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Oct 30. 2021

미국 변호사의 영어 고군분투기(2) -필자의 현재실력

과연 현재 필자의 객관적·주관적 영어 실력은 얼마나 될까?

미국 생활 9년을 포함해 영어를 공부한 기간이 20년이 넘었다. 그동안 느꼈던 영어 학습의 어려움 중에 하나는 현재의 실력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어떤 점이 부족한 줄 알고, 개선해나갈 방향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필자는 미국 연방정부에서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시민권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언어 장학생 프로그램(EHLS, English for Heritage Language Speakers)에 지원하여 합격한 적이 있다. 그 선발 기준은 영어(읽기·말하기·듣기·쓰기)와 모국어(말하기) 실력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미국 정부에서 인정하는 공신력 있는 시험 기관에서 평가를 받아야 했다. 미국 정부에서는 언어 능력을 측정하는 데 있어서 ILR rating (Interagency Language Roundtable)이라는 평가 기준을 활용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개인의 언어 실력을 0(no proficiency)부터 5(native or bilingual proficiency)까지로 나눈다.


EHLS 언어 장학생 프로그램의 선발 최소 기준은 영어 실력(4개 영역 모두)이 최소 ILR 2등급(Limited Working Proficiency)이 되어야 하며, 모국어는 최소 ILR 3등급(Professional Working Proficiency)이 되어야 한다. 즉, 이러한 기준을 만족시키는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서류 심사를 거쳐서 최종 합격을 하면 8개월간 국비 장학생으로 생활비를 받으면서 영어 실무교육을 받고, 외국어 능력이 필요한 미국의 국가 안보기관에 취업을 지원해 주는 과정인 것이다. 미국의 안보를 위해 전 세계에서 현지 정보 수집과 동향 파악이 가능한 외국어 전문 인력을 수급하기 위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필자는 최근 몇 개월간 치러진 ILR 평가에서 다음과 같은 등급을 받았다.


·영어 말하기 3등급(Professional Working Proficiency)

·영어 읽기 4등급(Full Professional Proficiency)

·영어 듣기 3등급(Professional Working Proficiency)

·영어 쓰기 2+등급(Limited Working Proficiency Plus)

·한국어 말하기 3등급(Professional Working Proficiency)


이를 보고 ‘최고 등급이 5등급인데, 필자의 영어 3등급은 변호사로 활동하기엔 낮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필자의 한국어 말하기 능력도 3등급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모든 정규 교육과 대학까지 마친 필자의 한국어 말하기 실력이 3등급인 것을 보면 시험 기준이 상당히 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오래전 일이지만 필자는 수능에서 언어 1등급/영어 만점을 받은 적 있다)


그리고 아래 표를 보면 실질적으로 ILR 4~5등급은 한국어로 치면 KBS 한국어 능력시험 1~2급에 해당하는, 아나운서나 방송국 작가, 기자 등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다. 변호사, 판사, 법정 통역인 등은 다행히도(?) 3등급에 포함되어 있다.

출처: ACTFL (www.actfl.org)


그러면 각 영역별 필자의 주관적인 수준에 대한 생각을 얘기해 볼 것이다.


영어 말하기

한 개인의 전반적인 영어 능력을 직관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영어 말하기 능력을 보는 것이다. 특히 영어 발음이나 유창성만 봐도 그 사람의 영어 실력을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영어 실력의 기준을 영어 말하기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의 경우 미국 생활 특히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영어 말하기가 특히 어렵거나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다. 그 말인즉, 원어민을 대상으로 상대방에게 내 의도나 전달하려는 바를 이해시키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검사와의 유죄 협상을 진행한다든지, 재판에서 구두 변론을 한다든지, 혹은 잠재적 의뢰인에게 세일즈 피치(sales pitch)를 하는 데 있어서도 별 문제가 없었다.


필자의 영어 실력에 비교적 관대한 아내의(교포 2세) 말을 빌리자면, 처음 영어로 얘기했을 때 필자가 교포 혹은 어렸을 적에 미국에 온 1.5세인 줄 알았다고 한다. 아내뿐만 아니라 내가 테니스 레슨을 하는 교포 2세 미국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내가 몇 살에 미국에 왔을지 물어봤을 때도 10살 내외라고 대답했던 것을 보면 어느 정도 맞는 얘기인 것 같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교포 2세들도 자라온 환경에 따라 영어에 한국식 악센트가 섞여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한국식 악센트가 있음을 부정하진 않지만, 그 악센트가 의사소통에 방해가 되는 정도는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다.


물론 심하게 긴장을 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주제에 대해서 얘기하면 버벅거리거나 문법을 틀리는 횟수가 늘어나긴 한다. 이는 모국어인 한국어도 마찬가지겠지만, 영어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그 정도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법정에서 구두 변론을 할 때는 이미 익숙한 환경에서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한 전문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원어민에 근접한 유창성과 단어 선택을 보여줄 수 있지만, 누군가 모임 장소에서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건배사를 제의해달라고 하면 상당히 고전할 것이다.


영어 읽기

영어 읽기는 한국식 교육과 다년간의 시험으로 다져져, 웬만한 원어민보다 낫다고 자부할 수 있다. 고3 때는 딱히 공부하지 않아도 영어 모의고사에서 항상 1등급이었고, 실제 수능도 외국어 영역에서 만점을 맞은 적이 있다. 대학교 시절에는 2학년 때 토익 만점, 3학년 때는 텝스 900점 이상을 획득했고, 로스쿨 유학을 준비하면서 본 토플 시험에서도 읽기는 30점 만점에 29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국 로스쿨 입학시험(LSAT)을 공부할 때도, 독해(Reading Comprehension) 영역이 다른 영역보다 수월했다.


현재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이코노미스트와 워싱턴 포스트를 온라인으로 구독하고 있는데, 일반 시사·법·경제·사건사고·오피니언에서는 모르는 단어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극소수라서 글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큰 문제가 없지만, 가끔 문화 현상이나 여행·요리 등에 대한 기사는 종종 모르는 단어가 나오기도 한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공부하며 억지로 워드 스마트나 보카 22000 같은 전문 어휘책을 공부한 결과인 것 같다.


재밌는 점은 원서로 된 책을 읽을 때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소설 해리포터 원서는 모르는 영국 단어 혹은 표현이 많아서 대체적인 스토리는 이해하더라도 중간중간에 사전을 찾아보지 않으면 세부적인 디테일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읽기가 좀 어려운 편이었지만, 그 외 현대 소설이나 비문학은 대체로 쉽게 읽는다. 물론 전문 분야인 판례나 법 조항은 웬만한 일반인 원어민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고 자부한다 (다른 미국인 변호사들과 비교했을 때는 거의 비슷하거나 약간 느린 정도일 것 같다).


영어 듣기

영어 듣기는 비 원어민으로서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느끼는 분야이다. 왜냐면 그 어느 영역보다 직관이 중요하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영어만의 고유한 소리에 노출되어 이를 구별하는데 익숙해지지 않으면 특정 발음을 문맥 없이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필자는 여전히 v/b, f/p, th/d 등의 소리가 들어가는 단어가 빠르게 문맥 없이 발음되면 구별하기 어렵다. 물론 필자가 영어로 말할 때는 이들 소리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구별하여 발음할 수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다만 90% 이상 문맥을 통해 해당 단어가 둘 중에 하나고, 거기에 어울리는 적절한 단어가 들어간다는 알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듣기엔 큰 불편이 없다.


영어 원어민이며 교포 2세인 필자의 아내와 필자 사이에서 영어 듣기의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다양한 영어 악센트에 대한 이해력을 들 수 있다. 즉, 미국 앵커나 아나운서처럼 목소리가 또렷한 경우에는 아내나 나나 이해력에 있어서 별 차이가 없지만, 필자는 영국식 영어, 스페인어나 인도 언어의 악센트가 있는 영어를 이해하는 데는 종종 어려움을 느낀다. 이건 아마도 미국 원어민들은 어렸을 적부터 이러한 다양한 악센트를 접해왔기 때문에 그 소리에 비교적 익숙해진 것 같다. 마찬가지로 교포인 아내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극 말투나 사투리가 나오면 이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그나마 최근엔 사극 드라마를 보면서 배운 한국어 표현을 현실에서 잘 모르고 가끔 쓰는데 그게 귀엽긴 하다)


필자는 티브이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자막 없이 내용을 80%~90% 이해할 순 있지만, 영어 자막을 켤 수 있으면 그렇게 한다. 그러면 듣기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내용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자막으로 봐도 문화적 차이로 인해 약 1~5% 정도는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내용이라도 티브이나 전화를 통해 듣는 것보다 실제 사람과 마주하여 듣는 것이 이해가 훨씬 더 잘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소리를 더 직접적으로 들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법정에서 판사가 하는 말이나 상대방 변호인, 혹은 증인의 말을 듣는 데는 어려움이 거의 없었다.


영어 쓰기

필자가 생각하는 영어 공부의 최종 보스는 바로 쓰기이다. 앞선 ILR 등급에서도 나왔듯이 필자는 네 영역 중 쓰기가 가장 취약하다.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필자가 시험을 보면서 나름대로 자신 있었던 분야가 쓰기였기 때문에 점수를 받고 적잖게 실망했는데, 나름 변명을 해보자면 시험 상황에서의 쓰기는 인터넷 사용이 금지된 상황이었고 내가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대한 주제를 적어야 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더불어 영어의 쓰기 능력의 한계치는 한글 글쓰기 능력을 따라가는 것 같다. 그 말인 즉, 영어 글쓰기 능력은 아무리 높아져야 내 한글 글쓰기 능력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초월한 기본적인 작문 능력이 좋아져야 영어 작문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 같다.


변호사로서 작문은 필수 능력이기 때문에 로스쿨을 거쳐 현재 실무를 진행하면서 항상 작문에 대해 많이 신경 쓰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원어민보다는 작문 속도가 느린 편인데, 스스로가 쓴 글을 두 번 세 번 퇴고하며 혹시라도 문법이나 어휘가 적절하지 않은지 확인하다 보니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 최종 검토를 부탁할 경우, 문법엔 맞고 의미 전달도 되지만 왠지 원어민스럽지(?) 않은 표현이나 문장을 종종 찾게 된다. 아직 갈 길이 먼 영역이다.


마치며

이렇듯 필자의 현재 영어 실력을 비교적 객관적인 평가 결과와 스스로 느낀 주관적인 자체 평가를 바탕으로 적어 보았다. 사실 이 글의 목적은 앞으로 필자가 연재할 글을 읽기에 앞서 독자에게 필자의 글과 경험에 어느 정도 신뢰성을 주기 위한 한편, 더 완벽한 영어 사용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목적도 있으니 참고하시라.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 변호사의 영어 고군분투기(1)-시작하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