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Dec 17. 2020

미국 형사소송의 증거 확보 방법

각 도구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핵심

미국 형사 피고인을 주로 대리하는 입장에서 증거의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핵심 서류 혹은 증언 하나에 따라 의뢰인의 유죄와 무죄가 갈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판 중심주의를 지향하는 미국 법정에서는 단순히 증거의 존재 유무뿐만 아니라, 증거법에 따른 해당 증거의 채택 가능 여부, 그리고 해당 증거의 신빙성이 사건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미국 형사 변호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증거 습득의 도구에 대해서 간략히 알아볼 예정이다. 


1. 의뢰인 

변호인 입장에서 가장 손쉬운 증거 확보의 방법 중에 하나는 의뢰인으로부터 직접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사건을 직접 경험한 만큼 의뢰인의 사건에 대한 진술이나 증언은 사건을 이해하고 방어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외에 의뢰인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민감한 개인 정보(의료기록이나 정신과 상담 기록 등)도 있다. 반면, 의뢰인으로부터 수집된 증거나 정보는 이를 증거로 채택하는데 많은 걸림돌이 있다. 왜냐면 일단 의뢰인의 진술은 기본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주장의 신빙성이 공격받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뢰인이 증거 서류를 제출하는 경우에도 해당 서류가 전문 증거인지 확인하고, 해당 서류의 진정성(authenticity)과 토대(foundation)를 입증하기 위해서 의뢰인이 증언을 해야 하는데, 이 경우 검사에게 반대신문의 기회를 주기 때문에 변호인 입장에서는 의뢰인이 자칫 스스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꺼려지는 편이다.


2. 증거개시(discovery)

형사 소송법의 증거 개시 규정에 따라 검사는 변호인 측에게 재판 전에 반드시 전달해야 하는 증거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예전에 다루었던 Brady 자료가 있다. (관련 포스팅: "미국 검사의 의무: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공유할 것") Brady 자료는 쉽게 말하면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라고 볼 수 있는데, 현장에서 발견된 피고인 외 타인의 지문이라든지, 수사 경찰관의 과거 징계사실, 핵심 증인의 범죄 기록 등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에 일반적으로 증거개시에 포함되는 것은 수사 경찰관의 보고서(police report), 목격자 진술서, 피고인의 범죄 기록(소위 "RAP sheet"), 경찰차에 블랙박스 카메라(영어로는 dash cam)가 설치되어 있거나, 경찰관에게 바디캠(즉, 몸에 설치하는 개인용 카메라)이 있다면 해당 영상도 증거 개시에 포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외에 변호인이 재판 전이나 당일날 수사 담당 경찰관과 대화하면서 얻어 내는 정보도 사실상 증거 개시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필자의 경험상 대부분의 경찰관들은 재판 진행 당일날 변호인과 대화를 하며, 자신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경험한 내용이나 자신의 사건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왜냐면 어차피 공판을 진행하게 되는 경우, 동일한 내용을 법정에서 증언해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변호인에게 미리 증언 내용을 공유하여 공판 전에 사건이 유죄 협상으로 끝나면 절차를 훨씬 간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호인 입장에서는 공판 직전 경찰관과의 대화를 통해, 해당 경찰관의 증언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지, 경찰관의 증인으로서의 설득력이 얼마나 뛰어날지, 경찰관의 처벌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뢰인에게 공판 진행 vs. 유죄협상 여부를 조언하게 된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경찰관을 설득하여 내 편으로 끌어들이면, 경찰관이 검사에게 기소 철회나 감형을 권장하게 만들 수도 있다.


3. 소환장 발부(Subpoena for Witness/Subepoena Duces Tecum)

한편, 수사 경찰관이 아닌 일반인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이나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해당 일반인을 공판 기일에 출석하도록 하는 소환장을 발부할 수 있다. 정확히는 변호인이 법원에 요청을 하면 법원이 해당 증인에게 출석 명령서를 정식으로 발부하는 형식이다. 피고인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특정 증인을 소환하고 신문할 수 있는 권리는 헌법상의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에, 법원에서 이를 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증인의 출석 요구가 아닌, 특정 문서나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Subpoena Duces Tecum, 줄여서 SDT)엔 변호인이 법원에 요청할 필요 없이, 직접 해당 자료 보관자(custodian)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 있던 감시 카메라 비디오를 얻기 위해서, 해당 건물의 소유주나 관리자에게 자료 제출 소환장을 발부하거나, 피해자가 의뢰인을 신고하기 위해 911 전화를 건 경우, 해당 전화에 대한 통화 녹음 내용과 당시 911 콜센터 직원과 현장 경찰관이 나눈 대화 기록을 제출하도록 요청할 수도 있다. 만약 법원의 출석명령이나 자료 제출 소환장을 따르지 않을 경우, 판사는 이를 법정 모독죄로 처벌할 수 있다. (최대 10일 이하의 구류)


4. 정보공개 청구(Freedom of Information Act, FOIA)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은 정보공개 청구 법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웬만한 정부기관은 관련 청구 요청을 담당하는 부서와 담당관을 두고 있다. 이는 형사 사건의 주요 참여자인 경찰서도 마찬가지다. 정보공개 청구는 일반적으로 특정 서류나 정보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잘 알 수 없는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증거 확보 도구이다. 예를 들어, 필자는 경찰관들의 교육 매뉴얼이나 경찰 장비 사용설명서를 정보 공개 청구로 받아본 적이 있는데, 이는 내 사건에서 경찰관이 얼마나 철저하게 매뉴얼대로 수사를 철저히 했는지, 혹시 매뉴얼을 어기고 충분한 증거 없이 자의적으로 범인을 지목했는지, 수사 과정에서 불합리한 행위는 없었는지를 밝히는 중요한 서류로 사용되었다. 만약 경찰관이 조금이라도 매뉴얼을 어긴 정황이 발견되면, 수사의 불합리함이나 법적 절차의 위반을 들어 사건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공개 청구의 단점은 정보를 열람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고, 열람 가능 범위가 특정 사건에 관련된 정보보다는 일반적인 정보를 얻는데 한정된다는 것이다.


5. 사설탐정 고용(Private Investigator, PI)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변호사가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조사하거나 증인을 접촉할 수 있지만 이런 경우 사설탐정을 고용하는 것이 더 낫다. 왜냐면, 변호사의 시간당 보수가 사설탐정의 그것보다 훨씬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시간당 200불~500불부터 많게는 1000불이 넘는 비용을 청구하는데, 사설탐정의 경우 일반적으로 시간당 보수가 100불 내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수집한 증거를 법정에서 사용하는데도 이점이 있는데, 변호사가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진술(proffer)하는 것보다는 제삼자(사설탐정)가 증언하는 것이 절차상 더 진행하기 용이하고 설득력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 사설탐정들은 대부분 허가받은 공증인(notary public)이기 때문에 목격자로부터 즉석에서 진술서를 작성받아 이를 공증할 수도 있고, 종종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영어를 못하는 목격자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미국의 사설탐정은 대부분 사법기관에서 잔뼈가 굵은 경찰/수사관 출신으로 정부에서 허가받은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형사 변호인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증거 수집 도구들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상황에 따라 어떤 도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따라 증거 수집력이 좌우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경험이 사건 진행에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