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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Sep 10. 2023

영어의 관사(articles)에 관한 생각.

관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 깨달음들...


내가 중고등학교 6년, 대학 4년을 포함하여 최소 10년간의 영어 공부를 했다. 거기에 2년의 카투사 생활과 대학 졸업 후 3년의 미국 로스쿨 생활을 더하면 적어도 15년간은 영어 실력 증진에 힘쓴 셈이다. 게다가 로스쿨을 포함한 미국에서 생활한 시간을 보면 벌써 10년이 넘었다.


돌이켜보면 영어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듣기와 쓰기였다. 사실 원어민이 아닌 이상 듣기는 생물학적 한계 때문에 100% 원어민과 같은 실력을 내기가 어렵다. 내가 학부 때 배운 내용에 따르면, 생애 초기에 특정 주파수의 소리를 언어로 인식하는 능력이 생기는데, 그때 영어의 주파수를 언어라고 인식해 놓지 않으면 그 소리가 평생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맥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만약 문맥을 잘 모르거나, 음질이 매우 떨어지면 청해 능력도 감소한다.


그러나 쓰기는 그나마 원어민이 아니어도 원어민처럼 될 수 있다. 이건 생물학적인 영역이 아니라, 논리와 지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많은 공을 들였고, 지금도 신경 쓰는 것이 쓰기 능력이다. 게다가 글로 먹고사는 변호사에게 글쓰기 능력은 투수의 어깨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항상 끊임없이 관리하고 향상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그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관사(articles)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영어를 10년 공부하고, 심지어 학부 전공으로 영어 교육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헷갈렸던 개념이 바로 관사였다. 아무래도 한국어에는 없는 개념이고, 다른 문법과 달리 규칙화하기 어렵고, 예외가 너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내가 영어 관사를 어느 정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몇 년 되지 않았다. 정확히 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미국 로스쿨 입학 후 몇 년이 지난 뒤, 혹은 변호사가 되고 나서 법률 실무를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느 시점에서 깨달음에 온 것 같다. 그 깨달음은 다음과 같다.  


     명사가 수식어(modifier)로 사용되는 경우를 알아야 한다.   

     불가산명사의 개념과 활용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관사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관사이다.   


첫째, 내게 있어서 명사가 수식어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 관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 간단한 것인데, 이 개념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관사에 대한 많은 혼란이 있었다. 수식어라는 것은 명사의 특성을 설명해 주는데, 가장 흔한 것으로 형용사(adjective)가 있다. 예를 들어, boy(소년)라는 명사를 수식해 주는 handsome(잘생긴)가 앞에 오면 handsome boy (잘생긴 소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종종 명사가 다른 명사를 수식해 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a coffee shop"의 경우에서 coffee은 형용사가 아닌 명사지만, shop이라는 명사를 수식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 경우 어떤 관사를 사용할지, 혹은 관사를 아예 사용하지 않을지의 판단은 coffee라는 명사가 아니라 shop이라는 명사를 봐야 한다. 왜냐면 coffee는 명사지만 수식어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수식어 역할을 하는 명사가 불가산명사(uncountable noun)인 경우에 특히 유용하다. 왜냐면 우리가 불가산명사는 말 그대로 셀 수 없기 때문에 a가 붙을 수 없다고 배우는데, 종종 a가 앞에 나오는 경우는 대부분 해당 불가산명사가 대부분 수식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불가산명사로 배우는 milk 앞에 a가 오는 경우(예, a milk producer)는 milk가 수식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둘째, 불가산명사의 개념과 활용, 정확히는 하나의 명사가 불가산명사와 가산명사(countable noun)으로 동시에 사용되는 경우를 잘 알아야 한다. 흔한 예로 법률 용어에서 많이 쓰는 investigation (수사)는 문맥에 따라 불가산명사 혹은 불가산명사가 될 수 있다.


불가산명사:

The truth of the matter came to light through diligent investigation.

그 사건의 진실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즉, 어떤 특정 수사가 아니라, 진실이 밝혀진 방식에 초점이 있다. 즉, 자백 등의 다른 방식이 아닌 바로 "철저한 수사"를 통해서라는 느낌)


가산 명사:

The truth of the matter came to light through a diligent investigation.

그 사건의 진실은 한 번의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즉, 여러 번이 아닌 딱 한 번의, 실제로 시행된 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졌다는 것이 초점)


(추가로) 정관사:

The truth of the matter came to light through the diligent investigation.

그 사건의 진실은 바로 그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즉, 어떤 특정한 수사에서 진실이 밝혀졌다는 것에 초점. 수사를 여러 번 했는데, 그중에 특정한 수사에서 진실이 밝혀진 것일 수도 있고, 혹은 한 번의 수사에서 밝혀졌다면 그 수사를 한 번 언급한 뒤 다시 지칭하는 느낌)


즉, 다시 말하면, 불가산명사의 investigation을 얘기할 때는, 우리가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수사"를 떠올린다. 즉, 이때는 수사를 셀 수가 없다. 그런데 가산명사로 an investigation / two investigations라고 얘기할 때는 셀 수가 있다. 왜냐면, (관념적 개념이 아닌) 실제로 시행되는 수사는 처음과 끝이 있고 이를 개별적으로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라는 형사가 홍길동 살인사건을 수사하면, 그 수사는 처음과 끝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수사라고 지칭할 수 있다. 만약 홍길동 사건이 끝나고, 김선달 살인사건을 수사하면 이것 또한 하나의 수사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A라는 형사한테 그동안 경험한 살인사건 수사의 총개수가 몇 개냐고 물으면 "2개"라고 셀 수 있는 것이다.


[재밌는 건, 한국에서 복수의 명사를 지칭할 때 -들이란 표현을 쓰지만, 불가산명사에서는 잘 안 쓰인다는 것이다. 수사이란 단어를 안 쓰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영어에서는 항상 불가산명사로만 쓰이는 evidence (증거)라는 단어는 한국에서도 종종 증거이라고 쓰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 혼란이 생기기도 한다. 명사의 가산·불가산 여부를 한국어 용법으로만 대응시켜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다.]


셋째관사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은, 아이러니하게도 관사를 사용하지 않는 결정이다. 왜냐면 "어떤 관사를 써야 하는지"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니, 종종 관사를 쓰지 않아야 할 경우를 놓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미국 로스쿨에 갔다"라고 할 때는 I went to law school in the United States처럼 law school에 아무런 관사가 붙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 이유는 school이라는 명사가 어떤 특정한 학교를 지칭하지 않는 관념적인 학교(혹은 교육기관)을 의미하여 불가산명사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 경우 특정 학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미국의 "로스쿨 과정"에 진학했다는 게 중점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이해하는 데 꽤 오래 걸렸다. 왜냐면 "학교는 건물도 있고 눈에 보여서 당연히 셀 수 있는 가산명사 아니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가 가산명사로 쓰이기도 하는데, 그때는 조금 어감이 다르다. (위에서 언급한 investigation의 예를 생각하면 된다)


물론 위 세 가지로 관사에 대해서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 경험상 이것들을 알고 나니 관사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큰 불편이 사라졌다. 혹시 아직도 관사에 대해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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