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son challenge의 역사, 실무 및 한계
미국에서 배심원 재판을 준비하다 보면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아무래도 배심원 선정(Voir Dire) 과정이다. 결국 내 의뢰인의 유무죄를 가르는 것은 12명의 배심원들이기 때문이다. 그 12명의 배심원은 해당 사건이 일어난 지역에 거주하는(정확히는 유권자 등록기준) 시민들을 무작위로 추첨해서 뽑은 최소 20명의 배심원 후보군(jury pool or venire) 중에서 변호사들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배심원을 Peremptory Strike를 사용해서 최종 12명을 남기게 된다.
피고인의 유무죄를 지역 주민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배심원 제도는 민주주의 의사결정 방식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헌법에도 형사 피고인의 배심원으로부터 재판받을 권리를 규정한 만큼 중요한 권리이다. 즉, 아무리 국가와 공권력이 시민들을 형사제도로 억압하고자 하더라도 지역구 시민을 전부 매수하거나 협박하지 않은 이상 무고한 피고인을 유죄로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1. 배심원 제도와 인종차별
그러나 미국 헌법 창시자(Founding Fathers)들의 고귀한 정신으로 탄생한 배심원 제도도 그 초기에는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인종갈등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남부는 여전히 흑인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인종차별적 법률(소위 Jim Crow 법)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 예가 웨스트 버지니아의 형사 절차법으로 배심원을 백인으로만 제한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이는 곧 연방대법원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무효가 된다.
이후에는 다행히 흑인들도 이제는 배심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여러 여건상 배심원 후보군에 속하는 흑인들의 수는 적었고, 이후의 Swain v. Alabama란 사건을 보면 흑인들에게 공평한 재판은 갈길이 멀었다. 왜냐면 이 사건에서는 배심원 후보군에 있는 6명의 흑인 배심원 후보를 검사가 Peremptory Strike를 사용해서 전부 제외시켜, 결국은 배심원이 모두 백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Swain은 연방대법원까지 항고했지만, 대법원은 피고인 측이 "해당 배심원 제외 결정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차별"인지를 입증해내지 못했다며 유죄를 인용(affirmed)했다.
이제 Batson case가 등장하게 된다. 기존에 Swain에서 정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차별"기준이 모호하고 피고인의 입증 부담이 지나치게 높다는 재고에 따라 연방대법원은 이를 폐기하고 새로운 기준을 정립하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Batson이라는 피고인의 사건이 연방대법원까지 오게 된 것이다. Swain과 마찬가지로 Batson의 배심원 재판에서는 검사가 4명 남은 흑인 배심원 후보를 전부 제외시켜서 백인 일색의 배심원이 선정되었고, Batson은 유죄가 되었다.
마침내 연방대법원은 Swain을 뒤집고, "모든 피고인은 배심원 제외 결정이 의도적인 차별이라는 주장을 제시할 수 있다"라는 원칙을 세우게 된다. 이제 검사의 입맛에 맞게 흑인 배심원을 단순히 흑인이라는 이름으로 제외시키기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2. 배심원 제외시키기(striking jurors)
Voir Dire 과정은 결국 어떤 배심원을 걸러내느냐가 핵심이다. 물론 그 기준은 선발된 배심원이 공정하고 독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단계로 배심원을 선발하게 되는데, 그 첫 번째가 배심원 후보군(jury pool)을 선정하는 것이다. 보통 배심원 재판이 있는 날에는 한 법정에 30~50명 정도의 배심원 후보가 출석을 하고, 이 중에서 양측 변호사들이 Voir Dire 과정에서 배심원 후보군에게 여러 가지 다양한 질문을 해서 우선적으로 제외 사유(cause)를 찾아내서 편견(bias)이 있는 배심원 후보들을 걸러내게 된다. 이 경우에는 제외시킬 수 있는 후보의 숫자 제한이 없다. 대표적인 예로, 배심원 후보가 소송 당사자들과 친인척 혹은 고용관계에 있다든지, 해당 사건에 대해서 이해관계가 있다든지, 사건 내용에 대해서 미디어를 통해서 접한 적이 있다든지 하는 경우이다.
이 단계를 거치면 약 20명 내외의 배심원 후보군이 남는데, 이 시점에서는 변호사들이 한 명씩 Peremptory Strike를 활용해서 자신에게 불리한 판단을 할만한 배심원을 제외시킨다. 실무적으로는 판사가 남은 배심원 후보군들에게 앞으로의 절차에 대해서 설시를 하는 동안, 변호사들은 배심원 후보군의 이름이 적힌 종이에 자신이 제외시킬 후보의 이름에 가로줄을 긋고, 이니셜을 적는 것이다. 변호사들은 한 번에 한 명씩을 제외시키고 해당 종이를 상대방에게 넘기는데, 이때 상대방이 누구를 제외시켰는지 알 수가 있다.
배심원 후보군, 사건의 종류, 배심원 후보군의 규모에 따라 Peremptory Strike는 보통 양측에 각각 4개~6개가 주어진다. 그러니 양측의 변호사들이 이를 모두 사용한다면 8~12명의 배심원 후보가 제외되는 것이다. (배심원 후보군의 수는 이를 가정해서 산정된다. 예를 들어, Peremptory Strike가 각각 4개씩 주어지고 이를 최대한 소모한 상황을 가정하면 최종 12명의 배심원을 남기기 위해서는 20명의 배심원 후보군이, 각각 6개인 경우 24명의 배심원 후보군이 필요한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만약 상대방(주로 검사)이 제외한 배심원들이 단순히 특정 인종 혹은 특정 성별이라는 이유로 제외시켰다면 피고인 측에서 이를 판사에게 고발(challenge)하는 것이 바로 Batson challenge라고 불린다.
3. Batson challenge 실무
Batson challenge를 받아들이는 시점은 판사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양측이 모두 Peremptory Strike를 모두 소모한 다음에 변호사들이 판사 앞에 모여서(side bar) 해당 strike가 인종/성 차별적 근거를 가지는지 설전을 벌이게 된다. 우선 이를 Batson challenge를 제기하는 사람은 다음 세 가지를 입증하여 prima facie (잠정적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1) 제외된 배심원이 특정 취약계층(protected group)에 속해있다는 점, (2) 상대 변호사가 Peremptory Strike를 이 취약계층의 속한 사람에게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3) 사실관계와 정황에 따라 상대 변호사가 해당 배심원을 제외한 이유는 그 사람의 인종, 성별, 혹은 출신(national origin) 때문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배심원 후보군에 흑인이 3명이 있었는데, 이를 모두 제외시켰다면 정황상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죠.
판사가 이러한 이의제기를 받아들이면, 이제 입증 부담은 해당 배심원(들)을 제외시킨 변호사에게 넘어가게 된다. 이 경우, 해당 변호사는 자신의 제외 결정이 인종, 성별, 출신을 제외한 중립적(neutral)인 사유 때문이라는 점을 입증하고,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이 경우 허용되는 사유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나이, 성숙도, 혼인상태, 정신적 능력, 범죄기록, 경찰에 대한 편견, 배심원 참여 의지, 태도, 언어장벽, 과거 경험, 과거 및 현재 경험 및 배심원 경험 등이다.
예를 들어, 검사가 3명의 흑인 배심원을 제외시켜서 피고인 측에서 Batson challenge를 한 경우, 검사는 해당 3명을 제외한 중립적 사유를 제시하여야 하는데, 만약 그 사유에 해당하는 다른 백인 배심원을 제외하지 않았다면 흑인 배심원을 제외한 이유는 인종 때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검사들도 바보는 아니기에 이에 대한 대비를 많이 해둔다. 일반적으로 흑인들은 해당되고, 백인들은 해당되지 않는 중립적이 사유들을 미리 물어보고 Batson challenge를 대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해당 지역의 흑인들의 주택 소유율과 교육 수준 등이 낮은 경우, 실제로는 흑인이라는 사유로 제외시켰지만 표면적(pre-textual)으로는 주택 소유나 교육 수준 때문에 제외시킨 거라고 둘러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판사에 따라 이를 받아들일 수도, 아닐 수도 있고, 검사 입장에서도 본인이 인종차별자라는 낙인에 대해서 매우 민감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확신이 없거나,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도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여전히 흑인 배심원은 다른 배심원들보다 제외될 가능성이 훨씬 많다고 한다.
맺는말
형사재판에서 배심원 재판은 검사 입장에서는 많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배심원 재판을 준비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뿐만 아니라 검사의 높은 입증 부담(beyond reasonable doubt)과 더불어, 배심원 중 1명이라도 피고인이 무고하다는 판단을 하면 유죄 입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피고인 입장에서는 이론상 1명이라도 설득할 수 있다면 유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엄청난 레버리지(leverage)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배심원이 유죄를 선고하면 일반적으로 (배심원이 구형하는 경우에는) 판사보다 무거운 형량을 부과하는 경향도 있기 때문에 무조건 피고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유죄협상(plea bargaining)이 보편화된 이유다. 그렇다 하더라도 형사 변호인은 항상 모든 사건이 배심원 재판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하고, 사건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배심원 재판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할 것이고, 실제로 재판으로 가더라도 본인에게 유리한 배심원 선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추가 참고자료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488&v=cPRK_ABldIk
글: 김정균 변호사 (버지니아/DC/뉴욕 주 변호사)
대표 변호사, Ballston Legal PLLC (http://www.ballstonlegal.com)