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에겐 이득일까 손해일까?
내가 5년 전(2018년) 법률 신문에 "하버드의 아시아계 지원자 차별 의혹 소송"이라는 내용의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해당 기고문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렇듯 잠재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올 소송은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양측에서 최후변론을 마친 상태이며 이제는 판사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는 1심 단계이기 때문에 이후 연방 대법원까지 가봐야 최후의 승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승소하든 이후의 미국 전역의 소수 인종 관련 정책에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곤 바로 어제(2023년 6월 29일) 미연방 대법원은 위 사건을 통해, 그동안 인정되던 Affirmative Action (roughly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이 위헌임을 선언했다. 판결문 원문 보러 가기.
자세한 사실 관계나 쟁점은 기고문에 있기 때문에 생략하고, 이번에는 해당 판결의 논지와 그에 따른 내 생각을 적어볼 생각이다.
이번 판결문은 총 237쪽이지만, 실제로 구속력이 있는 다수 의견(majority opinion)은 그중 40쪽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소수 의견 혹은 동참 의견이다. 시간 관계상 나는 다수 의견만 읽었고, 이것만으로도 해당 판결의 요지가 무엇인지 파악하기엔 충분했다.
판결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하버드 (및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대학에서는 인종을 입시 평가 기준의 하나로 사용해 왔는데, 그 이유로 미래 인재 양성, 다양성을 통한 지식 함양, 다양한 관점의 교환 등의 가치를 표방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들은 법원이 인종 차별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엄격한 심사(strict scrutiny)" 기준을 적용하기에는 너무나 막연하고, 평가 불가능한 것들이다.
행여, 위의 가치들이 객관적으로 평가가 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인종을 입시 기준으로 했을 때, 과연 위에서 언급한 가치가 실현된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입시에서 인종을 고려했을 때, 이것이 지원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것이 특정 인종에 대한 선입견(sterotype)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인종을 고려한 입시 정책은 합리적인 종착점(logical end point)이 없다.
이러한 사유로 결국 해당 대학들의 인종을 고려한 입시 평가 제도는 연방 수정헌법 14조에 나와있는 차별 금지조항(Equal Protection Clause)에 위반된다.
사실 이 소송의 뒷배경에는 소수인종이라서 입시에 차별을 받는 아시아계 학생들의 설움이 깔려있다. 일반적으로 아시아계 학생들은 백인 학생들에 비해서 학업 성적은 뛰어나지만 기타 교우관계나 적극성, 리더십 부문에서는 떨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수치상 지표에도 불구하고 하버드 등 엘리트 학교의 입시에서 불리함을 받아 왔다.
특히 암묵적으로 학교에서는 입학생들의 인종별 구성을 일정한 수치로 유지시키려고 노력을 했다. 예를 들어, 2009년부터 2018년 하버드대 학부 입학생들의 인종 구성을 보면, 흑인은 10~12%, 히스패닉은 8~12%, 아시아계는 17~20%를 언제나 유지해왔다. 이것은 사실상 인종별 쿼터를 암묵적으로 (쿼터 자체는 이미 예전부터 위헌이라고 했지만, 그건 명시적인 경우에만 그렇다) 사용해 왔다는 것이고, 결국 아시아계 학생들은 약 20% 내외의 TO를 가지고, 자기들끼리 그 안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머지 약 50%는 백인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내 기고문에서도 언급했지만, 만약 인종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나머지 평가 기준만을 가지고 입학 여부를 결정한다는 가정으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아시아계가 전체 입학생의 43.4%를 차지하게 됐다는 내용이 해당 소송을 통해서 밝혀지기도 했다. 그 말은 단순히 말해서 전체 입학생 정원의 약 20%는 아시아 학생한테 갔어야 하는데 다른 인종에게 갔다는 말이고, 그만큼의 아시아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실질적 평등에서 절대적 평등으로의 회귀.
결국 이번 판결의 의미는 미국에서 "평등"의 의미가 상대적(혹은 실질적) 의미에서 절대적 의미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예전에는 평등의 의미가 각 인종 간의 학업 성취도나 재력 등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고려한 상대적 평등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런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인종에 관계없이 절대적으로 똑같이 기회를 주는 것이 평등이라는 뜻이다.
결국 아시아계에는 득일까 실일까?
사실 내가 굳이 시간 들여 판결문을 읽어보고, 이 포스팅을 시작한 이유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아직 판단하기에 이르다"라는 것이다.
그나마 임시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단기적으로 아시아계 중에서 뛰어난 일부 학생들은 이번 판결로 인해 큰 혜택을 볼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평범한 아시아계 학생들은 장기적으로 손해 볼 가능성이 크다"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다, 순수하게 수치화할 수 있는 부분에서 탁월함을 증명할 수 있는 소수의 아시아계들에게는 이번 판결이 축복일 수밖에 없다. 즉, 아시아계가 차지할 수 있는 상방(ceiling)이 없어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반대로 하방(floor)이 없어진다는 의미기도 하다. 즉, 일정 부분에서 아시아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소수 인종 혜택을 받아서 입학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기대를 하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사실상 아시아계가 실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계라서 입학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혜택을 볼 수 있는 아시아계가 줄어든다는 것을 자명하다.
여담으로, 아시아계를 제외한 모든 소수 인종에게는 이번 판결이 반갑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인종을 완전히 배제한다면 아시아계를 제외한 소수 인종의 합격률은 줄어들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왠지 아시아계에는 해당 판결문이 이득일 것 같지만, 그렇게 섣불리 단정하기도 이르다. 왜냐면, 아시아계 중에서도 최상위 층은 당연히 혜택을 받지만, 그렇지 못한 평범한 아시아계들은 오히려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의 폐지로 인해 타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번 판결로 하버드에 입학하는 아시아계 학생들이 추가로 100명 늘어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한편으로는 하버드만큼의 엘리트가 아닌 전국 각 주립대에 예전에는 아시아계가 소수 인종 우대 정책으로 1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데, 이러한 정책이 폐지된 이후로 300명밖에 못 들어갔다고 하면, 이것이 사회 전반으로 아시아계에게 이득일까 손해일까?
또한, 극단적으로 이번 판결문으로 인해, 고용 부문이나 사회 복지 등의 분야에서도 그동안 소수 인종에게 혜택 혹은 배려하던 부분이 "절대적 평등"이라는 명목하에 폐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다못해, 투표 안내 용지가 소수 인종을 위해 여러 언어로 인쇄되던 것이, "모두 공평하게 영어로만 인쇄하자"같은 극단적인 해석을 합리화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일단 이것이 미국 사회의 흐름이 변해가는 하나의 모습이라고 이해하고, 잠시 동안은 사태를 관망하려고 한다. 어쨌든 당장 나나 내 가족이 미국 대학입시를 치르는 것도 아니고, 이것이 내 업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 확실한 것은, 이번 판결로 인해, 과연 소수 인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시아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다양성은 무엇인가? 아시아계는 소수 인종인가? 소수 인종은 약자인가? 소수 인종에 대한 배려가 비 소수 인종에 대한 권리침해로 이어진다면, 그것이 어디까지 허용될까? 등에 대한 논의는 이전보다 더욱 활발해질 거라는 점이다.
어쨌든 이러한 소수 인종 혹은 인종차별에 관한 논의가 표면화되고, 활발히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는 사회적으로 은연중에 만연한 인종차별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없애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기에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Disclaimer: 이 포스팅은 필자 개인의 견해를 표현한 것이며, 필자가 속한 정부나 기관의 의견을 대표하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