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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Jan 13. 2022

첫 배심원 재판(Jury Trial) 진행 후기

처음이라는 그 설렘과 기대, 아쉬움.

The Jury (1861) by John Morgan, Buckinghamshire County Museum


미국 법정 미드나 영화의 클리셰로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에 하나가 변호사가 배심원들에게 최후 변론(closing argument)을 하는 모습이다. 필자도 미국 로스쿨을 준비하면서 Boston Legal이라는 미드를 즐겨 봤는데, 거의 매 에피소드마다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 Alan Shore가 배심원들에게 멋진 최후 변론을 하는 장면을 인상 깊게 보고 '나도 언젠가 저렇게 해보고 싶다'라는 꿈을 가졌었다.


변호사가 되고 난 뒤 실무를 접한 뒤, 대중매체에 나오는 법정의 드라마는 사실과는 관계가 멀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언젠가 배심원 재판을 진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구석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데도 배심원 재판을 잘 진행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있어서 막상 닥치면 왠지 도망가고 싶기도 했다.


사실 내가 커리어 초기에 형사법을 전문 분야로 선택한 이유도 재판 업무(trial practice)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비원어민 유학생 출신이어서 미국 변호사로 제대로 활동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를 워낙 자주 접했기 때문에, 그러한 고정관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한편, 스스로도 내 영어 능력의 한계가 어디일까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런 점에서 구두 변론과 증인의 구술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매 순간 높은 수준의 듣기와 말하기 능력이 요구되는 재판 업무는 내 능력을 검증하기에는 최고의 조건이었다.


그러던 중,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배심원 재판을 치르게 되었다. 경범죄 사건으로 하루 만에 종결된 비교적 짧은 배심원 재판이었지만, 일반적인 배심원 재판을 구성하는 배심원 선정(voir dire) 과정과 모두 진술(opening statement), 증인 신문(witness examination), 최후 변론(closing argument) 등을 포함하는 과정이었다.


사실 겉으로 크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준비하면서 얼마나 긴장했는지 재판 며칠 전부터 재판 생각을 하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곤 했었다. 그리고 다른 변호사들이 진행하는 배심원 재판을 꽤 많이 참관해 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니, 여러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예상하면서 준비하다 보니 준비 시간은 부족했다. 오죽하면 재판 전날에 코로나 핑계로 꾀병을 부려서 재판을 연기하면 어떨까라는 허황된 생각도 잠깐 했었을까.


재밌는 점은, 막상 법원에 도착하니 모든 긴장이 사라지고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아무래도 근 4년 간 매일 출퇴근하다시피 했던 법원이라 그런지 익숙한 환경에 들어오니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평온함은 재판이 시작되어도 마찬가지였고, 다행히 작년에 있었던 마지막 민사 재판 때처럼 목소리가 떨리며 염소 목소리가 나오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몇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면, 첫째, 배심원 선정(voir dire) 과정에서 우리 측에 불리한 편견을 가진 배심원을 strike for cause로 제외시킬 수 있는 핵심 질문과 요청 절차에 대해서 더 연구해야 한다는 것. 물론 나중에 임의 배제(peremptory strike)를 활용할 수 있지만, 그 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strike for cause를 활용하는 것이 우리 측에게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인원으로 배심원을 구성할 수 있다. 


둘째, 반대 신문(cross examination)을 할 때, 미리 준비한 질문 내용을 활용하는 것 vs. 즉석에서 상대방 직접 신문을 바탕으로 생각해된 질문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다. 이는 경험이 쌓이면서 증언을 더 잘 예측할수록 쉬워지겠지만, 조금 더 체계적인 방법을 활용해서 필요한 핵심 질문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셋째, 최종 변론에서는 변호인의 폭넓은 재량이 인정되어 웬만하면 이의 제기(objection)를 하지 않지만, 너무 선을 넘으면 상대방이 판사가 이를 제지할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황금률(Golden Rule)에 근거한 주장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황금률이란 "배심원 여러분이 만약 피고인의 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해보고 평결을 내려주십시오"라는 것이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이러한 주장은 배심원이 증거와 증언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판단을 하기보단,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 판단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의제기 감이었다. (물론 나도 중간에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했는데 바로 상대방이 이의제기를 하고 판사님이 이를 sustain 했다. Lesson learned)


어쨌든 배심원 재판은 무사히 마무리되었고, 재판 결과가 100%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어찌 첫술에 배부르랴. 그러나 혼자 힘으로 배심원 재판을 끝까지 진행했다는 성취감과 이제는 그 어떤 재판도 예전만큼 긴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상상했던 것만큼 그렇게 어렵거나 힘든 점은 없었다. 다만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세계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불안감이 더 크지 않았나 생각한다. 뭐든지 처음은 다 그런 것 같다. 


조만간 정부직으로 이직이 확정되면 이후에 배심원 재판을 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상관없이 이번 경험은 내 개인적으로나 혹은 변호사 커리어에 있어서 comfort zone을 벗어날 수 있었던 큰 성장의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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