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스 건 파열이 있은 후 수술을 받은 지 약 1달이 넘었다. 이후 재활을 위해서 사건 수임을 줄였지만, 기존에 있는 사건들은 계속 진행해야 해서 다리에 깁스를 하고 법원에 자주 왔다 갔다 하게 되었다. 법원에 갈 때는 보통 외발 스쿠터를 사용하는데, 법원 주차장에서 법정까지 거리가 좀 있어서 먼 거리를 가야 하기도 하고, 법정에서는 앉았다 일어났다 할 일이 많아서 보통은 목발보단 스쿠터가 편하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지나가는 사람들-변호사, 일반인, 법원 직원, 심지어는 경찰도-이 말을 자주 걸어온다는 것이다. 원래 미국인들이 한국인보다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점은 못 참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미국 생활 7년 차를 넘기면서 이미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다쳐서 깁스를 하고 다니다 보니 이를 더 여실히 느끼게 된다.
대부분 "What happened?"이나 "What did you do to yourself?" 같은 질문이 가장 흔한데, 이제 그런 질문은 하도 많이 받아서 자연스럽게 "I tore my Achilles while playing tennis"라고 답하게 된다. 그러면 종종 놀랍게도 자신들도 비슷한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든지, 주변 사람들 중에 같은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는 대화로 자연스럽게 주제가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법원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아시아계 변호사 자체가 드문 데다가 다리 한쪽에 깁스를 해서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변호사는 눈에 띄기 마련이라 그런지 이제는 법원에 가면 적잖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준다.
때로는 판사들도 내가 다친 것을 알고 배려를 해주기도 한다. 법정에서 내 사건이 불려지길 대기하고 있다가, 마침 사건이 불려지면 일어나서 단상 근처로 걸어가곤 하는데, 어떤 판사는 "다리가 아프니 여기까지 오지 말고, 거기 있는 자리에서 편하게 얘기하세요"라고 얘기한 경우도 있었다.
검사와의 유죄 협상(plea negotiation)도 마찬가지다. 보통 형사 법정 한 곳당 검사 한 명이 배치되는데, 변호사들은 검사와 유죄 협상을 하기 위해 법정 문 밖이나 복도에서 줄 서서 기다리곤 한다. 이 순서는 대부분 선착순인데, 어떤 변호사는 내가 아픈 다리를 이끌고 힘겹게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여기 아픈 사람이 있으니 이 친구 먼저 보냅시다"라고 배려해주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그리고 이건 아직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는 가설인데 내가 다리에 깁스를 하고 검사와 협상하기 위해서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검사들이 예전보다 더 괜찮은 plea offer를 주는 것 같다. ㅎㅎ 보통 plea negotiation은 offer와 counter offer가 계속 오고 가면서 의뢰인의 요구와 검사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서 최종 합의를 보는 것인데, 깁스한 상태에서는 아무래도 내가 왔다 갔다 하는 것에 대해 검사가 안쓰러움을 느끼는 건지, 아니면 내 모습 덕분에 의뢰인에 대한 공감 회로(?)가 더 활성화되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plea negotiation에서 변호사는 거의 검사한테 일방적으로 애원/간청하는 분위기라서 조금이라도 더 불쌍해 보이면 유리한 것일지도... ㅋㅋ (그런 걸 보면 형사 변호사는 참 "을 중에 을"이라고 볼 수 있다.)
글: 김정균 변호사 (버지니아/DC/뉴욕 주 변호사)
대표 변호사, Ballston Legal PLLC (http://ballstonlegal.com)
대표 코치, Meta Law School Coach LLC (http://metalawcoa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