었다. 앞으로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 많은 이민자들이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와줄 계획이다. 다음 편에는 내 시민권 취득의 절차적인 경험을 다룰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내 가슴에 와 닿은 인용구로 이번 포스팅을 마치겠다.


미국은 인간의 영혼에 있는 무언가 보편적인 것을 의미한다. 내가 최근에 어떤 남자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 내용인 즉, '당신이 일본에 가서 살 순 있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일본인이 될 순 없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프랑스에 가서 살 수도 있지만, 프랑스인이 될 순 없다. 독일이나 터키에 가서 살더라도, 당신이 독일인이나 터키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세계의 곳곳에서 온 누구나 미국에 와서 살면 미국인이 될 수 있다.'
-로널드 레이건


(원문)

"America represents something universal in the human spirit. I received a letter not long ago from a man who said, 'You can go to Japan to live, but you cannot become Japanese. You can go to France to live and not become a Frenchman. You can go to live in Germany or Turkey, and you won't become a German or a Turk.' But then he added, 'Anybody from any corner of the world can come to America to live and become an American.'" -Ronald Reagan


시민권 선서 직후 법원 앞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