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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Jun 17. 2023

딩크족의 변론


나와 아내는 딩크족(DINK 즉, Double Income, No Kid)이다. 둘 다 미국에서 안정적인 직장이 있으며, 집이 있고, 합산 소득도 중상류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지만 결혼 후 딱히 자녀 계획을 서두르진 않았다.


누군가 "왜 결혼 후 7년이 지났는데도 자녀를 갖지 않아요?" (심지어, "애은 몇 살이에요?"라고 으레 짐작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라고 묻는다면, 대답하기에 앞서 '질문이 잘못되었습니다'라고 답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왜냐면 이러한 질문은 결혼하면 꼭 자녀를 가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뭐 이런 질문을 한두 번 받는 게 아니라서, 보통은 "신혼을 최대한 즐기려고요"라고 대답을 한다. (조금 더 친한 사람이 묻는다면 "딱히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그러면 대부분은 "아 그렇구나..."라는 반응이고, 종종 어떤 사람들(특히 어르신분들)은 자녀를 갖는 것이 왜 좋은지 설교를 하기도 한다.

엄연히 말하면, 둘 다 사실이긴 하다. 정확히는 딱히 자녀를 가져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지금 현재의 생활이 아주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내가, 굳이, 왜?"


흔히 자녀가 없는 것에 의문을 표하거나, 우리가 자녀를 갖도록 설득하는 쪽은 100% 자녀가 있는 분들이다. 그런데, 자녀를 가지면 어떤 점이 좋은지를 구체적으로 얘기하기보단 대부분 "~하면 ~해야 한다" 혹은 "당연히 ~~다"라는 식의 규범적, 관행적인 생각이 그 근거가 된다. 하다못해 '자녀를 가지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라는 정도의 논리도 없다.


그나마 가끔은 '자녀를 기르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라는 논지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그러한 논지에 설득되기에는 이미 너무나 구체적이고 다양한 '육아의 고통 및 고뇌'사례를 보아왔다. 멀리 가지 않고, 당장 나와 내 아내의 성장 과정만 보더라도 우리 부모님(혹은 장인 장모님)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을 겪으셨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육아의 책임감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될 정도지만, 아마 실제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만큼의 즐거움과 보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누군가 그랬다. 아이가 생기는 것은 인생의 새로운 희로애락이 생기는 것이라고. (재밌는 건, 그 답글에 어떤 사람은 새로운 "희로로로로로로로로로애락"이 생긴다고 했다) 아마 맞을 것이다. 분명 자녀를 가지면 기쁨과 즐거움, 분노와 슬픔이 공존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육아의 장점보다는 단점의 사례를 훨씬 더 많이 접하고, 더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불확실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육아의 즐거움/보람 vs. 확실하고 명백한 육아의 어려움의 대결 구도인 것이다. 인간의 모든 의사 결정이 그러하듯이, 자녀 계획에 있어서도 장점과 단점을 고려하게 되는데 구체적이고 확실한 단점(새로운 시간과 비용의 지출, 되돌릴 수 없는 평생의 책임과 희생)에 비해 장점(육아의 보람과 즐거움)이 와닿지가 않는다.


사실 이 "육아의 보람 및 즐거움"이라는 개념도 확실하지 않다. 우리가 자라온 세상과 우리의 자손들이 살아갈 세상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이랬으니,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베이비부머인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는 '우리가 지금은 힘들어도, 우리 자식들에게는 행복하고 밝은 미래가 올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것은 대부분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의 자손들에게도 그것이 동일하게 적용될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만약 30년 뒤 미래에 세계 전쟁이 발생한다면? 제2의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창궐해서 인류의 존폐가 위협받는다면? (미국의 경우) 인종차별과 이념 갈등이 심화되어 어딜 가나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면? (한국의 경우) 혹은 노령화가 심화되어 젊은 층의 삶이 더욱 힘들어진다면? 기후 변화와 환경오염으로 삶의 질이 심각하게 위협된다면? 만약에 이러한 암울한 미래가 발생할 경우, 우리는 괜히 불행한 사람(혹은 사람들) 몇 명을 더 세상에 내놓게 되는 것이다. [이 중에서 전쟁을 제외한 나머지는 벌써 현재 진행 중이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 관계에 따라 세계 3차 대전도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언젠가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 내 인생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라는 책이다. 거기에 더불어 나는 내세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즉, 인간은 DNA의 자기복제를 위해 만들어진 생물학적 도구이며, 죽음이라는 것은 그 머신에 전력이 끊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후 세계에서 남겨진 자식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뿌듯해하는 그런 훈훈한 그림은 상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존재하지도 않은 내 자손에게는 어떠한 의무나 책임감도 없다. 아니, 만에 하나 그런 게 존재한다면, 오히려 인생의 고통을 받지 않도록 태어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내 의무나 책임일 것이다. (이것이 기적의 순환논리인가) 사회구성원을 생산함으로써 사회에 기여? 글쎄다. 차라리 우리가 육아에 쓰는 돈과 시간을 공익과 자원봉사에 쓰면 그게 훨씬 더 큰 가치를 보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보면 누군가는 나를 염세주의자 혹은 비관주의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블로그를 오래 구독해 온 독자라면 내가 오히려 낙관주의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현실적 낙관주의라고 하고 싶다.


사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지금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에, 무언가 더 큰 행복을 추구할 필요성을 굳지 느끼지 못한다. 누군가는 행복의 정도를 수치로 매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행복한 건 그냥 행복한 것이다. 우리 부부는 딱히 애완동물도 기르지 않는다. 그냥 둘이 넉넉한 시간과 금전적 여유를 바탕으로 알콩달콩 매일 연애하듯, 신혼처럼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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