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Dec 10. 2020

미국의 판사 평가제도

변호사들에 의한, 대중을 위한 정보

일 년에 두 번 변호사 협회에서 정기적으로 받는 이메일이 있는데, 이는 법관 설문지에 대한 답변을 해달라는 내용이다. 보통 최근 3년 이내에 법원에 출석한 적이 있는 모든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설문을 시행할 때마다 평가받는 법관이 다르다. 이는 법관의 임용 시기라든지 재임용 시기와 관련 있다.


설문 참여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각 설문 기간마다 평가 대상 법관들의 리스트를 받게 되는데, 이 중에서 내가 실제로 재판이나 심리에 참여한 적이 있어서 평가할 수 있는 법관을 선택하면 개별적인 설문 내용을 따로 받는다. 설문지 내용은 23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질문에 따라 "항상 그렇다"부터 "항상 그렇지 않다"까지 총 5개의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질문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이 판사는 법정에서 인내심을 보인다.

2. 이 판사는 법정에서 정중함/예의를 보인다.

3. 이 판사는 법관의 의무를 양심적으로 수행한다.

4. 이 판사는 법관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한다.

5. 이 판사는 재판 참석자 모두에게 예의를 지킨다.

6. 이 판사는 재판 참석자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도록 한다.

7. 이 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주의를 기울이다.

8. 이 판사는 모든 당사자에게 공평함을 보인다.

9. 이 판사는 모든 당사자를 동등하게 대한다.

10. 이 판사는 불필요 한쪽 당사자 소통(ex parte communication)을 하지 않는다.

11. 이 판사는 법정의 질서를 유지한다.

12. 이 판사는 모든 참석자에게 프로다운 행동을 기대한다.

13. 이 판사는 변호인들이 변론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적절한 유연성을 허용한다.

14. 이 판사는 법 지식을 갖추고 있다.

15. 이 판사는 법에 충실한다. 

16. 이 판사는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한다. 

17. 이 판사는 판결을 신속하게 내린다.

18. 이 판사의 판결은 명확하다.

19. 이 판사는 편견이나 편향성 없이 판결한다.

20. 이 판사는 재판을 제시간에 시작한다.

21. 이 판사는 법정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22. 이 판사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최고", "괜찮음", "개선 필요", "불만족" 중 택 1)

23. 이 판사에 대한 평가는 3년 전에 비해서 ("더 나아짐", "더 나빠짐", "그대로" 중 택 1)


참고로 이 설문은 버지니아 주립대학(Virginia Commonwealth University)에서 버지니아 주 대법원(Supreme Court of Virginia)의 의뢰를 받아서 시행 및 결과 수집이 이루어진다. 위에서 언급된 각 변호사들의 설문지 답변 외에도 해당 대학에서는 각 판사들의 형사 사건에서의 형량 선고 통계도 조사하는데, 여기에서의 주된 목적은 형량 선고 가이드라인에서 제시된 형량과 실제 해당 판사가 부과한 형량이 차이가 있는 사건의 숫자와, 그중에서 해당 차이를 설명한 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의 수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 결과는 의회에게 직접 보고되는데, 당연히 대중에게도 공개된다.

이 결과에 따라 평가가 좋지 않은 판사는 의회로 불려 가 자신의 결과에 대해서 해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버지니아의 경우 판사는 6년~12년마다 의회에서 재임용되는데, 만약 위와 같이 부정적인 평가를 계속 받는다면 향후 재임용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판사들은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버지니아는 판사가 주민 선거로 선출되지 않는 몇 안 되는 곳이지만, 대다수의 주에서는 판사가 주민투표로 선발되기 때문에 이러한 평가 결과의 힘이 더 강력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 다른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적 있지만, 의회가 판사를 임용하더라도 결국 판사 선발 위원회는 지역 변호사 협회에서 추천된 판사 후보를 우선적으로 검토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지역 변호사들이 자신들이 자주 출입하는 법원의 지역 판사를 선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어느 정도 지역 협회에서 검증된 후보가 의회로 추천되고, 의회에서는 주민투표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판사를 임용하고 이들의 업무를 관리·감독하는 구조다.


필자는 이번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한국의 법관은 어떤 식의 평가를 받고 이러한 평가가 대중에 공개되는지 확인하려고 했었는데, 아쉽게도 개별 판사에 대한 평가 결과는 공개되지 않고 몇 명의 "우수한 판사" 이름만 공개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부분에서 혹시 필자가 틀렸다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그 "우수한 판사"를 선정하기 위해, 누가 어떤 절차로 어떤 설문에 참여했고, 다른 판사들은 어떤 점수를 받았는지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것이 진급이나 고과, 심지어는 재임용 여부에 반영하며, 의회가 이 과정 전체를 감시한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만족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