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대한 최초의 기억 & 영어 공부에 대한 동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학교에서 영어를 과목으로써 배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혹은 6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필자의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는 영어과목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는데, 졸업하기 직전에 방과 후 교육활동 비슷하게 알파벳과 “I am a boy”같은 표현을 잠깐 배웠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 전에는 컴퓨터를 통해 영어라는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의 컴퓨터는 윈도 이전의 MS-DOS라는 운영체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MS-DOS는 마우스가 아닌 텍스트 명령어 기반의 운영체제라서 영어로 된 명령어를 사용해야 했기에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알파벳과 간단한 영어 단어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다.
필자의 집에도 컴퓨터가 있었는데 초등학생(당시는 국민학생)이었던 필자에게 컴퓨터의 유일한 용도는 게임이었다. 당시에는 한글 버전의 게임이 없었기 때문에 영어를 조금이라도 알아야 게임을 즐길, 아니 시작할 수 있었다. 필자가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하드볼이라는 야구 게임이었는데, 게임을 로딩한 뒤 야구 경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선수 명단이나 선발 투수 등 여러 가지 옵션을 선택해야 했다. 영어를 몰랐던 당시에는 메뉴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결국 경기를 시작하지 못해서 게임을 포기하곤 했었다. 어쩌다가 무작위로 메뉴를 잘 선택해서 경기를 시작한 적도 있었는데, 대부분은 그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영한사전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당시의 영한사전은 초등학생이었던 내 손에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매우 두껍고, 종이는 곤충의 날개처럼 얇은 수천 페이지의 책이었는데 영어 단어와 그에 대한 한글 해석이 깨알 같이 적혀 있었다. 이러한 무식한 크기와 분량에도 불구하고 필자에게 이 두꺼운 영한사전은 컴퓨터(특히 게임)에 나오는 복잡한 외계 문자(=영어)의 해석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로제타 스톤과도 같았다. 그로 인해 “play, start, exit”과 같은 간단한 단어를 알게 됐고, 더 이상 영어로 된 게임 메뉴에서 헤매지 않고 바로 야구 경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학교에서 영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게임을 하면서 영어 단어를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알게 된 것도 있고, 영어를 알면 게임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돼서 그런지 영어 수업을 정말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다른 과목 선생님들보다 영어 선생님들의 자유롭고 너그러운 수업 분위기를 더 좋아했던 것도 있었다.
한편, 게임은 필자에게 있어서 영어 어휘뿐만 아니라 듣기 및 말하기 실력에도 도움이 되었다. 필자의 학창 시절에는 스타 크래프트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과 디아블로 같은 액션 게임이 주로 유행했었는데, 이때만 해도 한글 버전이 없어서 영어로만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영어 대사를 흉내 내는 것이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었는데, 실제 게임 캐릭터에 가깝게 성대모사를 할수록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이렇듯 영어 게임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언어로서의 영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부모님께 영어회화 학원을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원어민이 있는 회화학원을 다니게 됐다. 물론 학교 공부를 위해서 종합 학원을 다니기도 했지만, 영어회화 학원을 가는 시간이 훨씬 즐거웠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입학 전 부모님의 권유로 겨울 방학에 처음으로 미국에 3주 동안 어학연수를 가게 됐는데, 이를 계기로 영어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언젠가는 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3주간 미국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한국과는 모든 것이 너무 다른 미국이라는 세상이 지구 반대편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새삼 충격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경험들이 너무나 흥미로웠던 나머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꼭 다시 미국에 돌아오리라는 다짐을 했다.
고등학교 생활은 평범했다. 학업에 대한 부담으로 영어회화 학원은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그만두어야 했으며, 2학년부터는 대입을 위해서 종합 학원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점은 그동안 영어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았고, 수업을 열심히 듣다 보니 영어 성적은 내신이든 모의고사든 항상 잘 나왔다. 그러다 보니 진로를 자연스럽게 영어를 활용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영문과보다는 영어교육과를 가야 더 실용적인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삼촌의 권유로 영어교육과 진학을 목표로 했다. 마침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마침 영어 과목 담당이었고, 내가 존경하던 분이어서 자연스럽게 영어교사의 꿈을 꾸게 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첫 입시에서 실패하고 재수를 하면서 ‘어차피 내가 사는 지방(충청북도)에서 영어교사를 할 거면 굳이 서울에 있는 사립대에 갈 필요가 없다’라는 생각으로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충북대학교의 영어교육과에 지원해서 합격하게 된다. 당시 수능 변환 표준점수 기준 1등급 턱걸이여서 소위 스카이를 갈 정도는 안되고 서성한 인문·사회 전공 정도는 지원해볼 수 있었는데, 꽤 하향 지원한 셈이다. 그러나 돌이켜봤을 때, 내 인생에서 학부 전공으로 영어교육학을 전공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이후 “미국 변호사의 영어 고군분투기 (4)-대학 생활”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