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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Mar 04. 2022

마지막 사건을 마무리하며...

Adios, solo practice.

2018년 4월 개업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지 약 4년이 조금 못 되는 2022년 2월 마지막 사건을 마무리하며 개업 변호사 생활을 청산했다. 생애 처음으로 "내 사업"이란 것을 해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개업을 하기로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경험"이었다. 내 생각에 변호사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은 법률 전문가로서의 독립성자립성이 그 어느 직업보다 존중받기 때문에 자신만의 신념에 따라 사건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러한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솔로 프랙티스(solo practice, 1인 개업 변호사)만 한 것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미디어에서 클리셰(Cliché)로 흔히 등장하는 "법정 변호사(trial lawyer)"의 업무를 해보고 싶었다. 내가 애초에 미국 로스쿨을 가고 싶다고 마음먹은 것도 미드에서 주인공 변호사가 배심원 앞에서 최종 변론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이야 말로 변호사 업무의 정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뢰인이 범죄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든, 교통사고의 피해자든, 이웃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한 채권자든 누구나 공평하게 법적 절차에 따라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남의 일을 자신의 것처럼 열정과 혼신을 다하여 변호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지게 느껴질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내 성격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바꾸고 싶은 것도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남 앞에서 주눅 들어있고, 모든 일에 소심하게 반응하며 그냥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는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워낙 숫기가 없어서 학창 시절에는 반장이나 부반장은커녕 조장도 못해봤다. 오죽하면 식당에서 주문한 메뉴가 잘못 나와도 뭐라 못하고 그냥 잠자코 먹는 성격이었을까. 그러다가 군 복무를 마치고 이러한 성격을 고쳐보기 위해서 단과대학 학생회장에 출마했었고, 운 좋게 당선되어 처음으로 리더 역할을 맡으며 자신감을 어느 정도 키울 수 있었다.


재밌는 점은 이렇게 스스로를 위해서는 소극적이었던 내가, 의뢰인의 권리를 대변하는 변호인의 역할을 맡게 되니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를 믿고 따라주는 의뢰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소극적인 성격을 극복하게 된 것이다. 의뢰인의 사정이 얼마나 급하고 절박했으면 새파란 초짜 동양인 변호사에게도 변호를 부탁하며 그동안 피같이 모은 돈을 선뜻 지불했을까. 그러한 의뢰인을 사정을 알고 나니 법정에 가서도 주눅 들지 않고 판사에게 한 번 더 대들고, 검사에게 목소리 높이고, 경찰관에게 윽박지르는 일이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형사 사건은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형사 변호인(criminal defense attorney)은 민사 변호사보다 재판(trial)을 경험해볼 기회가 더 많았고, 주로 약자인 피고인을 대리하여 국가 공권력의 핵심인 검찰과 경찰에 맞선다는(?) 점에서 권위에 순응적이고 소심한 내 성격과 정반대의 역할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낯선 미국 땅에서 이민자로서 살아오면서 언어나 문화에 익숙지 않아서 주눅 들었던 경험이 많았는데, 형사 변호사로 일하면서-그리고 최근에 시민권을 취득하면서-이런 약점을 대부분 극복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미국 변호사로서 과연 내가 소위 "변호사 1인분"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자격지심과 의구심을 꽤 덜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하였다. 최근에 있었던 형사 단독재판(bench trial)에서 억울하게 기소된 의뢰인을 대리하여 약 2시간의 재판 끝에 범죄 혐의 3건 모두에 대해 "무죄"를 얻어냈던 것과, 작년에 교통사고 가해자로 지목된 의뢰인을 대리하여 재판 결과 "책임 없음"으로 승소한 사건은 '내가 최소한의 변호사 구실은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통계를 내보니, 약 4년간 대략 200건의 민·형사 사건을 대리 및 자문했으며 그중 재판을 총 7번(그중 한 번은 배심원 재판, 나머지는 전부 판사 단독재판)을 치렀고 그중에 "완전승소"라고 할 만한 경험은 위의 두 건이었다.]


사실 지난 4년 동안 꽤 많은 사건을 대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어들인 소득은 웬만큼 평범한 직장인의 소득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것이었다. 형사 사건이 원래 큰돈이 되는 분야가 아니기도 했거니와 딱한 의뢰인의 사정을 듣고 보니 마음이 약해져서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수임료로 대리를 해준 사건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리한 사건의 상당수가 거의 자원봉사나 다름없었던(기름값과 식비 빼면 거의 남는 게 없던) 국선 사건이었던 점도 무시 못했다.


그러다 보니 가계 수입의 대부분을 와이프에게 의존하면서 미안한 마음도 꽤 없지 않았다. 나야 스스로가 원하는 경험을 실컷(?)하느라 돈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와이프는 생활비를 거의 혼자 책임지다 보니 적잖은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불평 하나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뒷바라지해준 와이프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제는 내가 정부직 공무원으로서 떳떳하게 가계의 1인분을 책임지며 와이프의 짐을 덜어줄 수 있게 됐다. 아, 물론 이번에도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지만 월급을 받는다는 점에서 눈치가 조금 덜 보인다는 것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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